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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산 괴물

by 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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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상처를 아주 많이 받은 괴물이야.

너무 많은 상처를 입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지.

하지만 괴물은 죽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지.

그래서 결심했어.

상처 받지 않을 세상을 만들자고.

그래서 자신이 겪은 것, 느낀 것,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끌어모아 성을 쌓아 올렸어. 빗방울 하나 샐 틈 없게 견고하게 성을 쌓아 올렸지.


하지만 가진 것이 너무 작았던 탓일까.

그 성은 괴물이 들어가기엔 너무도 작았고,

그 작디작은 성에 들어가기 위해 괴물은

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지우고,

남의 고독을 맡을 수 있는 코를 지우고,

나의 것이 아닌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지우고,

남의 손을 잡기 위한 손을 지우고,

남의 고통을 느끼기 위한 심장을 지워냈어.


그제서야 괴물은 자신의 안락한 세계에 틀어박힐 수 있었어. 그렇게 여기저기를 떠돌며 자신의 세계 속의 이야기만을 되풀이할 뿐인 괴물이 되었지.


괴물이 만든 상처입지 않는 세상이란 무척 단순하고 명쾌해.

그 세상에서는 무언가를 원한다면 노력하면 될 뿐이고, 그래도 갖지 못한다면 그건 노력 부족, 혹은 그 감정을 욕심으로 치부하면 될 뿐이거든.


그런 세상에 만족한 괴물은 척박한 땅에 연약하게 태어나 좌절한 씨앗에게 가서 말했어.

"노력을 해. 그래도 이룰 능력이 안된다면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에서 만족해야지. 그럼 행복할 수 있잖아?"

괴물의 말에 씨앗이 파르르 떨었지.

"나의 세상은 전혀 알지 못하는 주제에 잘난 척 떠드는구나, 네 좁은 세계가 전부인 줄 아는 괴물아. 나는 최선을 다 했지. 하지만 나의 연약한 섬유로는 이 자갈 투성이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했어. 그런데 그것이 나의 노력 부족이라는 거니? 태어나 태양을 향해 자라고자 했던 것이 나의 욕심이라는 거야? 어리석고 안쓰러운 괴물아. 설령 고통뿐이라 하더라도 나는 이토록 생생한 현실에서 살아가련다."


하지만 씨앗의 울부짖음은 귀가 없는 괴물에게 들리지 않았어. 심장이 없는 괴물은 씨앗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지.


그래도 괜찮았어.

무엇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다면 그의 완벽한 세계는 영원할 테니까. 그러니 괴물은 오늘도 자신의 세계로는 이해 못할 일들을 비이성적이고 어리석은 것. 불합리하고 불운한 것으로 둔 채 떠벌떠벌 입을 놀리고 다니지.

세계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처럼.


세상의 모든 고통이 신기루라도 되는 것처럼.






©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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