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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제주 적응 속도

이렇게 제주에 조금씩 물드는 중

by 잔별

제주살이 6개월 차, 이제야 조금씩 동네 맛집이나 가볼만한 카페, 장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주에 관광객으로 왔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이고, 제법 여유를 갖게 되면서 생활에 안정감도 찾아가는 중.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잘하는 편이고 '어디서든 잘 살 수 있다'라는 기본 관념을 탑재한 인간이다. 그래서 삶의 터전을 제주도로 완전히 옮겨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도 큰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아예 고민이나 걱정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제주살이는 확실히 여는 육지 생활과는 다른 점이 많고, 낯선 문화들이 느닷없이 불쑥 들어올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제주 토박이인 남편은 그들만의 고유한 제주 문화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서도 제주만의 무엇이 있다는 것에 일종의 자부심 같은 걸 내보였고, 나는 그들만의 끈끈한 ‘제주 정’이 어떤 때는 대단해 보이기도, 또 어떤 때는 그게 뭐라고 유세냐, 싶기도 했다. 특히 레알 제주 사투리는 잘 알아듣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남편이 작정하고 제주말을 하면 문맥으로라도 때려 맞추기가 쉽지 않았으니, 이로 인해 난감한 일이 생기기도 했다. ‘퐁낭’ ‘펠롱 펠롱’ ‘요망지다’ 같은 말은 그나마 내가 기억하는 몇 개의 단어에 불과하다. 제주 사람들은 텃세가 심하고 친절하지 않다는 고정관념도 많은데, 나의 경우는 주변 이웃에게선 잘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관광지의 편의점이나 음식점 등지에서 가끔 느끼는 정도였다. 아직까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제주도는 정말 매력적인 섬이라는 것이다. 한 번쯤은 꼭 살아볼 가치가 있는, 천의 얼굴을 가진 제주도. 그래서 요즘은 제주살이가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제주행을 결심하는 일이 쉽지 않은 건 여전히 확실하다.


육지에 살던 사람들이 제주살이를 결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제주살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무엇보다 자기만의 속도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해 보인다. 서두르지 않는 것, 내가 찾은 제주의 좋은 점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서 나만의 스타일로 체화시키는 것, 주변 사람들의 수많은 간섭과 오지랖에 의연해질 것, 좋은 점을 얻은 대신 안 좋은 점도 얻었다면 나한테 좋은 방향으로 장점을 더 극대화시킬 것.


제주살이는 제주 이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육지 생활과 다른 점이 꽤 많다. 보통 제주에 살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곤 하는데, 당연히 불편한 점도 많다. 하지만, 너무 불편해서 ‘나는 여기서 못 살겠다’라는 정도가 절대 아니며 제주도가 섬이라는 점만 인정하면, 어느 정도 다 수긍 가능한 정도다. 택배 배송은 육지보다 하루가 더 걸리고, 도선료 3000원이 붙는다. 아쉽게도 새벽 배송은 아직 되는 곳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부터 새벽 배송에 익숙했다고?! 당일배송, 새벽 배송은 불과 최근 1~2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고, 이전에 우리는 택배 배송을 며칠씩 기다려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금세 달라진 환경을 인지하고 거기에 곧 익숙해진다.


제주도에 직접 살아보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제주도에 살아서 좋겠다.’ 혹은 ‘그래도 제주도에 사는 건 좀 많이 불편하지.’라고 말하는 이들을 만나면, 어디서부터 좋고 어디서부터 아닌지를 설명해야 하나, 잠시 난감해진다. 사실 굳이 공들여 말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제주를 느끼고 살아가는 방법은 제주의 얼굴만큼이나 수천, 수만 가지일 것이라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그 의미를 모두 헤아릴 수 없을 것이기에.


나는 다행히 제주도에 살면서 도시생활보다 좋은 점들이 더 많이 보인다. 우선, 아침에 눈 떠서 보는 풍경 자체가 다르고, 마시는 공기도 다르다. 만나는 사람이 줄어드니 인간관계의 부대낌이 확연히 줄였다. 매일매일 눈가는 풍광마다 경이로울 정도라 택배 배송의 불편함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제주 일상의 여유를 만끽하는 와중에 느닷없이,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솟아오르고,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서 살든지 종종 생활이 불안하고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의 고민은 늘 있어왔지 않나 싶어, 애써 불안감을 잠재우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 삶의 적응 속도, 제주 일상의 속도를 체크해보고 방향도 가늠해 본다. 도시에서 살 때, 그 빠른 속도에 비한다면, 당연히 조금은 늦은 속도지만 나는 쉬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니 남들의 눈과 질문과 비교에 움찔하지 말자고, 지금 내가 느끼는 충분함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괜찮다고. 다시 제주 생활의 리듬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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