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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도발하는 여자들

by 잔별
“나 이제부터 막살 거야.”


2020년의 시작과 함께 친한 친구 한 명이 선언하듯 말했다.


지금까지 막사는 것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그녀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했을까? 그녀는 내 친구여 서가 아니라 외모도 괜찮고 성격도 좋다. 별 탈 없이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20대에 만난 두 번째 남자 친구와 5년간 연애하다 친구가 늘 말해오던 서른 살 가을에 결혼했다. 이듬해엔 예쁜 딸을 낳았고, 연년생으로 딸을 하나 더 낳아 지금은 네 식구가 알콩달콩하게 잘 산다. 내 눈에 친구의 삶은 꽤 ‘스탠더드’하고 ‘안정적’으로 보였다. 30대 초반에 아이들을 낳아 지금은 아이들도 제법 컸고, 친정엄마 손을 빌려가며 어렵게 육아 고비를 넘긴 덕분에 경력단절 없이 직장생활도 잘할 수 있었다. 듣자 하니 연봉도 고액 연봉! 신혼집을 전셋집으로 시작해 차차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며 작년엔 인테리어 잡지책에 나올법한 예쁜 집으로 이사도 했다. 친구는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만하면 성공한 삶 아닌가.


그런 친구가 갑자기, 별안간, 막살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그래서 그 ‘막’ 살겠다는 게 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외침인지 물어보니 그냥 어느 날,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연예인, 정확히 말하면 현빈처럼 잘 생긴 남자와 연애하면 어떤 기분일까. 왜 나는 연애에 그리 소극적이었나. 과거 자신의 연애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해 그때 길에서 따라온 남자한테 전화번호를 줬으면 어땠을까, 그냥 좀 더 퇴폐적(?)으로 살아봤으면 어땠을까, 후회는 없었을까, 다른 후회가 생겼을까 하는 생각을 됐다고. 그리고 결혼하고 난 이후부터의 삶을 생각해 보니 남편과 보조를 맞추면서 살림을 꾸려나가고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친정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또 시종일관 아이들을 신경 쓰느라 정작 나 자신을 챙기지 못했다고. 그러면서 ‘왜 나는 그 예쁜 20대에 클럽에 안 가고 쓸데없이 산에 갔을까?’ 지금 와서 후회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삐뚤어질 테다’ 하고 다시 한번 포부를 다지는 그녀.


이 친구의 곧은 성정을 잘 아는 나는 ‘나 이제부터 막살 거야’라고 외친 친구가 아마도 막(?) 살지 않을 거라고 99.9%쯤 확신한다. 그녀는 고등학생 때부터도 계획적이고 안정적인 걸 좋아했고, 20대부터 자기만의 인생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 가면서 본인의 삶을 꾸려나갔다. 드라마에 나오는 스펙터클한 사건이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는 빠져있을지 몰라도 큰 굴곡 없이 인생을 잘 살아낸 그녀의 삶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친구가 ‘막’ 살지 못해 좀 후회가 된다는 건,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진짜 ‘막’ 살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그때만 할 수 있었던 걸 못해봐서 아쉽다는 의미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앞으로는 좀 더 후회 없이 해 보고 싶은 걸 해보겠다는 의지이기도 할 것이다. 이 친구의 막(?) 사는 인생을 두고두고 응원해 줄 참이다.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마흔 살을 앞두고 친구들에게 비장하게 선포를 했다. 친구의 선포는 바로 가슴성형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성형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만, 친구의 가슴성형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가 있다. 이 친구의 사연을 얘기하자면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다)에 사랑에 올인하는 친구의 연애 타입부터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이 친구는 20대 때부터 늘 사랑에 목마른, 누군가 대상이 나타나면 열정적으로 파고드는 이른바 타고난 사랑꾼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상대방한테 자신을 맞춘다. 많은 걸 양보하고 퍼주면서 희생하는 사랑을 하기에 언제나 손해를 보는 편이다. 곁에서 말리고 훈수를 둬도 소용이 없다. 경주마처럼 정면만 보고 달린다. 직진도 이런 직진이 없다. 이런 게 자신의 연애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친구들이 말린 들 뭔 소용인가, 후회를 해도 자기 몫이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나쁜 남자한테도 앞 뒤 재지 않고 빠지는 그녀가 혹여나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친구들만 애가 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친구들이 모두 말리는 결혼을 했다.


친구의 결혼생활은 유감스럽게도 불행했다. 친구가 불행하다는 걸 가장 친한 친구들도, 나도 몰랐다. 친구가 자신의 결혼생활의 진짜 이야기를 잘하지 않았으므로. 그냥 좋지는 않아도 잘 살고 있는 거겠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친구의 남편은 연애할 때부터 가부장적이었고 옷 스타일까지 지적하면서 여자를 통제하려고 했던 남자였다. 결혼생활이 시작되면서 남편의 구속은 더 심해졌고, 부부싸움을 할 때면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10여 년 간 참고 살았던 그녀는 마흔을 앞두고 집을 나왔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과 함께.


그녀에게 물었었다. 대관절 왜 그런 모욕과 불합리한 결혼생활을 참고 살았어? 친구가 말했다. 내가 선택한 사랑에 어떻게든 책임을 지고 싶었다고. 나만 참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잘못된 선택을 되돌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큰 용기도 필요하다. 무작정 참는 것만이 대수도 아니다. 그 지점이 어디인진 몰라도 언젠가 터지고 말았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나온 친구에게 우리 모두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런 그녀가 새 삶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가슴성형이다. 남편의 통제 때문에 자기가 입고 싶은 옷도 제대로 못 입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제한적으로 만나가며 꾹꾹 참았던 욕구가 한순간에 터지더니 친구는 과감해졌다. 내겐 친구의 가슴성형이 과거엔 본인의 콤플렉스마저 감추고 살았지만 이제 더 이상 감추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가슴성형 후 친구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가장 먼저 옷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졌고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원래 친구가 꾸미기 좋아하고 파격적인 의상을 선호한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친구는 가슴성형을 시작으로 억눌려왔던 자기를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금기하던 것을 하고 자신을 돌본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니 삶에 생기가 돌고 얼굴과 몸에 자신감이 배어난다. 아이들 사진만 찍던 그녀가 셀카를 찍는다. 새삼 친구가 셀카 찍기를 저렇게 좋아했나 싶을 정도다. 본인이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줄 이제야 알았다는 친구는 앞으로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당당한 팜므파탈로 살아보고 싶단다. 마흔에 도발을 강행한 그녀의 미소가 예전과 다르게 보인다. 친구의 두 번째 스무 살이 첫 번째 스무 살과 다른 모습이기를. 꽃길만 걸어가기를 진심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흔에도 싱글이었던 나의 도발은 이런 것이었다.

누군가 “왜 아직도 혼자야?”라고 물을 때,

“마흔에 싱글인 게 어때서?”라고 꼭 집어 말해주는 것.


왜냐하면 여자 나이 마흔에도 싱글이면, 사람들의 질문을 많이 받게 되기 때문이다. 왜 아직도 혼자인지 궁금해하고, 요즘엔 다들 ‘비혼’이 많으니까 ‘비혼 주의’인지 물어보고 그것도 아니라고 하면, 혹시 하자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기까지 한다.


“그런데요. 저는 왜 아직 혼자인지 설명해야 할 만큼 하자가 있지 않고요. 비혼도 아닙니다.

그저 어쩌다 보니 결혼은 안 했지만 혼자인 채 마흔이라는 나이가 됐을 뿐이랍니다.”


속 시원히 얘기해주고 싶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입을 다문 적이 많다.


“저렇게 까칠하니까 여직 혼 자지. 혼자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

그러면 나는 다시 “제가 까칠해서가 아니고요. 어쩌다 보니 혼자라니까요?”라고 말해야 하니까.


나이 하나로 많은 게 규정되는 사회.

‘나이가 많으니까 저 사람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추측하고 제멋대로인 잣대와 기준으로 한 사람을 재단해서 인성에도 등급을 매겨버리는 건 정말 난감. 곤란. 불쾌하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도발하고 만다.


“나이가 마흔인데, 싱글인 게 뭐요?
뭐가 어떻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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