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제주의 얼굴 = 하늘
제주의 하늘 보기를 좋아한다. 제주 하늘은 그 바다만큼이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데다 매일 같은 모습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제 봐도 질리지를 않는다. 게다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장소의 큰 제약 없이도 매일 감상할 수 있다. 제주, 그리고 지금 내가 사는 애월 동네는 건물들이 대체로 낮고 시야가 터져 있어 어디에서나 하늘 보기가 좋다. 탁 트인 동네 어디서든 시선을 마주하면 언제든 얼굴을 내어주는 하늘. 굳이 고개를 뒤로 젖히지 않아도, 높은 건물 사이로 하늘을 보려는 노력 없이도 충분히 하늘을 볼 수 있다. 나의 눈높이와 하늘의 눈높이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에 와선 거의 매일 하늘을 보게 되었다. 일상처럼 하늘을 보다가 짧은 감상에 젖거나 생각도 정리하면서 이토로 아름다운 자연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에 대해서도 감사할 줄 알게 됐다. 사람들은 제주에 살면 매일 바다를 보나요? 라든지 매일 바다를 보니 좋겠어요.라고 말하지만, 사실 내가 매료된 것은 바다보다도 하늘이었다. 물론 바다 역시 하늘만큼 강력한 중독성을 갖고 있지만 말이다.
흐린 하늘을 열고 빼꼼 얼굴을 들이밀 때, 그 찰나의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한 없이 투명한 하늘빛.
제주에서 하늘을 보다가 멍해질 때가 있다. 그동안 내가 고민했던 게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를 느끼는 순간도 자주 만난다. 바로 흐린 하늘과 맑은 하늘이 공존할 때, 흐림과 맑음 사이에서 아주 투명하고 맑은 하늘빛이 나올 때다. 이때의 나는 하늘에 압도당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받는다. 저 투명한 블루를 깨고 들어가면 뭐가 나올까?
분홍빛이었다가 보랏빛, 주홍빛이었다가 이내 붉어졌다가 사람 맘 뒤흔드는 요망진 노을의 빛깔
제주의 하늘은 그야말로 수천, 수만 가지의 얼굴과 표정을 가졌고 매번 다른 빛깔로 보는 이를 유혹한다. 특히 노을을 보는 일은 사람의 넋을 빼앗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해가 지기 전부터 해가 진 후까지 남는 하늘의 잔영은 오래도록 잊히질 않는다. 게다가 노을이라고 매번 같지 않고 시간과 날씨 계절에 따라 언제나 다른 빛을 뿜어내니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살이에서 생긴 또 다른 취미를 꼽자면 단연 노을 보기라고 할 만큼 주홍빛을 품은 하늘을 사랑한다.
몸을 낮게 드리운 구름을 보는 재미. 구름 뒤를 상상하는 즐거움.
제주도 전체를 감쌀 듯 거대한 구름이나 손 내밀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구름 역시 말해 무엇하리.
제주의 하늘은 도시의 하늘보다 더욱 광활하지만, 구름은 왠지 우리 곁에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시보다 건물이 낮아서일까? 아니면 낮게 뜨는 구름 때문일까? 어쨌든 이 낮게 뜨는 구름들 때문에 제주의 하늘은 좀 더 친근하고 때론 더 위엄 있게 보인다.
파아란 하늘에 퐁퐁 떠오른 구름이나 화려하게 하늘을 감싼 구름은 때론 그냥 아트가 된다.
제주살이 7개월 차. 이제 사람들이 제주에 살면 뭐가 좋아요? 하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리라. 도시보다 훨씬 아름답고 깊으면서도 투명한 하늘. 평범한 내게 언제나 무한한 영감을 주고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드는 제주의 이 아름다운 하늘을 어디서든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매일 볼 수 있다는 것. 그게 제주살이 중 가장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