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멀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지금이 좋다.

현재 진행형 제주도민의 담담한 생각

by 잔별
많은 게 달라진 2020년이었다.


살아가면서 인생의 기운이 크게 바뀌는 시기가 3번 정도 찾아온다고 하는데, 내겐 2020년도가 그랬다. 어쩌면 그 3번의 시기 중 한 번의 시기가 분명 2020년이었다고 조심스럽게 단언해본다. 40년 인생에 있어 특별한 계기나 사건은 딱히 없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는데, 나이 마흔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제주도로 터전을 완전히 옮겨왔다. 그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사천리로 (중간중간 우여곡절도 있긴 했지만) 진행됐고, 이 사건은 내 인생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터전을 완전히 바꿔 낯선 환경에 들어왔으니 모든 게 변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생각해보니 시작은 분명 만남에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많은 것과 이별했고, 멀어져 버렸다. 하지만 멀어진다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멀어짐으로 인해 얻은 큰 깨달음 중 하나였다.


제주도 토박이인 남편과의 결혼은 터전을 제주도로 옮긴다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었고, 나는 과감히 그 길을 택했다. 서울에서 식을 올리고, 제주도에서 마을 잔치를 열어 2번의 혼인식을 치르면서 제주도민으로서 발을 디뎠다. 나의 제주 이민에 대해 많은 이들이 나보다 더 큰 걱정 해주었다. 평생 도시에서 살던, 그것도 마흔까지 결혼도 안 하고 프리랜서로 일명 자유인의 삶을 살던 내가 '외딴섬' 제주도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친구도 없는 곳에서 외롭지는 않을지, 앞으로 일은 어떻게 할 거며, 먹고 살 대책은 있는지, 그리고 그 많은 것을 버릴 만큼 남편이 괜찮은지, (이는 경제적으로나 현실적인 문제까지 모두 포함하여 사람들이 자주 물어온 질문) 아무튼 그렇게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많이 염려했고, 사실 나는 그 염려가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어차피 모든 선택은 포기를 동반한다. 포기함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 많거나 그 방향이 자신의 가치관이나 목적과 비슷하다면 포기까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제주도, 아니 정확히는 남편을 선택했다. 이 선택에 최선을 다해가며 앞으로도 내 인생을 잘 가꿔가야지,다짐하면서!


그리고 제주도가 해외도 아니고, 한국말도 다 통하고, 든든한 남편도 곁에 있고, 나는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노는 법을 그간 40여 년의 인생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남편 지인들과의 모임도 왕왕 있었다. 별로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리고 2020년은 유례없는 바이러스가 우리 생활을 잠식해버려서 어디서든 일상생활을 왕성하게 할 수 없었던 시기. 그저 새로운 내 일상에 적응하며 소소하고 재미난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멀어져서 친구나 가족들이 엄청나게 그리울까 봐... 나 말고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을 해줬는데, 사실 나는 그렇게까지 그들이 그립지는 않았다.(음...그들이 들으면 서운한 이야기 이려나...) 그런데, 나는 몸이 조금 멀어진 것뿐이지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기에 그랬다. 그간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소중한 관계들에 얼마간의 확신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확신이 없는 관계들은 이미 제주도로 내려오기 전에 끝내 놓았기에. 그립지 않다는 건 아니고, 그리움까지도 감당할 정도의 내공이 있다는 뜻으로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건 확언은 아니다. 나는 아직 제주도에서 일 년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생각이나 관계들은 변할 수 있으니까. 어찌 됐든 나는현재 진행형 제주도민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제주도민이라서 애로사항이 있는게 아니라 힘들다고 느끼는 부분은 전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남편과의 신혼생활로 인해 달라진 일상과 맞춰가는 과정들에서 오는, 서로의 다름과 여러 가지 엇박이 나타날 때였다. 하지만, 이 역시 누구나 겪는 일일 것이며, 부부가 보폭을 맞춰가는 일은 결혼생활이 유지되는 한, 언제고 계속되는 일일 거라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원치 않는 멀어짐 혹은 원하는 멀어짐을 경험할 것이다. 이 역시 자의적으로 또는 타의적으로. 하지만, 멀어진다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기억해낸다면 좋겠다. 멀어짐은 또 다른 가까워짐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고,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며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 기회를 어떻게 알아보고 만들어 갈지에 대한 고민을 평소 해왔던 사람이라면, 반드시 조금은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의 현재 진행형 멀어짐은, 제주도민이 되어가는 과정이고, 또 시행착오의 연속일 것이며, 내 인생의 반환점에서 쓰여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남편과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계속되는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이 멀어짐이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엄청 설레거나 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며 조금은 기대하며 살아가야지, 하고 오늘은 생각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주의 하늘은 바다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