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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살아서 부럽다는 말

by 잔별


결혼과 동시에 제주도에 정착민이 되었다. 이제 제주도는 내가 살아가는 공간, 삶의 터전, 나의 제2의 고향이 된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일이다. 서울에서 작가 생활을 할 때 무조건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제주도였을 만큼, 많은 이들에게 그러하듯 내게도 제주도는 선망의 섬, 꿈과 환상의 섬, 휴식과 힐링의 장소였다.


그런 제주도에 여행 말고, 한 달 살기도 아니고, 일 년 살기도 아닌 그냥 매일 같이 살아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행이나 한 달 혹은 일 년 살이처럼 일정 기간을 머무르다 다시 돌아가는 삶이 아니다. 돌아갈 집이 어딘가에 있지 않다면, 이곳에 집이 있어야 하고 먹고살 수 있는 기반 혹은 터전이 있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제주살이를 꿈꾸지만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 중 8할 정도가 바로 삶의 기반이 제주도에 없기 때문이고, 제주도에 이주해서 정착하기까지 많은 것들(도시의 편리한 삶과 어렵게 들어간 직장이나 터전 같은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인생에서 어떤 일들은 그냥 일어나기도 한다. 어쩌면 아주 많은 일들이 그러하다. 계획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그냥 그런 일이 벌어지고, 어떤 일이 닥쳐왔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인생의 모양을 결정짓거나 바꿔놓는다. 내게는 결혼이 그러했고, 결혼은 나를 제주로 이끌었으며, 지금은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지난해 5월 결혼과 동시에 제주도에 집을 얻었고 신접 생활을 시작했다. 동시에 제주살이의 리얼한 라이프가 펼쳐졌다. 결혼 소식을 알리면서 제주 남자와 결혼해서 앞으로 제주도 애월에서 살 거라고 하면, 거의 모두가 처음으로 하는 말은 이거였다.

제주도에 살아서 너는 좋겠다.
제주도라니 진짜 부럽다.


그런데, 막상 본인더러 제주도에 살라고 하면 '나는 안되지. 나는 직장 때문에 안 되지. 나는 애들 때문에 안 되지' 등등 안 되는 이유들만 갖다 댔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게 부러운 삶이라면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도 한데, 정작 자신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안 되는 일처럼 얘기하니 말이다. 그래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봤다. 제주도에 사는 일은 누군가에겐 매우 부러운 일이지만, 막상 엄두내기엔 용기가 많이 필요한 일이고, 포기해야 할 것도 많이 보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실상이 그렇다. 제주도에 산다고 매일 여행을 다니는 것처럼 좋은 장소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매일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요. 매일 찬란한 날씨와 풍경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제주도의 환상적인 날씨는 의외로 자주 있지 않다. 대신 비가 오거나 흐리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 많다. 비가 오거나 흐린대도 그대로 운치가 있기도 하지만, 야외에서 일을 하거나 날씨와 상관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겐 불편한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도에 살아서 별로라는 소리인가요?
라고 묻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제주도에 살아서 좋은 점은 천혜의 자연과 예쁜 카페, 좋은 맛집을 자주 다녀서... 인 경우도 가끔 있지만, 본질적으론 다른 이유가 더 크다. 제주도는 모두가 잘 알다시피 육지와 떨어진 섬이고,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타지 않으면 오갈 수 없는 (비행기로 1시간만 가면 되지만) 특수한 상황이 붙는 장소다. 그래서인지 제주도로 이사 가는 사람들을 보고 '제주 이민'이나 '제주 이주' 간다는 말도 많이 한다. 같은 대한민국이지만 이런 특수한 조건이 붙는 곳이기에 이민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일 테다. 그래서일까. 외부와의 차단이 도시에서 살 때보다 쉽게 이루어진다. 도시에서 살 때 복잡한 일상이나 인간관계, 나 외에 신경 써야 했던 많은 관심이나 노력들이 이곳에선 자연스럽게 조절이 됐다. 마음은 한결 가볍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그동안 유명한 책이나 저명인사들이 그렇게 힘주어 말했던,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기'가 제주도에선 가능하다. 매우 긍정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누군가는 제주도에 혼자 그렇게 떨어져 사니 많이 외롭지? 많이 심심하지?라고 묻지만, 정말 진심으로 말하건대, 나는 전혀 심심하거나 외롭지가 않다. 이곳에서 나 자신을 돌보며 남편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며 살아가는 일만도 엄청나게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이고, 그렇게 쓰는 시간들이 참 좋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관계나, 일, 얽히고설켜 정리되지 않았던 상황, 그러지 않으려고 백번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비교되던 많은 요소들이 제주도에 뚝 떨어져 사니 큰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모습들을 본다. 아직은 일 년 차 제주 새댁일 뿐이고, 내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나 상황은 이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뭐 두렵지 않다. 제주도 환상 뒤에 숨겨진 제주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거나 천천히 오름을 걷는 일처럼 느리게 배워갈 것이다. 차근차근, 채근하지 않으면서.


그래서 제주도에 살아서 부럽다는 말?! 진짜냐고요?

실제로 한번 살아보세요. 그럼, 알게 될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이왕이면 이 부러운 삶을 아주 잘 살아볼 요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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