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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기 좋은 날, 제주라서 다행이야

남편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내며 느끼게 된 생각들

by 잔별

남편과 나는 서로 사랑한다는 공통점만 제외하면,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러니까 서로 완전히 다른 성향의 부부다. 서로 사랑한다는 공통점은 대다수의 부부가 그러하니 공통점이라고도 할 수 없는 건가. 하지만, 남편과 극강으로 싸울 때마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으면 헤어질 거야' (그 정도로 우린 너무 달라)라고까지 말하면서 싸우는 순간에도 그 말이 먼저 튀어나가는 걸 보면, 진짜 사랑하긴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것 말고는 서로 같이 살 다른 이유를 찾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남편과 나는 취미나 사고방식,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경제관념이나 시간을 보내는 방법 등 함께 라이프를 공유하는 사람 사이에 맞으면 편리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참 맞지 않는다. 그래요, 그냥 한 마디로, '우린 잘 맞지 않아요' ㅎㅎ 그게 정답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은 타고난 '집돌이'다. 집에서 빈둥거리기를 가장 좋아한다. 누워서 게임하고 유튜브 보고 자고 먹는 잉여 라이프를 선호하는 스타일. (이건 나의 입장에서 본 남편의 모습이겠지만 말이다.) 반면에 나는 타고난 역마돌이, 그러니까 휴일이면 밖에 나가 바람 쐬고 산책을 하든지 커피를 마시든지, 어디를 가서 야외 공기를 마셔줘야 좀 살 것 같은 '집밖순이'다. (이런 나를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어제도 나갔는데 오늘도 나가자고 하는, 집에서 좀 쉬면 좋을 것 같은데, 쉬지 않고 돌아다니자고 하는 좀 피곤한 아내... 일 수 있겠다.) 신혼 초에는 이 문제 때문에 자주 싸웠다. 나는 주말이 오면 남편과의 데이트를 기다렸고, 남편은 주말엔 집에서 새로 생긴(?) 아내와 함께 편하게 쉬면서 맛있는 걸 먹는 걸 휴식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제 막 결혼해서 제주도에 살게 된 나한테 제주도는 날마다 너무나 새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제주 토박이인 남편에게 제주도는 매일 살아온 곳, 언제나 지나온 익숙한 장소, 어디든 비슷한 곳일 뿐이었다. 그러니 기껏 핫플이라고 해서 찾아가도 남편은 흥이 잘 오르지 않았고, 그저 나에게 맞춰주느라 애를 쓰기만 했다. 나는 남편과 제주를 함께 즐기고 싶었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이런 패턴은 종종 싸움으로 이어졌다.


연애 때는 우린 서로의 다름을 잘 존중하는 연인이라 생각했다. 나는 남편의 취미생활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딱히 불만이 없었고, 정확히 말하면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됐고, 남편 역시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크게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따로 살며 연애하는 일과 같이 사는 일은 역시 예상대로 너무 다른 일이었다. 어느 정도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맞닥뜨린 결혼의 이면은 더 거대한 것이었다.


왜 결혼이 이런 거라고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어?

어느 날, 결혼한 친구와 얘기하다 내가 따지듯 물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기에 환상 따윈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환상은 버렸지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대는 버리지 못했었나 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랬으면 좋겠고, 나와 같았으면, 아니 나에게 맞춰줬으면. 했던 것이다. 친구는 다들 그렇게 산다고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좀 분했다. '진즉에 좀 말해주지' 하면서 혼자 씩씩 웅얼거렸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그 사람을 온전히 바라보기' 등등의 부부 지침서 같은 이야기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이미 수백 번 책에서도 보고 주변에서도 들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게 내 이야기가 되면 쉽게 적용이 안 되는 것이다. 남편과 보폭 맞춰가며 잘 살아가는 일. 그렇다면, 어떻게 맞춰가야 하지?라는 본질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어느 주말, 그날따라 남편과 좀 크게 다투고 혼자 집을 나섰다. 차를 몰고 나와 그냥 드라이브를 하기 시작했고 원래 둘이 가자고 약속했던 장소에 가서 혼자 머리를 식히며 생각했다. 우리 둘의 적정한 선은 어디쯤에 그어야 하며, 그 선을 무너뜨리지 않고 사랑하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쉽게 대답이 나왔다. '왜 굳이 모든 걸 같이 하려고 하나' '따로 좋은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있잖아?' '그래, 행복한 각자의 시간을 보내보자'라는 나름의 결론이 나왔다.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각자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일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우리가 지금껏 너무 '서로 같이' 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더 자주 싸우게 된 건 아닐까? 같이 있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서로 즐거운 시간을 각자 보내며 부부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건 어떤지,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남편과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다시 사이를 회복했고, 나는 선언했다. '우리 한 달에 한 번의 주말은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보내자' 대신 나머지 시간은 집에 있든 밖에 있든 서로에게 집중하며 즐겁게 보내보자. 남편도 흔쾌히 합의했다.


이제 나는 시간이 나면 혼자만의 여정을 짜는 습관이 생겼다. 혼자 노는 주말에 뭐 할지, 미리 메모를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제주는 혼자서 놀기에 너무나 적당한 곳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보고 싶었던 전시회를 가거나, 조용한 바닷가를 찾아 유튜브 영상을 찍거나, 혼자만의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는 제주 곳곳의 책방 투어도 다니고 싶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겨진 명소도 찾아다니고 싶다.


각자, 따로 또 같이, 결혼이란 부부가 여러 가지 변주를 통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하모니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 변주점을 찾아내고, 화음을 바꾸거나 맞춰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 과정들 끝엔 아마도 만족스러운 연주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오늘은 생각해본다. 그리고 다음엔 어디로 '혼자' 놀러 갈지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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