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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버킷리스트를 적어보아요

by 잔별
제주에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결혼하기 전, 남편과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연애하던 때 얘기했었던 게 있다.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서로 죽고 못살지만, 결혼해서 살다 보면 서로가 지겨워지거나 꼴 보기 싫어지는 날도 오겠지?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 "......" 남편은 말이 없었다. 나의 마음에 쏙 들 만한 좋은 대답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제주도에 친구도 가족들도 없는데, 당신이 죽도록 미워지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는 남편이 아니라 나에게 다시 물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일단 뱉어놓고 보니 생각이 깊어진 것이다. '진짜 그런 날이 오면, 그때는 어떡해야 하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남편과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애월 해안도로 위에서였다. 길 옆에 펼쳐진 큰 바다를 보면서 내가 말했다."그럴 때는 우리, 제주도에 있는 섬으로 휴전 여행을 가자" "휴전 여행? 섬으로?" "응, 제주도엔 섬이 많으니 섬에 가서 둘이 머리를 식히고 오는 거지!" 서로가 못 견디는 날이 혹시 오게 되면, 그래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지면 어느 쪽에서든 암호처럼 "우리 00 섬에 다녀올까?" 하고 말해주기. 그러면, 상대방은 별말 없이 섬 여행에 동행해주기로 하자. "그래, 그러지 뭐." 남편이 가볍게 말했다. 아마 섬 여행에 갈 일이 별로 없을 거라면서.


제주도는 하나의 큰 섬이면서 동시에 여러 개의 무인도와 유인도를 가진 섬이다. 그래서 운진항이나 성산항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이면 또 다른 섬에 닿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우도나 마라도 가파도 비양도 차귀도 등이 있다. 이들 중 내가 가본 섬은 단 두 곳에 불과하다. 남편과 약속까지 할 만큼 '제주의 또 다른 섬'은 내게 제주도에 살면서 꼭 가보고 싶고, 가봐야 할 장소다.'제주도에 살면서 제주의 모든 것을 경험할 거야.'라고 나 스스로 마음먹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 년 동안 제주에 살면서 다른 섬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지금은 가파도에 푸릇푸릇하게 청보리가 올라와서 파란 바다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는데... 어찌하여 나는 오늘도 도서관 구석에 이렇게 박혀있는 걸까.


결혼 후, 일 년이란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고, 나는 서울에 살면서 일 년에 남산타워에 한 번도 가지 않는 서울시민처럼, 제주도에 살면서도 사는 동네만 오가는 제주도민이 되어가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동시에, 내가 여기 살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것들을 하고 싶은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른바' 나만의 제주 버킷리스트'를 적어보기로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제주 버킷리스트'


1. 제주 섬 투어: 일단 올봄, 가파도 섬 투어부터 당장 시작해야겠다.

2. 하루 종일 바다 보며 누워있는 캠핑: 바닷소리를 아주 가까이에서, 누워서, 온종일 들어보고 싶다.

3. 제주 독립서점 탐방 : 가능하면 서점 탐방기를 글이나 영상으로 풀어본다.

3. 이번 생에 한 번은 한라산 등반 도전하기: 간단한 오름 오르기도 힘들어하는 체력 거지지만, 일단은 도전!

4. 초당 옥수수 철 놓치지 않기 : 아삭하고 달콤하지만 제철이 짧은, 그래서 더 애틋한 초당 옥수수의 맛!

5. 봄, 여름, 가을, 겨울, 제주의 꽃 즐기기 :봄엔 벚꽃, 여름엔 수국, 가을엔 억새꽃, 겨울엔 동백... 캬아~

6. 제주에 관련된 에세이 쓰기: 내가 느끼는, 내가 제주에서 깨닫는 지금의 감정과 기억을 책으로 펴내기

7.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커피맛 좋은 카페 발견하기: 세상 제일 기분 좋은 일이 커피맛 좋은 카페 발견하기다.

8. 가성비 좋은 현지인 맛집 지도 완성하기: 나만 알고 싶은 현지인 맛집! 언젠가는 꼭 완성할 테다.

9. '프롬 애월' 유튜브 포기하지 않기: 4개월 된 나의 유튜브 채널 '프롬 애월'을 비루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10. 일 년에 한 번 녹산로에서 남편과 기념촬영 : 웨딩 촬영하며 걸었던 녹산로 유채& 벚꽃을 매년 함께 기록하기

11. 제주에 나만의 작업실 가지기: 사실은 카페와 작업실을 가지고 싶다.(5평 작업실만이라도 있었으면...)

12. 마음 통하는 제주 친구 만들기: 제주에서도 좋은 인연 한 둘 쯤은 만나고 싶다. 또 나도 그들에게 그랬으면.

13. 제주 일출 보기: 결혼하는 해에 도전했으나 날이 안 좋아서 실패했다. 성산일출봉 쪽 일출 다시 보러 가기.

14. 제주 동부권/ 남부권 일주: 제주 동부권/ 남부권에 각각 좋은 숙소를 잡고 느긋이 즐겨보기.

15. 한적한 제주 미술관 투어 : 제주에 있는 수많은 미술관이나 전시회, 도민 할인받아 마음껏 돌아보기.




간단하게 생각나는 대로만 적어봤다. 적는 동안 이유 없이 마음이 살짝 두근거렸다. 그런데,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고?! 괜스레 마음이 바빠진다. 지금 써 놓은 것들만 모두 달성한다고 해도, 나의 앞으로의 제주가 엄청 재미지고 신날 것만 같다. 히히. 제주 버킷리스트 적어보길 잘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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