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이들에게 건네는 인사
최근 반갑지 않은 이에게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처음에, 스마트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이거 뭐지?' 했고, 메시지 내용을 보고 '진짜 뭐냐' 싶었다. 메시지의 내용 인즉은, 뜬금없이 요즘에 어떤 일을 하고 있냐는 것. 몇 년 전, 한 방송국에서 새 프로그램을 기획하다 고생만 죽어라 하고 돈도 받지 못하고 그만둔 적이 있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그곳에서 잠깐 만나 일을 했던 프로그램의 총괄 메인작가였다. 뜨거운 여름날, 나는 두 달 넘게 열심히 일 했고, 심지어 촬영 현장까지 따라 나가며 생고생을 했지만, 본사와의 마찰로 프로그램 진행이 엎어졌다. 그 제작사의 대표와 (나를 그 일에 투입시킨) 총괄 메인 작가라는 사람은 방송국 본사에게로만 책임을 돌리며, 한 마디 사과나 양해도 없었고, 제작사 측에선 기획료를 한 푼도 주지 않았다. 돈을 받지 못한 피디와 나는 제작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 만다, 한바탕 소동이 있었고 나는 이번에도 '더러운 방송일, 더러운 인간들' 마구 욕하면서 너덜너덜해진 채 돈 한 푼 건지지 못하고 끝난 일이었다. 그렇게 일이 제대로 마무리도 안 되고 끝난 게 몇 년 전이고, 그간 한번 안부도 없었던 총괄 메인작가라는 사람이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짧은 고민 끝에 나는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할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애써 이해하려 하지 말자, 생각하면서 스마트폰 창을 닫았다.
이와 반대로 지난주엔, 반가운 이의 연락도 받았다. 예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같이 오래 일했던 피디가 갑작스럽게 제주도 1박 2일 여행을 온 것이다. 제주도 방문 며칠 전 연락을 받았고, 마침 스케줄이 비어있어서 우리의 만남은 급으로 맞춰졌다. 작년 내 결혼식 이후 일 년 정도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자주 연락한 사이는 아니지만, 우리는 완전 반갑게 제주 공항에서 조우했다. 그동안 '제주도에서 얼굴 보자' 고 안부 겸 말을 나눈 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내가 제주도로 온 이후, 반가운 이들은 대부분 제주도에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는 서로 간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대부분 제주도는 여행이나 쉬러 오는 게 목적이니 그들에게도 나름 이유 있는 제주행일 텐데, 굳이 나를 만나러 시간을 빼는 것은 어느 정도 수고로움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도에 나를 보러 온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는 흔쾌히 '오케이'를 외치고, 내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그들을 맞이하려고 한다. 그만큼 그들이 내게도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후배 피디는 급 만남을 제안한 것이 미안했는지, 너무 갑자기 연락했는데 바로 호응을 해줘서 고마웠다고, 연신 마음을 표시했다. 그녀 역시 제주도에 오면서 내게 연락을 하는 용기를 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서울이 아닌 제주에서 1박 2일 간 긴 수다와 술과 함께 좋은 추억을 쌓았다.
제주도에 오면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관계의 다른 면을 보게 된 계기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오랜만의 연락이어도 반가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극명했다. 나이가 들면서,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더 살뜰히 챙기자고 다짐한다. 그들과 시간을 가지기에도 우리의 시간은 한없이 모자라지 아니한가.... 물론 새로운 곳에 정착을 했으니 새로운 인연들이나 예상치 못한 관계들도 생겨날 것이다. 그런 일들 앞에서 이제 나는 좀 의연한 인간인지 잠시 생각해본다. 이제는 아주 조금은 더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인연들이 얼마나 귀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가운 이들에게 고한다. 우리가 다시, 어디서든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내가 진심으로 그대들을 만나고 싶어 했고, 나의 마음은 진심으로 그것들을 기쁘게 생각하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만나자고.
이미 제주에 다녀 간 지인들과, 보고 싶은 얼굴들이 몇 떠오른다.
어디서든 우리 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