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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Aug 06. 2021

교양작가가 예능인이 된 이금희 씨를 보며 느낀 점


나는 18년 차 방송작가다. 방송작가는 크게 교양작가와 예능작가 라디오 작가로 나뉘는데, 나는 주로 정보 프로그램이나 정보와 예능이 섞인 쇼양 프로그램, 그리고 최근에는 다큐 프로그램을 많이 맡아왔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며 방송작가의 꿈을 키워오던 스물 초반의 나는 당시 MBC, KBS, SBS, 방송 3사가 주를 이루던, 방송의 벽이 지금보다 높았던, 방송계에 호기롭게 뛰어들었고, 지금까지 한 길만 보면서 방송일을 해 왔다. 방송일이 얼마나 고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거니와 세상의 모든 일들은 다 그만한 스트레스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장점이나 단점, 극한의 불안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4대 보험 없이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도 녹록지 않은 일이다. 직장의 보호나 정부의 지원에서 소외된 프리랜서들은 자신의 일과 월급을 지키기 위해 원치 않는 싸움이나 고난에 엮이게 마련이고, 그만큼 사회적인 약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방송작가를 시작한 20대부터 40대가  지금까지 나는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할지, 아니 정확하게는 언제까지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순간 해왔던  같다. 하지만 여전히 방송작가를 대체할 만한 메인 일자리를 찾지는 못했다. 방송작가를 작가의  범주에 놓는다면, 나는 언제나 작가라는 범주 안에 속해 있다. 글을 쓰는 . 이것을 대체할  있고, 내가 ()   있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 에세이 책을   출간하기는 했지만,  이후  다른 계약은 아직이다. 더군다나  같은 신인 에세이 작가는 책만 팔아서는 생계를 이어갈  없다. 글을 쓰는  외에 다른  수입원을 찾아야 한다는 . 결국 나는 아직도 많은 날을 투잡 혹은 쓰리잡의 인생으로 살아가야  것이다.


내가 이렇게 고민의 상상 덩어리를 부풀려 나가는 동안 강산은 두 번 정도 변했다. 특히 온갖 트렌드가 밀집돼 있는 방송계는 아주 빠르게 변화를 맞이했고, 다채널 속에서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동안 프리랜서 작가나 피디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방송 3사뿐 아니라 케이블 채널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제는 유튜브가 완전히 미디어를 장악한 시대에서 기존의 작가들은 오히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도태되어 간 것이다.


인지도 있는 개인이나 연예인들은 새롭게 생겨난 플랫폼에 자신의 채널을 만들어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예전엔 작가나 피디들이 해 오던 전문적인 일들을 개인들이 할 수 있게 되면서, 작가와 피디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줄어들었다. 변화에 시대에 빠르게 응수한 이들은 살아남았지만, 그 트렌드를 재빠르게 캐치하지 못한 이들은 새로운 물결에 합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인 이금희 씨가 예능인으로 한 발 내딛으며 도전하는 모습이 내겐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녀는 이미 방송판에서 30년 넘게 인정받고 있는 이를테면, 터줏대감 같은 느낌의 인물이 아닌가. 물 흐르듯 유연한 진행 솜씨 하며 놀라운 공감능력을 가진 뛰어난 방송인. 그녀는 아나운서로 또 방송인으로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며 묵묵히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왔다. 이대로 쭈욱 그런 이미지로만 살아가도 정말 성공한 삶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누구든 남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누가 감히 다른 이의 인생을 단정 한단 말인가. 오랜 시간 방송계에서 입지를 굳혀 온 그녀라면,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도 남들보다 빨리 알아챘을 것이고, 그런 그녀에게 지금은 안주를 하기보단 도전하기에 적절한 때라 여겨졌을 것이다. 그녀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또 다른 창구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예능에 나와서는 앞으로 자신의 삶의 비전을 당당하게 내보인다. 역시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역시, 어쩌면 늦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삶이라고 여겼을지도.


하지만 그녀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공을 거둔 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다른 분야에 뛰어들었고, 그녀의 도전은 고민만 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늘의 '불안'만을 '불만'하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과연 나는 지금 어디에 얼마만큼 뛰어들 용기가 있는가?

과연, 나는 삶이 이대로 충분하다고 느끼는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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