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별 Jan 06. 2023

나와 상관없다는 듯, 삶은 그렇게

한밤 중인데도 창밖은 환했다. 연말에 조카들에게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주면서 2900원을 얹어주고 산 스누피 담요를 질질 끌고서 창문 가까이로 다가갔다. 나로서는 꽤 선심을 부린 일이다. 이렇게 추운 겨울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전기난로와 전기장판을 온종일 켜고 창 밖으론 무슨 일이 벌어지든 시선도 주지 않는 것이다.


겨울의 이불 밖은 위험하다. 무진장 추워서 사람을 잔뜩 긴장하고 날카롭게 만든다. 매일 하루 한 번, 환기조차 거르게 만드는 실로 엄청난 폐쇄성을 가졌다. 마냥 더운 것도 반갑지만은 않지만, 이렇게 추운 것은 아주 많이 별로다. 안 그래도 힘든 사람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고 더욱 가난하게 만드니까.


창 밖에는 펄펄 눈이 오고 있었다.

펄펄.

펑펑.

기세 좋게.


아, 아까 저녁에 안전문자가 울렸었지. '서울과 수도권에는 오후 8시부터 폭설이 예상되니...' 문자를 다 읽지도 않고 닫아 놓은 게 두세 번쯤 된 거 같다. 아마 폭설과 미세먼지 예보였던 것 같다.


'눈이 오는구나..

 그래서 창 밖이 그렇게 희뿌옇게 빛나고 있었나'


창가에 다가가서 아주 오랜만에 창문을 열고 눈 구경을 하다가,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게 안개가 아니고, 눈 때문이 아니고 희뿌연 미세먼지인 거 같아서... '에이~이놈의 미세먼지.' 하면서 창문을 고대로 닫았다.


올 겨울에는 눈이 참 많이도 온다.

반갑지도 않은 눈이다.


눈이 반갑지 않게 된 건 꽤 오래된 거 같다. 아마 운전을 하면서부터였나. 빙판 운전길에서 사고가 난 뒤부터였나... 하여간 거의 십여 년은 된 거 같다. 나는 이제 눈 따위는 좋아하지 않는 전혀 보송보송하지 않은 인간이 되었다.


눈이 오기 전이면 그야말로 오지게 춥고, 정말 딱. 그 찰나만 예쁘고, 그다음은 지저분하다. 치우는 사람은 힘이 들고, 도로의 차는 막히고, 꽁꽁 언 땅빨리 걸을 수 없다. 평소보다 느릿느릿 조심히 걸어야 한다. 뒤뚱뒤뚱... 자칫하다 넘어지면 골로 갈 수 있다. 불편한 게 생각보다도 많군...!


이번 겨울은 꽤나 성가시게 눈이 자주 오고, 자꾸 패딩을 지르고 싶게 뼛속까지 춥다. 이번 시즌 핫템이라는 바라클라바인지는 샀다가 실패했고, 니트 모자를 두 개나 샀는데도 아직 더 사고 싶다. 너무 추워서 외출을 줄였는데, 추워서 자꾸 쇼핑을 하게 되는 이상한 현실. 참 오묘한 지름의 세계다.


이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삶은 이어지고 있다.


맑았던 하늘에서 무심하게 툭툭 눈이 내리듯,

눈이 내리다가 멀쩡하게 개이듯,

그 많은 소동과 난리를 쳐놓고선,

눈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이,  밖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저들은 이 밤에 뭘 하는 걸까. 뭐가 그리 신이 날까.'


나의 겨울은 그렇게 남들의 세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나와 상관없다는 듯,

삶은 그저 혼자만 여유롭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유 있는 우울,  '홀리데이 블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