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짜리 꼭지(코너) 물이든 50분짜리 다큐 프로그램이든 제목 짓는 건 언제나 어려웠다. 흔히 방송쟁이들끼리는 제목이라고 하지 않고, 타이틀이나 혹은 미다시라고 지칭하곤 했다. 보도자료 맨 위에 얹는 한 줄짜리 간단한 글에도 '미다시'라는 말을 붙이곤 했으니까. (미다시는 일본 용어인 것 같은데, 지금 일본어 사전을 찾아보니 '색인' '헤드라인' 표제' 같은 뜻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 '미다시'가 방송계에선 제목이나 타이틀보다 더 많이 쓰이곤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미다시'엔 섹시함이 담겨야 했다.
선배들은 왕왕 말했다.
"미다시 뽑았어?"
"저기.. 여기요...."
(머리 뜯으며 뽑아놓은 대여섯 개의 미다시를 내놓는다...)
"음. 너는 이게 섹시하니?"
"아니... 요......."
"다시 뽑아. 섹시하게."
나는 늘, 이 '미다시'니 '섹시하니' 등등의 방송용어가 맘에 들지 않았다. 뭐가 뭔지 딱 정의되지 않는 모호함도 맘에 들지 않았고, 전혀 구체적이지도 않은 데다가 살짝 천박하기까지 하다. 너무 막.연.하.다. '섹시하게'라니, 대체 뭐가 섹시하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나중에 선배가 되어도 '미다시 섹시하게 뽑아'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는 선배가 되기로 했고, 실제로 '미다시를 섹시하게 뽑다.' '이번 아이템 섹시하지 않아?'라는 말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았다. '아이템 신선하고 좋지 않아'라는 말이 분명 더 명료하고 구체적이었으니까.
사실 요즘엔 이런 말투를 사용하는 것이 많이 줄어들긴 했는데, 아직도 꼰대들은 쓰곤 하더라.
드라마 제목이든, 책의 제목이든, 영화 제목이든 '제목'은 정말 중요하다. 제목 안엔 대개 하고 싶은 이야기의 요점이나 주제가 들어있고, 간혹 반전이 실린다. 여운 있는 한 줄, 강렬한 한 마디 만으로 관객, 시청자, 독자들을 사로잡아야 할 수 있어야 하니까 당연히 신선하고 돋보이는 제목을 지으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그런데, 요즘 브런치 글들을 보면, 예전의 방송판과 똑같아 보인다. 제목을 섹시하게 뽑기 위해 안달 난 것처럼 보이는 글들이 너무 많달까. 뭔가 너무 직설적이고 작위적이랄까. 단지, 조회수를 높이기 위함인가? (진짜 궁금하다.) 꼭 좋은 제목, 좋은 글이 있는 건 아니지만, 너무 노골적인 건 어딘지 좀 불편하다.
브런치를 하면서 내 글이 다음과 브런치 메인에 몇 번 걸린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제목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요즘의 변화는 너무 민낯에 가깝다. 그동안 브런치에 일어난 이런 변화가 마뜩잖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가면 갈수록 더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혹여 그 글들을 폄하하는 걸로 보일까 봐 예시는 생략한다.
브런치엔 참 다양한 종류와 작가들이 있고, 이런 양질의 글을 무려 공짜로 읽을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메리트인데, 요즘엔 너무 일부 주제와 작가들에 한정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좋은 글이나 작가가 사장될 수도 있고, 발견되지 못할 수도 있기에 이런 점들은 개선이 좀 됐으면 좋겠다. 브런치가 좀 더 다양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소외된 글들도 세상 밖으로 꺼내주는 역할을 하는 본래의 그 플랫폼으로 남길 바란다.
이젠 브런치 제목도 섹시하게 뽑아야 한다는 사실이 맘에 들지 않는 나는, 그냥 나대로 하려 한다. ㅋㅋ
그렇게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무리 자기만족의 글이라도 적절한 표현과 제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아무리 끄적거림의 글이라도 그 글에 걸맞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