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이 아름다운 이유
그 시절의 나의 사랑, 나의 인연들
스무 살 때 첫사랑을 만났다. 같이 있어도 보고 싶고, 잠시도 떨어져 있기 싫었던,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순간을 꼽으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첫사랑 그 남자. ‘사랑’이란 감정과 상황에 가장 충실하게 집중했었던, 그만큼 남김없이 서로에게 감정을 쏟아냈고 남김없이 사랑했더랬다. 처음 사랑의 이별은 왜 또 그리 힘들던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었던 사람과 다시는 연락할 수 없고, 볼 수 없다는 게 못 견디게 힘들었었다. 다시 누구를 사랑한다는 게 지난날의 내 사랑에 대한 배신 같아서 한동안은 사랑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해줬던 위로의 말들처럼 거짓말처럼 시간이 지나자 그런 감정들도, 기억들도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그 사람 없이도 잘 살 수 있어졌다. 다른 사랑을 또 할 수가 있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겪으면서 ‘사랑’은 그렇게 왔다가 또 어느 날 다시 갈 수 있는 것임을 알 게 되었다.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떠나가는 일은 언제나 힘들었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지나가는 시간’을 기다리며 감정을 토닥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에게 찾아와 줬었던 그 ‘인연들’에 대해 감사할 줄도 알게 되었다. 비단 남녀의 사랑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때 소중했던 친구들과 원치 않게 이별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잃는 일은 매번 힘든 경험이었다. 일을 하다 만난 인연들과, 여행을 하다 만난 인연들한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행 중 그들과 잠깐 나눴던 이야기에 큰 위로를 받을 때도 있었고, 이 여행이 끝나도, 또는 이 프로젝트가 끝나도, 우리 사이가 지금처럼 좋았으면... 했다. 하지만, 모든 인연을 다 끌어안고 살아가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도, 잘 되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인연들이 있었다. 노력했던 인연들이 있었고, 노력해 준 인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과 무관하게 지금 내 옆에 남은 인연들이 있고, 떠나가버린 인연들이 있다.
나를 떠나간 인연, 내가 떠나보낸 인연, 그리고 그런 인연들을 떠나온 지금의 내가 여기에 있다.
그 시절인연들을 거치며 나는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고, 찾아든 인연에 감사할 줄 아는 내가 되었다. 또 서로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어떤 인연들은 그렇게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도 있게 되었다. 때론,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해가는 게 있다. 누군가는 ‘경험’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지혜’라 부르는 그것.
시절인연이 아름다운 이유
지금도 어느 한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소중한 얼굴들이 있다. 그때 내가 그렇게 했더라면, 혹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그 인연들은 내 곁에 있을까. 그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에 몸을 떨 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내 시절인연으로만 남아있다.
평생 함께 하자던 친구들과 소원해졌고, ‘소울메이트’라 생각했던 친구와 멀어져 버렸다.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은 ‘끝나버린 사랑’으로 남았다. 그래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그 시절을 채워준 그 시절인연들이 있었기에 나의 그 시절들이 아름다울 수 있었다는 것을.
지금은 내 곁에 없지만,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그 시절의 소중한 인연들이, 어디에서든 잘 살아가기를, 그리고 늘 평안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