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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성숙한 어른의 연애

어차피 모두 미성숙하다

by 잔별


어른이 사랑에 빠지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드라마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예능프로 ‘연애의 참견’을 보다가 ‘댕~’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39살의 여자가 내뱉은 이 대사 때문이었다. 주인공의 이모로 나오는 여자는 39살이었고, 돌싱남을 사랑하는 역할로 나왔다. 마치 인생에서 마지막 사랑을 하듯 절실해 보이는 여자. 여자는 '같이 늙어가고 싶은 사람'은 이 남자가 처음이라고,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29살의 조카에게 네가 하는 사랑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너는 기회가 많으니 사랑을 양보하라고 했다. 어른이 사랑에 빠지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냐고 절규했다.


39살이라면 나보다 한 살 적은 나이다.

실제 사연을 재연하는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서도 좀 의아한 기분이 드는 건 왜였을까.


정말 어른의 연애란,

이렇게나 절실해야 하는 것일까?


단지, 젊은 사람들보다 기회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나이 때문에 마지막 사랑, 끝사랑, 놓쳐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린 사랑.


사실 우리는 이보다 더 절실한 사랑을 해 본 경험이 있다. 사랑의 경험이 많지 않아 미성숙했었던 그때, 이별에도 미성숙했었던 그때, 이 사람과 헤어지면 다시는 누구를 만날 수 없을 것만 같고, 세상이 끝날 것만 같았던 그런 사랑 말이다. 참으로 구구절절했고 이 사랑은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했었던, 그래서 놓고 싶지 않았던, 놓을 수가 없었던, 절절하게 아프고 힘들었으며 서로를 놓지 못해 절실하게 느껴졌던 사랑. 비록 나이는 지금보다 어렸을지 몰라도, 나이가 10대였고 20대였다고 해서 절실하지 않았던 건 아니란 거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졌고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도, 사랑을 할 기회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래서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에 만난 사랑이 더 절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려운 기회 속에서 잡은 사랑이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10대 20대보다 결혼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더 높기에, 더 진중한 만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하는 사랑이라서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놓을 수 없는 사랑이 되면 안 될 것만 같다.


지금 이 나이에 서로를 만난 것은 매우 특별하며, 서로에게 강렬한 사랑과 확신을 느꼈다고 말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랑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어떤 이들이 나이로 인해 사랑의 모습과 결말마저 섣불리 단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것이다.


여전히 미성숙한 어른의 사랑


이 사랑을 마지막 사랑이라고 부르려면, 이번에도 역시 진짜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방의 연락 한통에 설레기도 하고 답답해지기도 하는, 상대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고, 서로를 더 알고 싶어 다투기도 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애인이 되어주며,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사이가 되어가면서, 그렇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주 다른 모습의 두 성인이 만나 조금씩 서로에게 물들어가다가 어떤 확신 같은 것도 느끼면서 말이다.



나이가 들면 으레 성숙한 어른으로 규정되고, 따라서 성숙한 연애를 할 거라고 오해들을 한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의 대부분이 여전히 나는 미성숙하고 부족한 사람이며, 사랑 앞에선 언제나 목마르다고 할 것이다. 나 역시 마흔쯤 되면, 좀 더 성숙한 연애와 사랑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좀 더 상대를 배려해주고, 그래서 더 유연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현실의 나이만 마흔이 되었을 뿐 '내 사랑의 나이'는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던 그 어떤 지점에 머물러 있다. 이 나이에도 여전히 상대방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어 답답하고, 작은 일에도 토라지며, 그래서 별 거 아닌 일에 다투게 된다. 나와 상대의 사랑의 크기를 가늠해보며 속상해하거나 우쭐해질 때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여전히 너무나 미.성.숙.하.다.


남들이 보는 시선은 너무나 어른인데, 나만 아이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세상 물정 모르고 여전히 사랑타령을 하고 있는가 라고 잠시 생각해봤지만, 사실 모두가 20대처럼 구태여 연애사를 구구절절 친구들에게 다 얘기하지 않을 뿐, 나와 같은 마음, 같은 모습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포기하는 게 많아진다고 하는데, 일부러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는 말이다.


20대처럼 여전히 미성숙하지만 나 다운 연애를 하면서, 그냥 서로의 미성숙한 부분을 그렇게 인정해가면서, 또다시 상처 받는 일을 미리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쉽게 이 사랑을 마지막 사랑이라고도 단정하지 말고, 그렇다고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면서 느끼게 되는 수많은 감정 속에 다시 한번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게 다 해보고 나서 마지막 사랑이라고 말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어른'이 사랑에 빠지기가 힘든 일이긴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일은 원래 쉬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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