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개벽이 필요한 시점
마흔, 인생 개벽이 필요하다
마흔이 되어도 '천지개벽'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 직시와 함께 앞으로의 '인생 개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진짜 100세까지 살고픈 마음은 없고, 앞으로 기대수명을 (내 맘대로) 80세 정도라고 생각했을 때, 이제 정말 절반에 와 있는 거다.
인생 절반쯤 살고 보니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관점에서 '나름' 굴곡진 세월들을 버텨오느라 고생했고, '나름' 무탈한 인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4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며 혼자 조용히 인생 리뷰를 해보니 인생 전반기의 절반은 나의 의지로 시작된 일들보다 그렇지 않은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엔 대부분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며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무 살 이후의 삶, 그러니까 인생 전반기의 나머지 20년은 나름대로 의지를 표명하고 인생을 개척하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제 시작된 마흔 이후의 삶, 인생의 후반기는 어떨까?
역시 20여 년 정도는 나름의 의지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며 살 게 될 것 같고, 나머지 20년은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며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속도보다 방향이라고 했던가?
나 역시 속도보다 방향을 따라 살아왔다고 조심스레 얘기해본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일이 좋아서 무작정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을 때도, 그리고 15년 후 동화를 공부할 때도 그랬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그쪽이라, 남들이 아니라고 했을 때도 밤마다 글을 쓰며 막연한 꿈을 키워왔고, 당시로는 꿈에 불과했던 방송작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스터디를 하고, 방송 모니터를 했다. 그리고 케이블 TV부터 공중파까지 가리지 않고 지원하며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기회가 나에게도 오기를 기다렸다. 동화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들은 내 감성이 동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드라마나 에세이를 써보라고 했고, 동화작가로 돈벌이가 녹록지 않다며 현실적인 조언들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였기에, 동화 공부와 습작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방송작가와 동화작가의 꿈을 이루었다.
내가 원하는 시기에 딱 맞게 방송작가가 되고 동화작가가 된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길이 꽃길만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의 의지를 믿고 따라오다 보니 어느새 나는 방송작가와 동화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 속에서 나는 알게 됐다. '방향'만 잘 잡고 있다면, 조금 늦더라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속도가 아닌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마흔 이후의 삶,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40여 년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 게 잘 사는 일이 될까?
심플하게 정의 내리자면, 앞으로 '뭘 해 먹으면서' '누구와 살게 될까' 이게 요즘 가장 큰 고민이 아닐까 싶다.
막연하게 마흔 정도 되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줄 알고 착각하고 달려왔지만 인생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매 순간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튀어나와 성공을
위한 노력들은 수포가 되었고, 믿었던 사람이 내 편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정당한 대가는커녕, 돈을 떼이는 거지 같은 경험을 할 때는 서러워 눈물도 났다. 사랑하는 이들과 크고 작은 이별을 해야만 했고,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수도 없는 배신과 오해를 봤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지난날을 후회하고, 후회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 숫자일 뿐이라는 나이 40을 찍었다.
괜히 조급해진다.
불안해진다.
뭔가 계획이 필요할 것만 같다.
지금까지 목적지로 가기 위해 달려왔는데, 힘들게 도착한 목적지에 내가 원하던 게 다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아버린 거다. 이 목적지가 끝인 줄 알았는데, 여기보다 더 멀리, 더 험난한 목적지로 가야 한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럼, 앞으로는 이것보다 더 힘들다는 거야?' 혹시 ‘방향’이 잘못된 거였을까...라는 자책, 상실감 때문에 맥이 빠진다.
이럴 때는 '그동안 잘 견뎌왔다. 고생했다. 이만하면 잘 버텨왔다. 나는 나를 칭찬해 줄 권리가 있다. 다들 이렇게 산다.'라는 위로들도 별로 소용이 없다.
이대로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다면, 언젠가는 장애물에 부딪히거나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것만 같다.
나는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두 다리에 힘을 '빡' 주고 일어서기로. 지금 가는 방향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지금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아무 데로나 흘러가버릴 것 같아 두려우니까. 나는 아무나가 아니고, 아무 데로나 가기 싫으니까.
도무지 이 끝에 뭐가 있을지 가늠이 안 되는 건 스무 살 때나 20년이 지난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대체, 이 고비 너머 또 뭔 고비가 올까. 이다음엔 뭐가 있을까 불안하다.
그래도 내가 갈 수 있는 길을 가늠해보고 서두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속도와 앞으로의 방향을 정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시기다.
요즘, 내 인생의 어떤 선택 앞에서 사람들이 의아한 듯 묻는다.
"지금 가진 걸 다 포기할 수 있겠어?"
"여기 있는 걸 왜 포기해?"
"포기할 만큼 괜찮은 거야?"
이런 질문들을 받을 때, 대체 나는 왜 그것들이 '포기'라는 단어로 묶이는지가 되려 의아했다.
나는 그것들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나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고, 그 선택에 집중할 것이다.
그 선택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고, 인생 최종 목표인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는 삶'으로 나아간다면,
내가 딱 원하는 때는 아니지만, 인생 후반부의 어느 지점에서, ‘그래도 내가 원하는 곳에 어쨌든 오긴 왔어.’라고 말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기회비용이란 게 존재한다. 누군가는 다른 것을 선택하면서 포기하는 걸 더 크게 여기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 대신 얻는 이익을 더 크게 생각한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포기가 아닌 선택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지금 내게 인생 개벽 보다 절실 한건, 나를 믿는 것. 나의 선택을 다시 한번 믿어보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