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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Oct 30. 2019

청춘, 꽃날

10년 전 감정 기록을 꺼내다

청춘, 꽃날

 관음하고
 SEX하고
 비난하거나
 격론을 벌이고
 어느 대상을 오마주하고
 퇴폐적으로
 젊음을 보내야 했다.
  
 미친 듯이
 무모하게
 그 나이에 현명함이란
 오히려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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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18/ '바람에 운명을 맡기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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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듯이

무모하게

위선적이지 않게

나의 청춘, 꽃날.


무엇에든, 미친 듯이,

무모하게, 뛰어들 용기,

아직 조금은 남아있나?


어쩌면, 나에게 미친 듯이,

무모하게 라는 '젊음'은 없었던 것인지도.

 -2009.04.18 (10년 전 감정 기록)



그리고 10년 후...


예전 기록들을 기웃대다 10년 전에 썼던 글을 하나 발견했다. 청춘, 꽃날이라는 환상에 꽂혀있었던 듯 서른 살의 일기는 자조적이었다.


내 나이 서른 살. 찬란했던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의 문턱을 막 밟았던 시기.(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아쉬워했던 날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오면서 '이제 나의 청춘은 끝난 건가'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삼십 대가 얼마나 빛나는 시기인 줄 미처 몰랐던 거다.


돌이켜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보고 말하는 건데

진심, 그즈음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꽃날이었다. 사실 서른 살을 넘어서는 일이 두려운 일이기는 했다.(넘어보지 못했기에) 하지만 일단 넘기고 나니 별게 아니란 걸 금방 알게 됐고 이십 대와는 또 다른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십 대 초반부터 7-8년 동안 꾸준하게 경력을 쌓아왔기에 그쯤부터 일을 조절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겨났고 (나름대로 일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아직 너무나 젊었으며 세상에 재밌는 놀거리는 넘쳐났다.


그 시절 내겐 소울 메이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우리는 매일 일과 사랑, 인생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짐짓 어른인 척 나만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일은 다시 심장을 뛰게 할 만큼 짜릿했다. 막연한 이십 대 보단 훨씬 구체적인 심장의 움직임이었다.


당시엔 젊음의 한 시절을 이미 지나왔다 생각하며 아쉬워하기도 했고 무언가에 미친 듯이 뛰어들지 않았던 나를 질책하기도 했었지만, 삼십 대 초반의 나는 그냥 나 자체로 충만하다 느꼈던 날들이 많았다. 사실, 그거 하나면 끝난 건데 말이다. 당시엔 알 수 없어 이젠 더욱 애틋한 추억이 됐다.


그렇지만, 참 다행이다 싶다.

10년 전의 내가 그래도 나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많이 고민했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충만했고 빛났다는 걸 10년 후에 다시 깨달을 수 있어서.


앞으로 또 10년 후의 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하게 될까. 그런 의미에서 아직, 아주 많이, 좀 더, 무모해도 될 것 같다.

지금이 바로 그 '청춘'이라고?!


아직...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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