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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May 06. 2019

지구촌, 평화를 모르는 촌락

20150323 미국생활 41일차

1. 졸업을 축하합니다!



2. '내가 아닌 사람 되어보기' 프로젝트를 위해 지지난주부터 ㅂㅊ, ㅇㅈ원생의 장점을 따라하고 있다.
ㅂㅊ으로부터 '내가 먼저 관심 갖고 질문하기'를, ㅇㅈ에게는 '정리 정돈 잘하기'와 '옷 단정히 입기'를 배워보고 있다.
특히 요즘 다니는 컨퍼런스들에서 질문을 하려고 노력중인데, 골치아픈 문제는 내가 그 주제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아니 뭐 아는게 있어야 질문을 하지
신문을 읽기로 했다. Washignton Post 온라인 구독 원하시는 분 연락 주세요! 종이신문 신청하니까 따라오네요

아니면 그냥 내가 듣는대로 주워섬기는게 익숙한 사람이라 그럴 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가 아니라 '선생님께 질문 꼭해라'였어야 했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것은 좋다.
어쩌면 이 돈먹는 하마 이벤트들이 열리는 이유는 공중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컨퍼런스 별로 제기하는 중심 문제에 대해 답을 똑 떨어뜨리지 않거나, 아예 답정너(답은 정해져있어 너는 대답만 하면 되)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생각할 거리들을 툭툭 던져주는 것은 좋다. DC는 다양한 자극이 많은 도시이다.



3. 정리정돈의 미학
나는 잘 정돈된 침대나 책상, 옷장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지는 못한다.
무언가를 찾는 데 긴 시간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좋지만, 나는 오히려 선악 구분이 없는 에덴동산처럼 내게 게으름을 한 스푼 먹여주는 아무렇게나 뭉쳐진 이불이 더 좋다.
그래서 요즘에는 계속 아침에 일어나 침대를 정리하고 있다. 정리정돈의 미학을 찾을 때 까지 정돈된 사람 노릇을 이어가볼 생각이다.

이와 비슷한 문제로 나는 단정한 옷차림은 멋지기보다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드레스 셔츠 소매가 자켓보다 정확히 1.5cm씩 더 나와있고 양말은 반드시 검정색인 사람들과 함께 컨퍼런스에 참석해 손을 들고 질문을 하려다 보면 나의 후드와 추리닝 바지 때문에 목이 다 메이는 경우가 있다.

어서 빨리 돈을 많이 벌어 쇼핑과 코디가 즐거운 사람에게 적절한 보수를 주고 나를 맡기고 싶다.



4. 이곳의 컨퍼런스들은 객석으로부터 질문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래서 한시간 짜리 컨퍼런스에 가면 30분 발제를 듣고 30분 질의응답을 한다.
사회자와 패널로 참석한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일까를 생각해본다면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다. 머리는 든 것 많아 무겁고 손은 해본 것 많아 재빠르고 입 안 가득 들려주고 싶은 말 뿐일 사람들일 텐데, 교수님이랑 노래방을 가면 마이크를 절대 내려놓으시지 않아 곤욕스럽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자기 할 말 하기보다 상대방이 궁금한 점에 대해 내 전문 분야인 만큼 무엇이든 설명해주겠다는 자세가 멋있었다.
그것이 진짜 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5. 리차드(보스)의 전문 분야는 미-러시아-동북아 안보다. 

덕분에 요즈음 수 많은 안보 관련 컨퍼런스들을 다니며 내가 얼마나 이 분야에 관심이 없는지 새삼 확인하고 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미국 미사일 방어 시스템 컨퍼런스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은 단 한가지였다. 퇴역 장성이라는 보기만 해도 불독같은 아저씨가 미 국회 고풍스러운 방 안에서 'lighten up the mood'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던 모습이다. 중요한 자리에서 중요한 말을 할 일이 많았지만 그 때마다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듣는 사람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각자의 배경에 대해 손을 들어 답변해달라고 했는데, 국방부 소속인지, 국회의원실 소속인지, 관련 분야 기업체 사람인지 등등, 나같은 인턴 쩌리가 손 들 칸은 없었지만, 아무렴 좋았다.



6. 경영학에서 abc알파벳과 같은 것이 Voice Of Customer(VOC)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고객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나는 얼마나 경청하는 사람인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던 19세기 세이의 법칙과 같이 답정너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7. 지난 목요일에는 "Balancing Interests and Values in Foreign Policy-U.S. and Japanese approaches"와 "The World Bank's "Program-for-Results:" New Instruments for Development"라는 두 개의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외무와 해외 지원 사업에 대한 날이었는데, '지구촌'이란 곳이 정말 촌락처럼 평온할 순 없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8. MIT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산상 서바이벌 게임을 열었던 적이 있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고 그 때에도 언어 장벽의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라 정확하지 않지만, 대강 팀별로 한 개체씩 프로그래밍을 하고, 기본 몇 점에서 시작하여, 한 턴에 만난 상대에게 점수를 줄 수도 뺏을 수도 있고, 0에 도달하면 탈락, 이렇게 무한 번 만남을 반복 하면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가 하는 대회였다.
무작위로 만나게 된 다른 개채에게 무조건 +1을 할 수도 있고, 무조건 -1을 할 수도 있고, 조건을 설정하여 *예를 들면 처음 만난 상대에게는 무조건 +1을 주지만 그 다음번에 또 만나게 되었을 경우에는 상대의 지난 행동에 따라 인과응보 하도록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뿐 아니라 행동심리학, 정치사회학 등 각 분야의 기라성 같은 참가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프로그래밍을 출품했지만, 우승자는 놀랍게도 내가 들었던 간단한 예시였다.
'Reciprocal'이라는 한 단어만 똑바로 기억난다.

신뢰의 조건이 의외로 간단해서 반복거래만 있으면 성립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내가 보는 nCr 무수한 조합의 외교관계들은 기본 디폴트가 교착상태인 것 같다.
반복거래로 말할 것 같으면 '행성운명공동체'만한 게 또있을까. 인터스텔라를 잠시 제껴두자면 우리는 같은 행성에서 떠나지도 못하고 평생 함께 복작거려야 할 운명인데, 언제부터 이리 다시는 안볼 나라처럼 혹은 처음 보는 나라처럼 서로를 대하기 시작했을까?
각 정체(政體)들이 너무 바뀌어서 정권이 교체될 때 마다 백지에서 새로운 약속을 해야 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사회적 제도와 법치주의에 기대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믿을 놈 하나 없는 것인지. 카오스는 확장된다. 안녕 인터스텔라



9. 어제 밤에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보았다. 엔딩이 딱 좋았다. 내 조카가 환장할만한 영화다.
그리고 오늘은 DC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다녀왔다. 
사실 중학생 때 여행객으로 가본 곳이었다. 대리석으로 수놓인 미국의 말쑥한 정치 수도에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박물관들이 엄청난 규모로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있는 것을 보며 나는 미국이란 매우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십여년이 지난 오늘, 나는 그 박물관보다 더 많이 바뀌어 돌아왔다.
내가 큰거겠지만 공룡들이 쭈그러들어 있었다. 박물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 것 말고 밖에서 실체를 보고 싶다. 살아나라 티라노!



10. 근데 뒤통수가 왤케 서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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