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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Oct 24. 2021

LA에 가면 LA갈비를 먹을 거야


글. 이지나



여행을 떠날 때 특별한 기준이나 원칙은 두지 않으려 하지만 여행을 거듭하며 자연히 갖게 된 몇몇 습관이 있다. 일단 짐은 가능한 적게 꾸린다. 평소에 세 가족이 함께 일주일 이상 여행하는 경우에도 짐가방은 하나만 가지고 간다. 아이와 여행을 하면서도 짐을 가볍게 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는 일단 음식을 챙겨가지 않는다. 케냐로 사파리를 떠났을 때나 유럽을 기차로 여행할 때, 열흘 넘게 쿠바의 여러 도시를 다닐 때도 즉석밥이나 컵라면 혹은 간단한 군것질 하나 가져가지 않았다. 현지에 가서도 따로 한식당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과 문화를 찾고 경험하는 것은 여행이 주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그러나 내게도 예외가 하나 있다. 여기에 갈 때만큼은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가방을 꺼낸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 그리고 있는 힘껏 최대한 많은 짐을 꾸린다. 도착해서도 한식을 찾아다니면서 먹는다. 직접 장을 봐서 밥을 짓고 찌개도 끓인다. 바로 로스앤젤레스를 여행할 때다.


처음 로스앤젤레스에 왔을 때는 부모님과 함께였다. 엄마는 집에서부터 단비에게 줄 온갖 먹거리를 챙겨 오셨고, 낮에는 관광을 하고 저녁에는 단비네 집에서 다 같이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었다. 내가 다시 여행을 갔을 때도 비슷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캐리어 가득 채워온 각종 먹거리를 거실에 작은 산처럼 쌓아놓고 단비랑 가져간 신상 라면을 끓여먹었다. 다음 날 저녁엔 무려 교촌치킨을 배달시켰다.

차를 타고 로스앤젤레스 시내를 다니다 한인타운을 지나갈 때면 늘어선 한국 간판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그 이질감에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바로 그런 면이 이 도시가 가진 다양성의 한 조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해외에서 먹는 한식만큼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나는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곳은 순두부찌개를 파는 한 식당이다. 순두부찌개를 주문하면 정갈한 찬으로 상이 차려지고 뜨거운 뚝배기에 용암처럼 팔팔 끓는 빨갛고 얼큰한 찌개가 담겨 나온다. 곧바로 날달걀을 톡 깨트려 넣으면 열기로 금세 익어 부드럽고 고소한 찌개를 맛볼 수 있다. 찌개도 맛있지만 여기에서 꼭 주문하는 것 중 하나는 갈비다. 우리가 흔히 LA갈비라고 부르는, 뼈에 살점이 붙어있고 군침이 도는 달큰 짭짤한 맛에 불향이 입혀진 갈비가 역시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 듬뿍 담겨 나온다. 두툼한 갈비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기름진 입안을 순두부찌개로 개운하게 넘겨주면 고슬고슬한 쌀밥 한 공기는 뚝딱이다. 바닷가를 여행할 때 해산물을 먹고 계절이 바뀌면 제철 음식을 찾는 것처럼 언제부턴가 나는 로스앤젤레스에 오면 꼭 이 식당에 들러 갈비를 먹는다. 언젠가 한 미식 프로그램에서 순두부찌개 맛집을 소개하며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이 가게를 선정한 것을 보았다. 한국에도 맛집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멀리 있는 식당을 뽑다니. 그러나 미쉐린 가이드의 선정 기준 역시 그 식당을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일견 납득이 된다. 음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음식 자체를 넘어 모든 장소와 상황을 아울러 맛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다음번에도 그 다음번에도 로스앤젤레스에 오면 나는 또 이 식당을 찾아올 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향토음식을 맛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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