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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Oct 24. 2021

낯선 도시가 나의 집이 되기까지

 


글. 이단비



뭐든 익숙해지고 적응하려면 시간이 든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찾아가야 했던 길이 이제는 주변에 뭐가 있는지 설명할 만큼 익숙해지기도 하고, 어색함에 거리를 두던 사람과 속마음을 털어놓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내가 이 도시와 낯가림을 끝내고 친해지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문화교류 비자인 J1을 받아 취업해서 처음 미국에 왔다. 이 비자의 경우 약 1년에서 1년 반만 유지할 수 있다. 비자 유효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다른 비자로 바꾸거나 미국을 떠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린다. 나고 자란 나라에서는 거저 주어졌던 신분이 이국에서는 증명하거나 보장받으려면 어렵고 복잡하며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든다.

1년의 인턴생활을 마친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학생비자인 F1을 받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1년간의 미국 생활에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영어를 많이 배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러지 못했고,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니 새삼 욕심이 생겨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미국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벌어놨던 돈은 점점 떨어지고, 역시 나는 공부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로망 가득했던 공부가 나와 그다지 맞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지인을 통해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왔고 얼결에 인터뷰까지 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미국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비자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회사의 스폰을 받아 취업이민 영주권을 신청했고, 1년 반 만에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적으니 간단해 보이지만 취업이민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가장 어려운 것은 스폰을 해주는 회사를 찾는 일이다. 미국 내 몇몇 기업이 영주권 스폰을 해주는 조건을 악용하여 취업자를 착취하는 사례가 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대개는 비자 문제의 어려움을 잘 알고 이해해주는 경우가 많다. 나는 운 좋게 기회를 얻었고 취업이민 과정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민국의 일은 예측할 수가 없다. 담당 변호사가 아무리 1년 정도를 예상해도 그 기간을 훌쩍 뛰어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주권 하나를 받는데 5년이 걸린 사람을 보기도 했다. 나의 경우는 취업이민 상담을 위해 변호사를 만난 날로부터 정확하게 1년 반이 걸렸다. 감사한 일이다. 신분이 해결되고 나면 안정감이 생기고 마음이 편해진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나 역시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반대였다. 영주권 취득 이후의 삶이 오히려 슬럼프였다. 이직을 준비하는 상황이 쉬이 풀리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매달 높은 집세와 생활비를 지출하는 생활이 힘겨웠다. 이 나라는 내가 이곳에 살아도 된다고 허락했지만, 여전히 나는 이곳이 낯설었고 점점 더 버거워졌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적응되고 편해져야 할 텐데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이 언제나 남아있었다. 내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남들은 따뜻하다고 이야기하는 여기가 왜 그리 차갑게 느껴졌는지. 나는 외로움에 지독한 향수병을 앓았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 긴 침묵 끝에 새로운 직장에 입사했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을 살았다. 아침이면 간신히 일어나 출근하고, 일을 하면서 혼도 나고 화도 내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봤다. 그렇게 주중을 보내고 주말이 되면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산타모니카 해변을 걷고 더 그로브에서 쇼핑을 하고 랄치먼트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익숙해지니 무엇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날들 사이로 가족들이 하나 둘 여행을 오기 시작했다. 나 혼자 지내던 공간에서 엄마가 밥을 먹고, 아빠가 잠을 잤다. 주말 아침 슬리퍼를 신고 가던 카페에 언니와 얼이와 함께 갔다. 자주 가던 쇼핑몰에서 작은 언니와 옷을 사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갔다 늦게 돌아오는 동생을 집 앞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내 이름. 나는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다. 호적과 등본에 올라간 이름 말고 우리 가족이 불러주는 이름. 원래는 돌림자를 써서 ‘이화나.’ 이게 나의 이름이다. 학교와 직장을 포함해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이 나를 이렇게 부른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도 영어 이름 따로 없이 이 이름을 쓰고 있다. 그러나 가족들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부르던 대로 나를 단비라고 부른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 이름을 뭐라고 할지 한참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단비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 언니 글에 내 이름이 계속 들어가는데, 언니가 도저히 화나라고는 못 쓰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언니는 나를 한 번도 그렇게 불러본 적이 없으니까.

나는 익숙한 이름으로 불리며 로스앤젤레스를 처음 ‘여행’했다. 뜨거운 햇살에 투덜댔는데, 언니는 미세먼지 없이 맑은 날씨가 행복하다고 했다. 몰랐던 관광지와 숨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가끔 가던 순두부찌개 집이 사실은 유명한 맛집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매일 비슷한 날씨와 늘 보는 흔한 풍경이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좋은 곳에 살고 있구나. 로스앤젤레스가 참 아름답구나. 그렇게 가족과 함께 여행하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알았다. 이제 여기가 나의 집이 되었다는 걸. 여행 후에 돌아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는 걸. 


여전히 로스앤젤레스의 햇빛은 뜨겁다. 하지만 이따금 온기를 품은 시원한 바람이 분다. 나는 이곳의 따뜻하고 상쾌한 바람을 아주 좋아한다. 로스앤젤레스 특유의 여유도 좋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친근감도 좋아한다. 단박에 빠져든 강렬한 사랑은 아니어도 나는 로스앤젤레스를 천천히 조금씩 좋아하고 있다. 내 삶의 3분의 1을 보낸 나의 두 번째 고향. 이제는 여기가 나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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