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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Mar 05. 2017

사랑해 얼만큼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내 이름은 이름입니다." 


동부 아프리카에 갔을 때, 내 이름 지나 Jina가 스와힐리어로 ‘이름’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래서 탄자니아와 케냐에서 내 이름을 소개할 때는 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이름은 이름입니다.” 하고 인사를 했으니, 얼마나 엉뚱하고 우스웠을까. 그래서 좋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이름은 잊지 않고 잘 기억해주었으니까. 나는 영어 이름도 따로 쓰지 않고, 온라인이나 SNS에서도 그냥 내 이름을 쓴다. 누구에게나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싶고, 어느 나라에 가고, 누구를 만나도 내 이름 하나로 불리는 게 나는 좋았다. 반면 남편은 이름에 받침이 많고 발음이 어려워서,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영어 이름부터 만들었다고 했다.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온 것을 알았을 때, 우리도 여느 부모들처럼 아이 이름을 두고 한동안 고민했다. 이름은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첫 선물이니까. 평생을 간직하는. 그래서 우리는 얼이에게 열방을 두루 다닐 수 있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아주 한국적인 이름을. 그렇게 해서 짓게 된 이름이 '얼'이었다. 

얼, 영어로는 Earl. 원어로는 nobleman, warrior, prince(존귀한 사람, 군사, 왕자)라는 의미가 있고, 우리 말로는 말 그대로 얼. 마음, 정신, 영혼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18


우리는 우리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의 영원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얼이에게 평생 불릴 이름을 선물했다. 

보이지 않는 것, 경험과 지식을 소유하는데에서 더 깊은 만족을 얻고, 

보이지 않는 것, 진리와 내면을 자랑하는 것에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런데, 막상 이름을 짓고 보니 부모님께서 걱정을 하셨다. 이름이 특이해서 나중에 놀림을 받으면 어쩌냐며.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얼이 이름을 너무 좋아해서 요즘엔 맨날 별명을 만든다. ‘얼’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얼쑤, 얼짱부터 얼렁뚱땅, 어리둥절. 기분 좋은 얼이는 흥얼흥얼, 징징대는 얼이는 찡얼찡얼….

바라건대, 나중에 만약 어느 친구가 얼이에게 “얼빠졌네”하고 짓궂게 놀리더라도, “너 나한테 빠졌어?”하고 호쾌하게 받아칠 줄 아는 마음이 단단하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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