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by 이지나

우리 셋이 사랑에 빠졌던 도시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시간은 이 도시의 거리에서 부는 바람처럼 빠르게 지나갔고, 내일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시간을 채워 넣기로 했다. 해가 지고 도시가 어둠 속으로 스며들자, 우리는 Marriott Marquis 호텔 39층에 있는 라운지 바로 갔다. 세계에서 뷰가 가장 아름다운 레스토랑 순위에 뽑혔던 곳이라며 남편이 데리고 간 그곳은 엘리베이터에 내리는 순간, 그대로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했다. 사람들이 곳곳에 앉아서, 혹은 자유로이 서서 한 손에는 잔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음악과 대화 소리가 기분 좋게 어우러졌고, 눈 앞에도, 등 뒤에도 온통 반짝이는 밤의 샌프란시스코가 펼쳐졌다.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 곳에서의 날들은 꿈같고, 눈 앞의 풍경은 별과 같았다. 더할 나위 없었지만 그렇기에 떠나기 아쉬운, 마지막 밤을 보내기에 완벽한 곳이었다. 늦은 밤 루프탑 바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우리 셋은 기분 좋은 유쾌함을 즐기다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은 일찍 일어나서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에서 몇 블록 떨어진 Palace 호텔로 가서 조식을 먹기로 했다. 이번에는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예약해서 아파트에 지내느라 누리지 못했던,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호사를 마지막으로 즐기고픈 마음이었고, 무엇보다 샌프란시스코에 오기 전 사진으로 보았던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이 호텔에 꼭 한번 들러보고 싶기도 했다. 어젯밤의 루프탑 바가 반짝이고 시끌벅적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같았다면, 이번에는 박물관에 걸린 근사하고 화려한 금장 프레임 속 그림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1800년대에 지어졌다는 이 유서 깊은 호텔의 가든 코트는 높은 천장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온통 고요한 빛으로 가득했다. 감탄을 넘어 감동을 자아내던 그곳에서 우리는 느긋하게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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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숙소로 돌아와 떠날 채비를 마친 우리는 며칠 동안 우리에게 아늑한 집이 되어주었던 아파트를 나와서 공항으로 향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며 이런저런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얼이를 데리고 짐가방을 끌고, 올 때처럼 bart(*샌프란시스코의 지하철/고속철도)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사실, 여기부터는 모든 기억이 또렷하지가 않다. 도대체 그 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우리 둘의 시계에 동시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던 건지.

남편은 늘 시간을 꼼꼼히 챙기는 편이고, 그날도 평소 여행 다닐 때와 다름없이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이 촉박했다거나 늦어서 서둘렀던 기억도 없다. 그런데, 열려있어야 할 항공사 데스크가 모두 닫혀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어떤 상황인지 몰랐고,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무슨 착오가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항공사 직원이 없길래 공항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 우리가 타려는 항공사는 이미 모든 수속을 끝내고 전부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세상에. 맙소사. 지금 우리가 무슨 얘기를 들은 거지. 지금까지 비행기를 족히 100번은 넘게 탔을 텐데, 이런 상황은 겪어본 적도 없고 상상해보지도 않았다. 탑승수속이 끝났다니. 말도 안 돼. 머리가 쭈뼛서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황이 파악되자 그때부터는 이리 뛰고 저리 뛰기 시작했다. 이대로 비행기를 놓친다면 벌어지는 모든 경우의 수가 머릿속으로 일순간에 쏟아져 들어왔다. 어느 외딴 시골에서 막차를 놓친 연인들이라면 이 상황이 그저 재미있고 로맨틱한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어린 아기가 있는 가족이었고 근면하게 일상을 지속해야만 여행을 떠나올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내일 당장 회사로 출근을 해야 했고, 내게도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있었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아직 이유식을 먹는 어린 얼이가 있었다. 무조건 돌아가야 했다. 다른 방법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공항 직원들에게 다급하게 도움을 청하고, 한국과 미국의 항공사 사무실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눈 앞이 아찔하고 애가 달았다. 등이 서늘한데도 땀이 솟았다. 바짝 마른입에서 두두두두 쏟아져 나온 단어들이 사방에 부딪쳐 콩처럼 이리저리 튀었다. 공항에서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고, 한국은 시차 때문에 연결이 되지 않았고, 미국의 사무실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남편은 순식간에 몰아닥친 절망감으로 이내 얼굴이 캄캄해졌다. 바로 앞 유리로 된 벽 너머에 출국장이 보였다. 우리에게는 여권도, 티켓도 있었고, 아직 시간도 있고,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도 그 건너에 있었지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출국장 바로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는 동안에도 시간은 차곡차곡 흘러갔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우리가 탑승해야 했던 항공사 직원들이 출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비행기는 결국 문을 닫고 떠난 것이었다. 직원들은 황망한 표정의 우리에게 별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그대로 돌아갔다. 우리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쳤다.


멍한 우리 셋은 공항에 남겨졌다. 이미 공항에서 몇 시간을 보낸 후였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하루에 한 대 뿐이니 이제는 당장 대책을 세워야 했다. 만약 우리가 태평양을 건너는 게 아니라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서라도 집에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내일까지 집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비가 살고 있는 LA로 갈까 했지만, 역시 비행 편이 없고 비용도 만만치가 않았다. 다른 대안이 없었던 우리는 결국 맞물려있던 주말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고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침이 된 한국과 미국의 항공사 사무실에 수차례 전화를 더 한 끝에, 돌아가는 티켓을 3일 후로 변경했다. 남편은 무거운 표정으로 회사에 연락을 했다. 내가 얼이를 출산할 때, 진통이 시작된 나를 병원에 홀로 두고도 출근을 해야 했던 남편이었다. 그리고 출산한 다음날에도 나와 갓 태어난 얼이를 병원에 두고 남편은 한없이 미안해하며 출근을 했었다. 그런 회사에 여행지에서 비행기를 놓쳐 내일 아침 출근할 수 없을 예정이라는 연락을 했으니.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한나절이 지나있었다. 하루를 공항에서 보낸 것이었다. 더욱이 이제 해가 지고 있어서 곧 어두워질 것 같았다. 발등에 다시 불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여기서 묵을 숙소를 찾을 차례였다.

우리 둘은 물론이고 한국과 LA에 있는 동생들까지 모두 동원해서 인터넷을 뒤져 숙소를 찾았다. 우리가 에어비앤비로 머물렀던 아파트는 비용도 비쌌고, 연락을 해보니 이미 다른 예약자가 있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도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도시 중 하나이고, 학회나 대규모 콘퍼런스 같은 행사가 자주 열려서 시즌에 따라 숙박비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여행을 준비하며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그런 시즌이었던 건지, 아니면 당일 예약이 가능한 곳을 찾느라 그랬는지, 아무리 찾아도 방은 없고 그나마 남아있는 곳은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또 몇 시간이 흐른 뒤에 가까스로 호텔 하나를 찾았다. 낡고 오래된 곳이라고 했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날 우리 셋 중 가장 침착했던 것은 얼이였다. 공항에서 머무는 내내 경황없고 부산스러웠던 엄마, 아빠 사이에서 유모차에 앉아 기다리는 얼이를 보고 우리를 도와주었던 공항 인포메이션센터의 직원들은 ‘good boy’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여기저기 전화하며 항공권을 변경하고 호텔을 찾는 동안 얼이는 공항 한편에서 신나게 뛰어놀다가 유모차에서 조용히 잠이 들었다. 고맙고 미안한 감정이 뒤엉켜 마음이 시큰해졌다. 문득 허기가 져서 조식을 먹은 것 외에는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일단 끼니를 때울 겸 공항 한쪽 구석의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얼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던 옆 테이블의 독일인 가족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행운을 빈다며 아이 간식인 바나나와 이유식을 우리에게 나누어주고 갔다. 생각지 못했던 커다란 그림자가 우리 삶에 드리워지는 순간들이 있어도, 우리가 발견하기만 한다면 어디에나 은혜가 있고, 언제든 감사할 이유가 곳곳에서 반짝이며 빛을 낸다. 마침내 우리는 오전에 탔던 bart를 타고 다시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돌아왔다. 밤이 되었다.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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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의 두 번째 숙소는 처음 지냈던 아파트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첫 번째 숙소였던 아파트는 널찍하고 쾌적한 공간에 거실의 전면 창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요리가 가능한 부엌과 샤워실에 드레스룸까지 갖춰져 있었다. 일 층 로비에는 잘 차려입은 도어맨이 서있고, 반짝이는 바닥에 경쾌한 소리가 나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런데 이 호텔은 좁고 어두운 입구를 간신히 찾아서 들어서니 통로 안쪽 깊숙한 곳에 미국 영화에서 많이 보던 것 같은 작은 리셉션이 있었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말수 적은 할아버지 한 분이 창 너머에 앉아계셨다. 100년이 넘은 호텔이라고 했다. 그 호텔의 이층 구석 작은 방이 우리의 새로운 집이었다. 모든 것이 정말 100년은 족히 된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간신히 예약한 방은 그마저도 화장실이 없고 방 한편에 세면대만 있는 방이라, 내일 다른 방에 자리가 나면 화장실이 있는 방으로 옮기고 싶다고 얘기해두었다. 방은 작았고, 침대와 오래되고 단단해 보이는 나무 책상 위에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하나 놓여있었다. 화려한 무늬의 카펫과 꽃무늬 시트가 깔린 침대가 놓인 그 방에 간신히 짐을 풀고, 남아있는 돈을 털어 호텔 맞은편에 있는 햄버거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넓고 창백한 매장은 거의 텅 빈 채로 바닥에는 쓰레기가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고, 우리가 햄버거를 먹는 동안 가게 한편에서는 술에 취한듯한 사람이 계속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호텔로 돌아와 작은 세면대에서 복닥이며 씻고, 침대에 셋이 꼭 붙어서 이불 하나를 나누어 덮고 나란히 잠이 들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바로 전 날 밤 우리는 별빛이 내려앉은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 꼭대기 층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아침에는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 아름다운 곳에서 근사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다시 여기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렇게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우리에게 느닷없이 주어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려는데 남편이 말했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가 생각난다고.

‘행복을 찾아서’는 샌프란시스코에 오기 전,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찾다가 보게 된 영화였다. 윌 스미스와 그의 실제 아들인 제이든 스미스가 아버지와 아들 역을 맡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는 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제목과 달리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보인다. 특히 주인공인 크리스가 집을 잃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이 도시의 곳곳을 전전하며 밤을 지새우는 장면은 부모가 되고 나니 그 절박함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먹먹하고 아프게 와 닿았다. 그렇게 그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함께 있기 때문에, 또 함께 있기 위해서 겪는 그 치열한 간절함이 결국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그 아침에 그 영화 이야기를 했다. 상황은 거짓말처럼 달라졌지만 감사와 기쁨은 더 커졌다면서, 바로 지금 여기 우리가 있는 곳이 행복이 아니겠느냐고.

정말 그랬다. 우리는 작은 바나나에 감격하고, 서로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고, 힘주어 손을 잡고, 짐을 나눠 들고, 함께 얼이를 씻기고, 꽃무늬 이불을 덮고 깔깔대며 웃었다. 그리곤 서로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작은 침대와 하나뿐인 이불이 서로의 온기로 우리를 이끌어주었다. 그렇게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을, 무엇을 해도 괜찮을, 온전히 비어있는 하루가 우리 앞에 놓여있었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에서 3일을 더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선물로 주어진 모든 순간들을 기꺼이 더 사랑하며 보내다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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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감사가 더 커진 것은 사실이었다.

평소 신용카드를 쓰지 않던 우리 부부는 여행을 떠날 때도 늘 필요한 경비만 환전해가서 사용했고,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가지고 있던 비용은 여행 마지막 날 가족들의 선물을 구입하며 거의 다 썼으니 당연히 우리에게 남아있는 돈은 없었다. 다행히 가져온 체크카드가 있어서 얼마간의 돈을 출금했지만 갑작스러운 일정이니 넉넉하지 않았고, 이제부터는 아껴 써야 했다. 더욱이 한국에서 만들어 준비해왔던 얼이의 이유식도 모두 먹어서 더 이상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셋이서 더 많이 걸어 다녔고, 저렴하고 양이 많은 식당을 찾느라 차이나 타운에 갔다가, 지금까지 먹어본 것을 통틀어 가장 맛있는 중국음식을 파는 식당을 발견했다. 그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나오는 길에는 남편이 가고 싶어 했던 오래된 서점도 우연히 마주쳤다. 얼이는 완료기 이유식을 마치고 자연스레 우리와 함께 식사를 시작했고, 얼이에게 먹일 음식을 찾기 위해 마트에 가서 장을 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실용적인 물건들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바닷가에 다시 가서 바다사자를 보고, 공원에서 산책을 했다.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어도 즐겁고, 걸어 다니는 것도 재미있었다. 우리는 다시 만난 이 도시를 더 천천히 거닐며 찬찬히 보고, 함께 더 많이 웃었다. 그것은 정말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그 작고 오랜 호텔에서 머물렀던 3일간, 우리는 매일 방을 옮겼다. 세면대만 있던 작은 방에 있다가 화장실이 있는 방으로 옮기니, 처음엔 그저 낡고 좁다고 생각했던 방이 어찌나 널찍하고 좋던지. 이 여행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과 소중한 것들을 일러주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낸 날들은 내 삶의 가을이었다. 지난하고 고단했던 무더운 여름을 치열하고 끈기 있게 보낸 우리 셋에게 주는 무르익은 열매였다. 나의 수고에 햇살과 비처럼 내리는 은혜를 더해 추수하는 시절.

영화 ‘행복을 찾아서’에서 보이는 행복한 순간은 아주 짧게 지나간다. 진정 행복이 그저 삶의 짧은 순간이라면, 행복했던 짧은 여행 후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조금 더 단단해진 감사와 사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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