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하기
산에 올랐던 이유, 사는 이유
스무 살에 선배 형들과 ‘지리산 특공대’를 결성, 처음 지리산에 오른 이후 매년 꼬박꼬박 지리산, 설악산 종주에 나섰다. MTB 페달에 발을 걸고부터는 북악산 힐클라임 대회에 참가하고 한라산 1100 고지 정복을 몇 번 시도하기도 했다. 주말 아침 북한산 등산은 산책이고, 관악산이나 청계산에 가는 것은 소풍이라는 오만도 가지고 있다.
처음 지리산을 경험하고 다짐한 게 있었다. 매년 설악산과 지리산을 번갈아 올라야겠다고. 기력이 다해버릴 때까지. 아주 오랜 후에도 그런 건강과,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이었다. 산은 항상 나를 부른다. 가놓고 왜 이 고생일까, 후회도 한다. 그런데도 계속 가는 것을 보면 산에는 무언가가 있다. 산에 들어서면, 길은 끝을 내야 한다. 안에서는 고통스러운 시간도 많지만 언제나 산은 나를 부르고 나는 따라간다. 후회한 적은 없다. 떠날 때는 가슴 설렜고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었을 땐 어떤 안도감과 기쁨이 교차했었다.
재미없는 삶 살지 말라고 설파하는 김정운 교수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산에 오르는 이유는 감탄하기 위함이고, 인간은 감탄하기 위해 산다는 이야기가 참 좋았다. 식욕과 성욕은 인간만의 욕구가 아니지만, ‘감탄하려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산에 모두들 열심히 올라간다. 도대체 왜 산꼭대기에 오르는가? 누군가는 폼 잡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산이 거기에 잇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고. 또라이다. 왜 그렇게 산에 오르는지 자기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폼 잡고 이야기하는 거다.
산꼭대기까지 죽어라 오르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건강하려고 산을 오른다면 중간까지 왔다 갔다 하면 되지, 왜 그렇게 죽어라 하고 정상에까지 올라가는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도 아니고,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다. 감탄하기 위해서다.
산꼭대기에 올라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우와~!" 하며 감탄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날 보고 끝없이 반복해서 해준 그 감탄이 그리워서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도 나를 보고 감탄해주지 않는다. 감탄할 일도 없다.
김정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 나도 폼 잡고 싶었던지 앵무새처럼 나도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순식간에, 책 표현대로 ‘또라이’가 되었다. 그렇게 살아도 문제는 없지만 ‘감탄하려’ 산다는 이유는 굉장히 신선했다. 정말로 그랬으니까. 산이 거기에 있든 우주가 거기에 있든, 산으로 우주로 왜 가야 하는지, 오히려 이유가 좀 더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감탄하러’ 간다.
산은 제멋대로 생긴 것 같아도 품속으로 들어가면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그 리듬을 타면 빨라진다. 산과 호흡하는 느낌은 경이롭다. 히말라야만큼이나 지리산, 설악산 자락도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 등산 중 멋진 순간들이 “more meaning"을 가지기 위해서는 열심히 생각하고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항상 산에서 돌아오면 정리되지 않은 메모가 차곡차곡 쌓였다.
여행의 기술로 만드는 행복한 일상 #09 감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