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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스키 Oct 18. 2015

나의 화성 생존기

「마션」 촬영지 와디럼 사막을 달리다

마션
Mars’ Twin Peaks, two roughly 100-ft tall hills, by Mars Pathfinder on July 4, 1997 ⓒNASA/JPL

올해 최고의 우주 영화가 될 「마션(Martian)」.  원작은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영화를 보면서, 과학적 사실에 대한 탄탄한 묘사에 감탄하며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이런 소설을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소설 『마션』의 저자 앤디 위어 (Andy Weir)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프로그래머였습니다.

앤디 위어 (Andy Weir) 저자 소개

개인 블로그에 연재하던 소설이 점점 큰 인기를 얻어 책이 되고,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들어지는 마법 같은 이야기. 「마션」이 주는 임팩트도 크지만 이 일반인 작가가 소설을 쓰게 되고 그것이 책이 되고 영화가 되는 과정 또한 화성 탐사 만큼 꽤나 미래적입니다. 일반인이  소설영화를 만들고, 영화는 소설가에게 영감을 주었을 나사에 힘을 실어 주고요. 이런 조화와 연결고리가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거라니, '글의 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마션」은 큰 성공을 거둔 우주 영화들과 조금은 다릅니다. 최근의 「그래비티」에서 표현된 적막한 우주, 「인터스텔라」가 구현해낸 현대 물리학이 전면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좀 더 강조된 측면이 있다면 첨단 우주공학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기반한, 적당한(?) 현실감!

우주인 선발에 탈락했던 저로서는, 「마션」에서 보여주던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활약이 그리 놀랍지 않았습니다. 그가 영화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이미 '우주비행사'였으니까. 마크 와트니는 영화 속 화성 탐사 미션인 '아레스'의 대원인 우주비행사입니다. 우주비행사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조종사뿐만 아니라 과학 임무를 수행하는 과학자도 우주비행사가 됩니다. 와트니는  그중 식물학자였고, 화성에서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된 지적 능력, 신체적 조건, 건강한 정신 상태 모든 것을 갖추고 경쟁과 훈련에서 살아남은 대단한 인재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가 우주비행사라는 사실만으로.


마션에서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그를 구하기 위해서 지구에서도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아레스' 대원들은 화성에 가게 되었을까요? 그게 영화의 중요한 테마는 아닙니다만, 화성으로 가는 건 오래된 우주개발의 숙원사업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인공위성과 로봇이 화성을 탐사해왔지만 인간이 직접 화성을 탐사하는 건 차원이 다른 기술. 그래서 아직도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데, 인류는 인공위성과 로봇을 보내 화성과  조우시키며 가능성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화성에 착륙한 1965년의 매리너 4호, 마스호, 바이킹호, 포보스호, 1997년의 패스파인더호, 현재도 임무 수행 중인 로버 오퍼튜니티, 큐리오시티 등등.

영화에서 등장하는 과학적 화두는 깜짝 놀랄 만큼 현실적인데요('마션'을 봤거나, 볼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 딴지일보 기사), 그도 그럴 것이 NASA는 이 영화에 상당한 투자를 했고, 기술적 자문 자문을 포함한 아낌없는 지원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구 장면은 주로 NASA  우주선 관제센터이거나 NASA와 한 몸인 제트 추진 연구소이고, NASA의 역사적 화성 탐사 프로젝트 패스파인더, 화성 탐사 위성들이 찍어준 화성 지도도 등장합니다. NASA 홈페이지에 마션 특집 페이지도 생겼는데, 영화가 충분히 현실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그들의 기술을 조곤조곤 설명해줍니다. 20년 후에 달에 인간을 보내 프로젝트가 실제로 진행  중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NASA: The Real Martians
Curiosity Self-Portrait at 'Big Sky' Drilling Site on Oct. 14, 2015 ⓒNASA/JPL-Caltech/MSSS

저는 「마션」에서 화성에 가려는 그들의 꿈을  '인류의 꿈'으로 만들고 싶다는 NASA의 야심을 보았습니다. 20년 전 영화 「아마겟돈」에서 지구를 구하는 낭만적인 영웅담 속에서 인류의 관심이 소행성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데 있다면, 「마션」에서 인류의 관심은 한 사람, 마크 와트니를 구하는데 쏠려 있습니다. 어쩌면 나사는, 그런 '마음'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우주에 인류를 보내고, 우주 임무를 만들어 우주를 개발한다는 이유가 경제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으니까.

영화 「마션」

지구가 반으로 쪼개졌던 냉전시대, 1961년 케네디의 연설.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 이건 사람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최초의 달 탐사선, 최초의 우주인을 배출해냈으니까. 당연히 미국은 지기 싫었고, 경쟁은 그렇게 인류를 우주와 더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된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NASA의 간절함이 「마션」에 어느 정도는 숨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주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가슴속에 숨은 따뜻한 마음을 꺼내보려는.

영화로 인한 반이 어느 정도일지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이 매체를 통해 사람들이 가지게 될 증폭된 관심은 나가 진행했던 어느 홍보 작전보다 효과적일 겁니다. 「아마겟돈」을 보고 우주를 꿈꾸기 시작했던 열다섯의 저와 같은, 우주 소년들도 많이 만들어낼 테고요.


우주 개발에는 천문학적인 비용도 들어가고, 천문학적 지식을 포함한 온갖 과학, 공학이 다 들어갑니다. 우주인의 심리상태도 중요하기 때문에 심리학까지도 우주 개발의 영역이라고도 하죠. 「마션」에도 우주에서의 물리적 현상이 많이 등장하지만 감탄스러웠던 건 '스윙 바이 (swingby)' 개념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스윙바이'는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자신의 속도를 가속시키는 기막힌 우주항법입니다.

스윙바이-네이버캐스트

우주선의 연료와 식량문제는 인간의 우주 여행에 커다란 걸림돌이기 때문에 우주선을 빠른 속도로 만드는 건 정말 중요한 일. 실제로 목성에 탐사선을 보낼 때 금성과 지구에 가까이 접근해서 스윙바이, 속도를 높니다. 우주선 혼자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 때로 이런 주변 행성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인 그 행성의 도움.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는데, 아프리카인들은 천상 지구인이었나 봅니다. 항공우주공학에 관심이 없었거나. 우주에서는 최소한의 무게로 날아야 하기 때문에 멀리 가려면 혼자 가야 하기도 하지만, 이 적막한 우주에서도 주변의 도움이 있어야 더 빨리 가게 되는 겁니다. 존재만으로도 도움을 주는, 우리 우주.


붉은 사막, 와디럼


화성은 '수금지화목토천해~' 태양계에서 지구 다음 행성으로 친숙한데요, 화성을 개척하자! 화성에 생명체가 살까? 이런 말들을 심심치 않을 수 있으니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지구와 화성 사이 거리는 모두 태양을 따라 돌고 있으니 매 순간 달라지겠지만 공전 궤도로 거리를 따져봤을 때 지구와 태양 거리의 반 정도인 7,500만 km 정도. 지구에서 겨우(?) 38만 km 떨어진 달보다 200배 멀리 있네요.  

distancetomars.com: 지구-달-화성 거리 체감하기

영화 「마션」의 배경은 화성인데, 촬영지는 사막입니다. '붉은 사막'으로 알려진 요르단의 와디 럼 사막 (Wadi Rum Desert). 화성보다 오히려 친숙하지 않은 곳이죠. 화성에 직접 인류가 가보지는 못했지만 60년대부터 화성 탐사선이 보내 준 정보 덕분에 화성의 풍경은 어느 정도 알려져있었고, 그 풍경을 가장 닮은 곳이 바로 와디럼 사막이었던 겁니다.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Jordan Travel-와디 럼 사막, 제벨 카잘리 협곡

요르단 수도인 암만에서 남쪽으로 300km 떨어져있는 황무지. 붉은 모래와 붉은 사암들 때문에 붉은 사막이라 불리는 곳. 기암 괴석들이 늘어서 있는 이곳은 조금이지만 비와 눈이 내리고 사계절이 있는, 사하라 사막처럼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것과 다른 사막입니다. 와디럼에서 가까운 고대 도시, 세계문화유산 페트라와 함께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인디아나 존스」 촬영지이기도 한 이 황량한 곳은 이미 관광지로 많이 개발되었습니다. 드라마 「미생」 마지막회에 등장한 사막 유목민 베두인 캠프에 머무는 체험도 할 수 있고, 낙타 투어, 지프 투어, 사막 트레킹 등으로 쉽게 화성 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말!

요르단 와디럼 사막 투어


화성을 달리다


요르단 와디럼 사막을 달리는 극한 마라톤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글: 누군가를 위해 여행한다는 것) 오지레이스를 기획하는 '레이싱더플래닛'의 성공한 상품 '4대 사막 마라톤'의 하나인 'Sahara Race'에 참가하기로 했는데,  당시 이집트의 테러 위험 때문에 대회 이름은 '사하라 레이스'이지만 대회는 사하라가 아닌 요르단 와디럼 사막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Sahara Race 2014 in Jordan, Stage 1 ⓒRacing the Planet

「마션」을 어디서 찍었는지 모르고 영화를 보면서 와디럼 사막 생각이 많이 났는데, 예전부터  사하라를 달리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아있었지만, 이 마션 덕분에 오히려 화성을 달린 뿌듯함이 생겼습니다. 레이싱더플래닛에서 주최하는 4  deserts는 아타카마 사막, 고비 사막, 사하라 사막, 마지막 사막 남극으로 이를 모두 완주하면 그랜드슬래머라고 부릅니다. 참가 조건은 그저 건강한 사람. 여기에 꽂혀서 어마어마한 참가비를 마련하고 사막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이 오지레이스 기획사의 마케팅 기술에 감탄하게 됩니다. 저도 홀딱 반해 홀랑 넘어가버렸으니까요.

이 중 아타카마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달의 지형과 닮아서 우주비행사들이 훈련하는 곳으로도 알려져있습니다.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Chile Travel-Atacama 달의 계곡, 붉은 노을) 우주를 닮은 지형, 극한의 환경을 애써 찾아가고 거기서 굳이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제가 참가했던 '사하라 레이스 2014'에도 190명의 세계 각국에서 '제 정신 아닌' 사람들이 사막을 달리겠다고 와디럼에 모였습니다.

'Sahara race in Jordan' 코스지도 ⓒRacing the Planet

자기가 먹을 음식과 각종 레이스 장비, 침낭과 옷가지들을 배낭에 욱여넣고 하루에 40km씩, 일주일 동안 250km를 달리는 레이스.

과연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사막의 밤 추위와 모래 바람을 막아줄 쉴 곳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와디럼의 유목민 베두인들이 매일 저녁 쉬어 갈 텐트를 쳐주고, 주최 측에서는 물을 10km 마다 체크포인트에서 제공합니다. 그 외에 별다른 편의는 없습니다. 돈 내고 왜 이런 사서 고생인가요. 그래서 참가자들끼리 서로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직접 먹을 것을 일주일치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무게를 감당 못해 가볍고 칼로리 높은 음식이 필요합니다. 그야말로 생존하기 위해서 먹는 건데,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싶다면 배낭이 무겁고 그러면 몸이 많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뜨거운 물을 부으면 먹을만해지는 전투식량, 레토르트 파우치를 끼니만큼 챙겨갑니다.

코스 중에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도 등장한 '로렌스 플레이 그라운드'도 지나가고, 담아두고 싶은 멋진 풍경이 걸음마다 가득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힘들어지는 탓에 사진 찍을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힘들어서 무사히 완주나 하면 좋겠다 싶었죠. 그래도 남긴 사진 몇 장.

밤에는 사막답게 별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별빛을 한껏 느끼는 일이 힘든 하루 레이스를 마친 뒤 바람막이 텐트 아래 침낭 속에서 보내는 달콤한 행복을 이겨낼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이른 출발 시간 덕분에,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사막의 새벽들.


사막에 사람이


저는 250km를 결국 46.5 시간 동안 달려, 190명 중 100등의 기록으로 무사히  완주했습니다. 울트라 마라토너들이 즐비하고 적어도 마라톤 풀코스 완주 경험 정도는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순위권에 들어 상을 받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행복했습니다. 아마 여기 참가하는 사람들에게는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어린 시절의 엄마도, 감탄해주는 사람도 더 이상 없어서 스스로에게라도 감탄하고 싶어 이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만 불 짜리, 내가 내게 주는 감동!

요르단 레이스의 피날레는 기원전 고대도시 페트라에서 맞았습니다. 꿈에 그리던 절벽을 깎아만든 알카즈네 앞에서. 기원전 나바테아 인들이 바위산 사이에 만든 도시. 왕궁과 수도원, 신전, 극장과 목욕탕이 있던 세계의 경이. 사실 이 세계 불가사의 앞에서 불가사의하게 페트라로부터는 별다른 감흥이 일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250km 마라톤 피날레 입구, 사람이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만나러 가는 좁은 협곡 시크에서 느꼈던 성취감이란, 우주문화유산급!

이 사막 마라톤 주최 측에서는 물과 긴급 의료 지원, 간이 화장실을 포함한 텐트 간이 숙소, 코스 안내 말고 제공하는 것이 별로 없는데, 한 가지 정말 중요한 걸 줍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제일 마음에 드는 것. 바로, 함께 달리던 사람들!   텐트에서 함께 먹고 자고, 하루의 체크포인트에 들어올 때마다 먼저 들어와 열광적으로 환호해주는 이들이.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Racing The Planet

옷에 자국의 국기를 달고 달리기는 하지만 나라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모인 사람들, 내가 언제 행복지 아는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서로에게 감탄해주고 감동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어 더 의미 있던 곳. 사막에서 혼자 무얼 할 수 있었을까, 혼자 살아남아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애초에 사람 없이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고, 서로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일.




여행이 결국 돌아와 잘 살기 위해 떠난다는 말처럼 극한 마라톤, 자기 극복의 드라마도 결국은 사람이 만든 곳, 사람 속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서, 사람이 있어서 아름다운 곳으로.  


마크 와트니는 똑똑해서 감자도 키우고, 패스파인더를 찾아 지구와도 통신하며 생존하지만 제가 화성 같은 곳에서 살아남았던 건 오로지 사람 덕분이었습니다. 스펙터클한 화성 생존기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도전 정신'보다 사람이 있어서 아름다운, '지구에서 잘 사는 일'일지 모릅니다. NASA도 우주 미션을 통해 인류에 기여하는 게 꿈이라 하는 것처럼.


그리하여 우주 여행이 가르쳐주는 건, 지구에서 잘 사는 일, 이 우주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잘 하는 일!  


여행의 기술로 만드는 행복한 일상 #15 여행은 돌아와서 잘 살기 위해서 떠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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