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미래와 죽음에 대한 단상
마음의 미래
스타 과학자 미치오 카쿠. 이론물리학자이면서 첨단 과학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작가다. 웹사이트도 과학계의 슈퍼스타 답다. (mkaku.org) 10년 전에는 '평행 우주'로 최신 우주론을 소개해서 마음속에 우주를 품게 하더니 최근에는『마음의 미래』로 우주보다 더 큰 우주, 마음으로 돌아왔다.
미치오 카쿠 강연 Michio Kaku (2014) "The Future of the Mind"(Eng)
마음의 미래는 인간의 의식, 마음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며 그 미래를 그려보는데, 인간의 '의식'을 우주 저 먼 공간으로 전송하는 우주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실로 기가 막힌 스케일.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 '마음'과 '우주'가 한데 섞여 지금까지 인류의 과학에서 가장 작은데서부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데까지 아우르는 책. 과연, 인간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하나이며, 정보를 매끄럽게 처리하여 나름대로 타당한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뇌스캔을 통해 나타난 영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음'과 완전 딴판이다.
MIT 교수이자 인공지능 창시자의 한 사람인 마빈 민스키는 언젠가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 이렇게 말했다. "한 개인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마음의 집합체에 가깝다. 마음에는 다양한 하부구조가 존재하며, 각 구조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내가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스티븐 핀커와 인터뷰하면서 "이 복잡한 체계 안에서 어떻게 생각이 탄생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의식이란 뇌 안에서 휘몰아치는 폭풍과 비슷하다"고 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가 두뇌의 통제실에 앉아 모든 장면을 스캔하면서 근육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느낌은 환상에 불과하다. 인간의 의식은 뇌 전체에 퍼져 있는 수많은 사건의 소용돌이이며, 이 사건들은 CEO의 관심을 끌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자신의 존재를 가장 큰 소리로 외치면, 두뇌는 거기에 합리적인 해석을 내림과 동시에 '하나의 자아가 모든 결정을 내린다'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카쿠는 뇌과학 전문가들과의 인터뷰와 자기 전공이 아닌 분야의 공부를 통해서 '뇌', '마음', '의식'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이끌어냈다. 그는 뇌가 컴퓨터와 비교당하는(?) 것을 거부하는데, 그건 뇌는 컴퓨터 CPU처럼 논리적인 연산을 통해 결정을 내리는 체제가 아니라 여러 마음을 모아 놓은 집합체로서 해석을 이끌어 내고 환상을 만들어내는 조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두뇌에서 내리는 결정은 하나의 호문쿨루스나 CPU, 또는 펜티엄 칩을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지휘본부 안에 있는 다양한 지부들이 CEO의 관심을 끌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다. 따라서 '매끄럽고 연속적인 사고'란 존재하지 않으며, 각 부서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온갖 불협화음이 양산되는 중이다. 모든 결정을 연속적으로 내리는 '나'라는 존재감은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나'라는 존재감이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니. 어쨌거나 우리 뇌가 컴퓨터와 닮지 않았든 닮았든, '나'라는 존재감이 환상이든 아니든, 미치오 카쿠는 한 인간의 뇌를 완전히 복제한다면 나라는 존재가 불멸의 존재가 되지 않겠냐는 질문도 던진다. 그러면 육체를 통해 의식이 이어질 수 있고, 심지어 우주로 그 의식 데이터를 에너지 형태로 전송할 수 있다면, 우주 어딘가에서도 내 의식이 살 수 있을 테고.
사람의 뇌를 전자현미경으로 찍으면 데이터의 양이 거의 10의 21승 바이트, 제타바이트 정도가 된다고 한다. 전 세계 인터넷에 축적된 데이터를 모두 합한 양과 비슷한 양. 이런 뇌를 거꾸로 설계하는 시도도 있고 우리 세대에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두뇌지도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달 탐사, 화성 탐사보다 두뇌 탐사가 더 오래 걸릴 것 같다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런데 두뇌지도가 완성이 되고, 역설계를 통해 두뇌를 재현할 수 있고, 개인의 기억과 경험, 자아의 의식을 저장하고 보존할 수 있다고 할 때, 정말 새로운 육체를 통해 불멸의 존재로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없다면, 우리 세대에서 우리 마음의 미래는 결국은 죽음 이후로, 알 수 없는 단계로 넘어간다. 죽음에 대해 할 수 있는 수많은 상상, 철학과 과학에 기반한 깊은 사유를 책으로 옮겨 놓은 셜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누군가 "1,000년 후에 당신은 생존해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영혼이 계속해서 환생한다면 가능하다. 1,000년 후에 누군가가 내 영혼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은 셸리 케이건을 절대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전 인생의 기억들 모두를 잃어버린 상태일 것이다. 욕망, 야망, 목표, 두려움을 놓고 볼 때, 그는 셸리 케이건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마찬가지로 지금 내 삶이 미래 그 사람의 인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래도 그는 셸리 케이건이다. 왜? 내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격, 기억, 욕망 등 인격적인 측면에서는 나와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질문 하나가 튀어 나온다. "그렇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런 상태로 1,000년을 살아남는다고 해도 지금의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성격, 기억, 믿음, 추억의 차원에서 지금 나의 인생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영혼이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이라는 친절한 설명은 내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존재가 '1,000년 뒤의 나'라고 해서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셜리 케이건,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의 의식을 저장해 영혼으로 이 생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 때, 케이건 교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내 마음 들여다 보기에 대한 과학적 생각
『마음의 미래』는 뇌 연구의 최전선을 넘나드는데, 카쿠 교수는 자신의 호기심을 풀어가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좌뇌와 우뇌가 분리될 수밖에 없었던 환자들을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하나의 뇌 안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정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좌뇌와 우뇌는 그 자체로 의식을 가진 독립적 시스템으로 인지하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의지를 발휘하며, 감정도 있다'며. 또 좌뇌와 우뇌는 하나의 대상을, 각기 다르게 인식할 수도, 심하면 충돌을 일으키기기도 한다!
내가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분리된 뇌를 연구하는 마이클 가자니가 교수와 인터뷰하면서 "좌-뇌와 관련된 이론을 어떻게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놀랍게도 "좌뇌(또는 우뇌)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우뇌(또는 좌뇌)와 소통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특수 제작된 안경을 피험자에게 씌워주고 특정 질문이 안경읳 한쪽에만 뜨게 하면, 다른 쪽 뇌의 방해를 받지 않은 채 한쪽 뇌와 소통할 수 있다. 이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기술이다. 정작 어려운 부분은 좌우 반구로부터 답을 얻어내는 것이다. 우뇌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언어중추는 좌뇌에 있다) 직접 답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 가자니가는 우뇌의 생각을 알아내기 위해 피험자가 쓴 글이나 낙서를 분석한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한 환자의 좌뇌에 "학교를 졸업하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환자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제도사가 되겠다고 대답했는데, 똑같은 질문을 우뇌에 물었더니 메모지에 "자동차 레이서"라고 적었다. 바로 옆에 있는 좌뇌도 모르는 사이에, 우뇌는 완전히 다른 욕구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우뇌는 자기만의 감정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리타 카터는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로 미루어볼 때, 우리 머릿속에는 고유한 인격과 욕망 그리고 자아인식이 있는 또 하나의 인격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인격체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인격체와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내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것'을 이미 뇌는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떤 선택 앞에 섰을 때, 곰곰이 생각해보며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어쩌면 내 두뇌를 천천히 파헤쳐보며 내게 진짜 솔직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이미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정해져 있는데.
내 진짜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해도 모든 선택이 쉬운 건 아니다. 중요한 선택이 어이없는 우연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가능하다면 신중하게 해야 한다. 생각보다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이 세상이 얼마나 풍요로운 곳인지, 얼마나 많은 선물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감안할 때, 그리고 그런 일들을 제대로 해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감안할 때,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목표를 다시 선택하고, 다양한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 두 번 세 번 노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은 우리에게 새 출발을 위한 기회를 주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여유가 없으므로 우리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최대한 주의해서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셜리 케이건,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부지불식간 세뇌된 무의식 혹은 알게 모르게 습득한 능력이 삶에서 맞이하는 여러 가지 선택을 유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책에서 미치오 카쿠가 던진 흥미로운 예들은 의도대로 해석할 수 있는 통계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한평생을 살면서 수많은 결정을 내린다. 어느 정당을 지지할 것인가? 결혼은 어떤 사람과 할 것인가? 누구를 친구로 삼을 것이며, 미래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우리는 그것을 모두 인식하지 못한다(이글먼은 다음과 같은 통계사례를 들려주었다. 이름이 '데니스 Denise'나 '데니스(Dennis)'인 사람들은 치과의사 Dentist가 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 반면, 이름이 '로라 Laura'나 '로렌스 Lawrence'인 사람들은 변호사 Lawer가 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리고 이름이 '조지 George'나 '조지나 Geeorgina'인 사람은 지질학자 geologist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직업을 결정하는 데 이름의 영향을 받았는가?"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현실 reality'이라고 느끼는 것은 '두뇌가 빠진 틈새를 메우면서 대충 만들어낸 근사치'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는 현실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예를 들어 이글먼은 여성의 15% 이상이 유전자 변이에 의해 '네 번째 광수용체(photoreceptor: 빛의 자극을 수용하는 감각세포)'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이런 여성들은 광수용체가 세 개인 보통사람들이 대개 똑같다고 느끼는 색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유머와 가십의 비밀, 꿈의 실체
미치오 카쿠는 두뇌의 '시뮬레이션 능력'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가 제안한 '시공간 의식이론'에 따르면 1단계는 감각정보를 이용해 공간 속에서 자신의 물리적 위치를 말해주는 의식의 흐름 단계, 2단계는 집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단계, 3단계는 자신이 속한 세상의 모형을 만들고 시간을 미래로 이동해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단계이다. 여기서 3단계는 인간을 인간답계 만드는 고차원적인 단계. 그는 유머의 비밀이 거기 숨어있다고 말한다. 유머의 핵심은 '타이밍'인데, 그건 미래 시뮬레이션 능력 덕분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농담을 들었을 때, 우리는 스스로 미래를 시뮬레이션하여 이야기를 완성한 후에야 웃을 수 있다.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해도,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우리는 모두 물리적 세계와 사회적 세계에 관하여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그 결말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에 펀치라인(punch line: 연설이나 농담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 존재하여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결말에 도달하면 갑자기 웃음이 터진다. 따라서 누군가를 웃기려면 그의 예측능력을 의외의 방식으로 순식간에 와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이것은 진화과정에서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삶의 성공 여부를 부분적으로나마 좌우했기 때문이다. 정글에서 살다 보면 의외의 상황에 쉽게 노출될 수 있으므로,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이 뛰어날수록 생존확률 또한 높아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유머감각, 즉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은 3단계 의식과 지성을 가늠하는 잣대라 할 수 있다).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그것, 뒷담화. 폭풍 뒷담화 '가십'을 즐기게 되는 것도 시뮬레이션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사람들 간의 사회적 역학관계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므로, 잡담(가십, gossip)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변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현재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지형도를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2단계 의식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일단 가십을 한 토막이라도 들으면, 즉각적으로 앞날을 시뮬레이션하여 이 가십이 공동체에서 자신의 위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의식은 3단계로 넘어간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가십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정보를 수집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며, 최신 가십의 수집 여부가 삶의 질을 좌우했다.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미래를 시뮬레이션한다는 것은 생존과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지능이 무엇인지 아직 다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지능을 평가하는 IQ 테스트는 시험을 잘 보는 능력을 평가하는 테스트일 뿐이라고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이론을 제안한 미치오 카쿠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이 '시공간 의식이론'이 인간의 지능을 설명하는 데도 힌트를 줄 수 있다고 한다.
카쿠는 인터뷰를 통해 '꿈 해몽'과 꿈의 의미에 대한 어린 시절 궁금증마저 해소시켜 준다. 이렇게 전문가가 얘기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명쾌하게.
홉슨 박사는 이런 방법으로 꿈과 관련한 방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나는 그와 인터뷰하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그는 꿈에서 의미를 찾는 행위를 포춘쿠키에 비유하면서 "이 연구를 꽤 오랫동안해 왔지만 꿈에서 우주의 숨은 메시지가 발견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꿈은 이렇다. "뇌간에서 올라온 PFO파(pontine-geniculate-occipital waves: 수면상태에서 뇌관의 콜린성 신경이 방출하는 비정상적 전기에너지 펄스)가 대뇌피질에 도달하면 되는 이 비정상적인 신호를 어떻게든 이해 가능한 형태로 가공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꿈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운명의 주인
미치오 카쿠는 물리학자이면서 일반인들에게도 과학을 쉽게 설명해주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가 나에게도 선생님이 되고 멘토가 될 수 있는 건 책 덕분인데, 책에서는 어떤 상상도 가능하다. 자신의 연구가 아닌 다양한 인터뷰와, 그리고 연구에 대한 연구가 이 책을 낳았지만 모든 부분이 완전한 진실은 아닐 수도 있다. 인터뷰 대상에 한계가 있었을 수도, 그의 이해가 부족한 부분도 있었을 터. 그럼에도 제대로 정돈된 과학이야기는 언제나 아름답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감탄해마지 않을 수 없는 건 그의 지적 호기심이다.
2천여 년 전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지혜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이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머나먼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미치오 카쿠,『마음의 미래』 맺음말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며 끝맺은 『마음의 미래』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다름 아닌 맺음말 뒤의 '부록'이었다. 긴 인터뷰와 인용 끝에 이 내용을 부록에 실었을 만큼 조심스러워 보여도 그의 통찰에 나는 압도적인 희열을 느꼈다. 과학자로서 논문을 통해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은 결과, 혹은 검증할 수 없는 생각을 속이 시원하게 '이게 이래서 이렇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어서 부록으로 담았을지도 모르겠다. 500페이지가 넘는 긴 서사 마지막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자신만의 결론을 소박하게 소개하는 중요한 부분.
역설계를 통하여 트랜지스터 두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이는 곧 두뇌가 결정론적 물체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두뇌에 질문을 던지면 똑같은 답을 반복할 것이다. 컴퓨터도 동일한 질문에는 항상 같은 답을 출력하므로, 결정론적 기계라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심각한 모순이 발생한다. 우주는 양자역학과 혼돈이론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므로,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데 트랜지스터로 만든 역설계 두뇌는 정의에 의해 예측 가능하고, 이것 은 이론적으로 사람의 뇌와 완전히 동일하므로 사람의 뇌 또한 예측 가능하고,자유의지는 존재할 수 없다. 일부 과학자들은 "양자이론에 의해 주어진 한계 때문에, 역설계 두뇌나 생각하는 기계는 결코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의 두뇌는 트랜지스터의 집합체가 아닌 양자적 기계이기 때문에, 유럽연합에서 추진 중인 프로젝트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옥스퍼드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자 상대성이론의 권위자로 알려진 로저 펜로즈 Roger Penrose 박사를 들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의식이 양자적 과정의 결과라고 굳게 믿는 사람으로,쿠르트 괴델 Kurt Godel 의 ‘불완전성 정리 incompleteness theorems ’를 인용하여 자신의 논리를 펼쳐나갔다. 괴델은 1931 년에 대수학이 불완전하다는 충격적 사실을 증명했다. 즉, 모든 대수학체계에는 공리만으로 증명될 수 없는 명제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런데 펜로즈의 주장에 의하면 수학뿐만 아니라 물리학도 불완전하다. 그는 기계와 뇌의 차이점을 면밀히 분석한 끝에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뇌는 양자역학적 기계장치이고,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하면 어떤 기계도 풀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 수수께끼를 직관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역설계 두뇌가 제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결국은 트랜지스터와 전선의 집합체이므로 결정론을 따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기계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결정론적 운동 방정식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양자적 체계는 불확정성 원리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본질적으로 에측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여러 가지 가능한 미래 중 어느 하나가 나타날 확률을 계산하는 것뿐이다.
역설계 두뇌가 인간의 행동을 재현할 수 없다면, 과학자들은 예측할 수 없는 힘(뇌 안에서 일어나는 양자적 효과 등)이 작용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펜로즈 박사는 뇌에서 양자적 과정이 일어나는 곳으로 뉴런 내부의 ‘미세소관(微細小管, microtubules)’을 지목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팬로즈의 접근법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과학은 다수가 반대한다고 해서 부결되지 않는다. 과학적 사실은 검증 가능하고 재현 가능하면서 반증도 가능한 이론을 통해 결정된다.
나는 디지털 및 아날로그 계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뉴런의 거동을 트랜지스터로 재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뉴런은 정보틀 흘리거나 간간이 오작동할 수 있고 주변 환경에 매우 민감하며, 나이를 먹을수록 기능이 떨어지는 등 기계장치로 재현하기에는 너무 번잡하다. 내가 보기에 트랜지스터로 구현한 뇌는 대략적인 모형에 불과할 것 같다. 뉴런의 축삭돌기가 가늘어지면 정보가 밖으로 새기 때문에, 화학반응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정보 누수와 오작동은 양자적 효과 때문에 나타날 수도 있다. 뉴런을 가늘고 빽빽하게 만들면 정보전달 속도는 빨라지겠지만, 그럴수록 양자적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이는 곧 정상적인 뉴런도 정보가 새거나 불안정할 수 있다는 뜻이며, 이런 문제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에 모두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역설계로 만든 로봇은 인간의 뇌를 완벽하게 흉내 낼 수 없다. 펜로즈의 주장과 달리, 나는 트랜지스터를 이용하여 결정론적인 로봇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로봇은 인간과 비슷한 의식이 있지만 자유의지는 없다. 또한 이 로봇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것이다. 그러나 양자적 효과 때문에 로봇과 인간은 결코 같아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유의지는 정말로 존재하는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유의지는 완고한 개인주의자들이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의미가 다르다. 우리는 모든 선택을 자신의 뜻대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뇌는 이미 결정된 수천 가지 요인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는 영화 속 배우라는 뜻은 아니다. 영화의 결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양자적 효과와 혼돈의 미묘한 조합이 결정론적 요소를 붕괴시킨다. 결국 우리는 언제까지나 운명의 주인으로 남을 것이다.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부록 中 「양자 두뇌」
기계는 인간을 절대로 대신할 수 없다. 그건 우리 뇌의 미세소관이 만들어내는 양자적 효과 때문이라고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힌트를 줄 수도 있지만, 몸이 이미 알고 있다. 로저 펜로즈나 미치오 카쿠 같은 과학자가 아니라서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더라도, 복잡하게 아우성치는 마음의 집합체인 뇌는 이미 해석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와 내 자유의지는 다른 어디도 아닌 지금 내 몸에서만 만들 수 있는 거라고.
삶은 선택의 문제다. 내가 자유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도 두뇌의 양자적 선택이 상호 작용한 결과일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건 컴퓨터나 사람 기계가 아닌 '나'라는 존재일 것이다. '운명의 주인'인 나.
미치오 카쿠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이미 결정된 조건들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지만, 우리는 모두 '정해지지 않은 결말을 가진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거다. 결국은 철학적인 이야기로 돌아온 마음의 미래. 그래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마음의 미래'에 대해 오히려 조금 더 현실적인 결론을 내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죽음을 바라보면서 이를 거대한 미스터리, 너무 두려운 나머지 감히 마주할 수 없는 압도적이고 위협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결코 합리적인 태도라고 볼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나는 '부적절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너무 빨리 죽는다는 사실에 슬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기회를 부여받은 게 얼마나 놀라운 행운인지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인생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삶의 기회를 부여받은 게 놀라운 행운이라고 해서 살아있는 게 늘 좋은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슬프게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찾아왔을 때 삶은 무슨 일이 벌어지건 어떤 상황에 처하건 끝까지 이를 악물고 지켜야 할 의무는 아니다. 때로는 포기가 정답일 수도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이제 이 책을 덮고 나거든 부디 삶과 죽음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나아가 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나 죽음과 직접 대면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다시 사는 것이다.
셜리 케이건, 『죽음이란 무엇인가』 맺음말
이미 우리는 진짜 내 마음도 알고 있고, 마음의 미래도 잘 알고 있다. 진짜 내 마음과 마음의 미래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죽는다. 그러니, 그걸 인식하고서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