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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스키 Sep 30. 2015

누군가를 위해 여행한다는 것

의미 부여에 대한 단상


사막 마라톤


일주일 동안 250km를 자급 자족하며 달리는 사막! 보통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극한 마라톤을 우연히 접하고, 순간 가슴이 떨렸습니다. 어마어마한 참가비가 숨이 막혔지만, 이미  꽂혀버리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대회. 참가하는데 선발전이나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태극기를 달고 달리는 대표선수가 됩니다. 그래서 이 마라톤은 당연히, 누구의 명예를 드높이고 자랑이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행복하려고 하는 여행입니다.

Racing The Planet '4 Deserts' official website


의미 있는 달리기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인정받는 것은 중요한 행복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봉사나 기부를 즐기는 사람들은 '나눔의 기쁨'을 알고  계속하게 되죠. 저도 열아홉 살에 처음 봉사동호회에 나간 뒤로, 봉사에 꽂혀서 소소한 봉사와 기부를 했습니다. 드러낼 만큼도 아니고, 너무도 미약했지만 승냥이처럼 '봉사자'나 '기부자'가 되는 기회를 찾곤 했습니다.

기부천사로 이미 기부계의 큰 손 션-정혜영 부부처럼,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기부천사들이나 봉사정신으로 똘똘 뭉친 봉사자는 아니지만 운동하고 기부하는 션을 보고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마라톤에  참가하려고 구슬땀을 흘리면서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4 Deserts' 사이트에서도 친절하게 기부 캠페인을 벌일 수 있을 만한 사이트를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Charity for water', 'Habitat', 'Red Cross' , 'Operation Smile International' 등등.. 그런데, 우리나라 카드로는 결제되지 않거나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플랫폼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기부 플랫폼을 찾아 헤매며,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를 지적할 만한 경험이나 깜냥은 없을지라도 절실하게 느꼈던 건 우리나라의 기부문화가 경제, 문화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참가했던 사막 마라톤에서도 10% 정도가 Charity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고, 그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이들이 기부하기 쉽도록 만들어주는 믿을 만한 재단, 그리고 기부 플랫폼이 부러웠습니다. '놀이로서의 기부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할까요.


'나만 행복한 게 아니라 좀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없을까'로 시작한 고민은 결국 제가 몸 담은 치과계의 '스마일재단'과 협의해서 네이버 해피빈에 기부 저금통을 만드는 걸로 서툴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목표로 했던 1km 당 1만 원씩 250만 원에는 못 미쳤지만, 개인적으로는 따뜻한 마음과 멋진 희망을 발견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행복한 미소를 위해 달립니다!

1만 km를 달려 1km당 만원씩 모아 1억을 기부하기도 했던 너무 멋진 남자 션의 사례를 보고 자극을 받았는데, 그처럼 유명인사가 아닌 일반인이 기부 캠페인을 벌이기에 적당한 플랫폼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모든 준비 과정이 짜릿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악플을 만나다


작은 프로젝트였는데, 뜻하지 않게 신문사,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뜻하지 않게 제게 ‘봉사하는’, ‘희생하는’등의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대단한 일을 이룬 게 아니어서 쑥스러웠지만 거절조차 부끄러울 정도였다는 게 인터뷰를 했던 핑계라고 할까요. 굳이 가릴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도 나와서 신기해하고 있었는데, 얼마 없는 댓글 중에 악플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직설이 달렸습니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지만, 이건 속상했습니다.

‘기부하고 싶으면 사막 마라톤 참가비, 항공료로 지원하면 될 거 아니냐’. 사실 맞는 말이어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고맙게도 반박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도 있었지만 감춰진 속살을 드러낸 것 같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굳이 비비 꼬여야만 했을까요?

정말 그 사업에 간절히 지원하길 바랐다면 어떻게든 목표 금액을 마련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저는 행복에 행복을 얹는 즐거운 기부문화의 한 장면이 되고 싶었을 뿐, 숭고한 의식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슈바이처도  아닌 데다가, 지금껏 봉사라는 이름으로 했던 건 단지 ‘내가 행복하려고’하는 이기적인 이유에서 벌인 일들이었기 때문에, '봉사',  '희생' 같은 수식어는 민망함을 주는 걸 넘어서 잘못된 표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아직 누군가에게 귀감은커녕 갈 길이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짧은 글에 할퀴고 나니 악플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무시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자신의 이야기가 되면 다른 거라는 것도요. 인터넷에서 뿐만 아니라 너무 쉽게 말 하고 마는 사람들. 가면을 쓰지 않으면 사정없이 할퀴이고 멍들게 되는, 무책임한 돌덩이 말들.


따뜻한 마음 한 스푼 정도만


일주일간의 사막 마라톤 마지막 날 골인지점까지 5km 정도는 기록에 들어가지 않고, 피날레의 여운을 즐기게 되는데, 저는 이때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었습니다. 100g 이 더 들어가는 것도 아쉬운 사막 마라톤 배낭에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제일 좋아하는 책, 아주 작은 오래된 문고판을 챙겨 일주일 동안 함께 사막을 달렸습니다. 이 책의 한 문장이 새롭게 읽혔습니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법정 스님


부디 모난 흔적이, 누구에게도 다시 상처 주지 않도록 부드러운 물결 같은 말들이 흘러나오기를 바라봅니다. 설령  ‘행복이 보장된, 즐거운 놀이로서의 기부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해도, 애써 비비 꼬인 버러지 같은 악플러들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늘 있을 테니까요.

악플에 찔린 저는, 솔직히 '누군가를 위해 달린다는 것'이 자기만족이었을 뿐, 진짜 도움을 받는 사람은 고마워하지도 않는데, 정확히 말하면 대상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나만 이런 고통과 어려움을 의미 있게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여행 자체가 내가 내게 주는 선물인데, 남을 위해 여행한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기만적인 일인지에 대해서도요.

하지만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제가 있는 세상은 아주 이상하지는 않다는 겁니다. 허세와 자랑, 개인적인 기쁨과 설렘이 들어있다고 해도 거기 따뜻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어간다면, 딱 한 스푼 정도라도, 세상에 행복을 조금 더 얹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여행의 기술로 만드는 행복한 일상 #05 내 행복에 가치 만들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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