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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스키 Aug 05. 2018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산다

내 경험 이력서는 어떻게 채워지고 있는가

저승이라는 이야기


영화 「신과 함께」 포스터 


흥행몰이에 성공한 영화 「신과 함께」는 웹툰이 원작인 만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상상력이 가득하다. 죽음 이후에 살아온 삶을 심판받고, 환생하는 이야기. 삶 이후의 삶은 상상이 끝없이 펼쳐져도 이상하지 않은 아주 문학적인 주제다. 이만큼 인문학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는 무대도 없다. 대단히 허무맹랑해도 흥미로운 이유는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고, 경험할 수도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염라대왕 같은 저승의 판관들은 저승에서 망자의 삶을 심판한다. 그들의 삶은 이야기가 되어 재판에 올려진다. 태어나서 죽음까지의 이야기. 그것이 과연 어떤 말로, 무슨 언어로 온전히 표현될 수 있을까? 내가 쓴 나의 자서전을 저승의 심판대에 올리는 것은 아닐 테고, 아무리 저승의 왕일지라도 누가 감히 내 인생의 이야기를 몇 문장으로 정리해서 심판한단 말인가. 


서글픈 것 하나는, 죽음 이후에도 법정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왕과 같은 권력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머리를 조아리고 위엄 속에서 나에 대한 평가를 기다리는 것은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인간적이지 않은 제도를 답습한 것이다. 염라대왕을 비롯한 10개 지옥의 왕들, 그 부하 판관들이 호통을 들으며 일하는 것 또한 무위도식을 꿈꾸는 인간의 본성에 반한다. 최저시급은 받고 있는 걸까.



어떤 이야깃거리를 남길 것인가


즐기자고 보는 영화 스토리에 죽자고 달려들어 물어뜯는 게 생산적인 일이 되기도 한다. 껍데기를 헐뜯고 나면, 미음을 움직인 본질을 만날 수 있다. 죽음 이후의 갑갑한 삶에서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 하나는, 우리가 죽음 이후에 가지고 가는 것은 결국 '살아온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그게 본질이다. 육신은 사라지지지만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는 남는다. 살아남은 사람도, 죽음 이후에 만난 판관들도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기억한다


행복을 위한 심리학 기술을 담은 최인철 교수의 『굿 라이프』는 소유보다 경험이 행복감을 증가시킨다는, 경험해봤지만 딱히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던 심리에 대해 풀어놓는다. 행복한 사람들은 장식거리보다는 이야깃거리가 우리를 훨씬 더 행복하게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책에 따르면 경험은 행복한 무소유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데, 그 이유 세 가지는 이렇다.  1. 소유물은 비교를 불러일으키지만 경험은 비교를 유발하지 않는다. 소유와 달리 경험은 '지금 여기'의 심리 상태를 강하게 유발하기 때문에 경험하는 그 순간에 몰입하게 만든다. 2. 경험은 우리의 정체성을 구축한다. 3. 경험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경험은 우리의 정체성을 구축한다. 우리가 보유한 소유물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지 못한다. 소유물들이 우리의 취미나 선호, 그리고 성격을 알려주는 단서가 되기는 하지만, 우리 내면의 심층까지는 알려주지 못한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험 목록을 보아야 한다. 경험은 우리의 의식과 철학과 가치를 구성한다. 진정한 행복이란 진정한 자기 (authentic self)를 만나는 경험이며, 진정한 자기와의 조우는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무소유의 삶은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삶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 리스트를 늘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이력서(experiental CV)를 빼곡하게 채워나가는 사람이다. 

-최인철, 『굿 라이프』


어떻게 살 것인가? 는 어떤 이야깃거리를 남길 것인가? 는 질문이다. 

내 경험 이력서, Experiental Curriculum Vitae는 오늘도 어떻게 채워지고 있는가. 

행복한 경험, 의미가 있는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 저승의 삶에서도 귀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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