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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토리아 Jul 06. 2024

#15 1차 항암 (3)

하루만, 한 순간만

 미뤄졌던 항암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엔 ‘로이나제’라는 항암제를 격일로 7번을 맞게 된다. 항암제가 다시 내 몸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저건 영양제다’ 생각하며 눈을 감고 다 들어가길 기다렸다. 그렇게 1시간을 맞고 나니 은은하게 메슥거림이 올라왔다.

 이전 항암제들은 한 번에 빡! 심한 오심과 구토를 주었다면, 얘는 계속 은은하고 짜증 나게 울렁거리게 했다. 그러다보니 언제 항구토제를 달라고 말해야 할지 타이밍조차 잡기가 힘들었고, 하루종일 은은한 멀미에 시달리며, 화장실 가려고 몸을 일으켜 세우면 구토를 하고, 약을 먹으려고 앉아도 구토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장염으로 더 약해진 체력 때문인지 아니면 격일로 항암제가 들어가는 게 힘든 건지, 티브이를 봐도 울렁거리고 핸드폰도 울렁거려 그저 침대에 누워있어야지만 그나마 구토를 안 할 수 있었다. ‘항암... 정말 쉽지 않구나. 어떻게 이걸 6차까지 하지?’ 란 생각이 드니 다시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잠에 들어 이 고통을 피하는 것뿐이니까.


 아침에 일어나니 침대에 빠진 머리카락이 가득했다. 탈모가 시작된 것이다. 엄마보고 머리 밀러 가자고 하니 뭘 벌써 미냐며 조금 더 있으라 하셨다. 나는 빠진 머리카락 보는 게 더 스트레스라며 오늘 항암제 쉬는 날이라 오심이 심하지 않으니 지금 가자고 했다.

 암병동 4층 가발 파는 곳에서 머리 쉐이빙을 해주기에 그곳으로 향했고, 엄마는 내가 너무 슬퍼할까 봐 자신도 같이 밀겠다고 했지만 나는 가발 비싸다고 됐다 하고선 쉐이빙 공간에 들어갔다.

 머리를 어느 정도 자르고 마지막에 바리깡으로 미는 줄 알았는데, 바로 바리깡을 갖다 대셔서 놀라고 눈물이 조금은 났지만,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그동안 겪은 소장출혈, 오심, 구토, 가스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시 안 아플 수 있다면 이따위 머리카락쯤이야.

 순식간에 쉐이빙이 끝나고 머리까지 감은 후 병실로 다시 향했다. 거울 속의 나는 처음 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남자 같기도 했고, 비구니 같기도 했다. ‘당분간 오해를 피하기 위해 회색옷은 입지 말아야겠네’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예전에 친구 중 한 명이 “옷에 레이스나 꽃이 없으면 그건 얘 옷이 아니야”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나는 예쁘고 공주 같은 원피스를 좋아했고, 가슴까지 오는 굵은 웨이브 머리를 십 년 넘게 고수해오고 있었다. 그런 내가 머리가 없어졌는데도 슬퍼하지 않고 하는 생각이 ‘회색옷 입지 말아야겠다 ‘라니. 몇 달 만에 변한 내가 신기하기도 했고, 조금은 서글프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다.

 창 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걸 지켜봤다. 원래도 비 오는 날 창문 보는 걸 좋아해서 글자와 함께 베란다에 둔 캠핑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곤 했었다.

 시원한 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행복했다. 3월 말부터 병원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행복했다.


 늘 내 마음은 삶보다 빨리 갔다. 고등학교 땐 고1부터 내 마음은 수능날에 가 있었다. 수능이 끝난 후의 내가 ‘아! 공부 좀 더 할걸’이라는 후회를 하지 않도록 진짜 열심히 공부했다. EBS에서 나온 ‘10주 완성’이란 문제집을 하루 만에 다 풀어서 친구들이 ‘하루완성’이라고 놀릴 정도로 독하게 공부했다. 물론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어서 그렇게까지 한 것도 있지만 나는 미래의 내가 오늘의 나를 후회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느끼기에 공연 쪽은 오늘 열심히 한 보상을 2-3년 후에 받는 것 같았다. 처음 초고가 나오고, 리딩을 하고, 수정을 하고, 연습을 하고, 공연에 오르기까지 나는 평균적으로 2-3년이 걸렸다. 그 시간들을 거쳐 첫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때 관객분들의 박수소리가 들릴 때 그동안 공연을 만들며 받은 모든 고통은 싹 다 지워지고 뭐라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 기쁨을 너무 잘 알았기에 2-3년 후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혹사시키면서 대본을 써왔다.

 그래서 삶에 있어서 많은 순간 몸은 현재에 있지만 마음 또한 현재에 있었던 날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지금,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느낄 때 내 마음 또한 이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남은 항암을 두려워하지도,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지도 않고 오롯이 지금 이 순간 내 몸과 마음이 함께였다. 그리고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행복’이었다.

 그래, 이렇게만 살아보자. 오늘 하루만, 그 하루 중에서도 한 순간만 살아보자.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면 어느새 나는 6차 항암의 마지막에 가있겠지. 이것만이 내가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항암을 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았다.

 오늘 하루만 살자. 그 하루 중에서도 한 순간만 살자.

 오늘 하루만, 한 순간만 살아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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