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오늘 나의 길에서
장염으로 무너진 마음은 좀처럼 단단해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호중구 수치까지 600, 그리고 그다음 날은 60까지 떨어져 축 쳐졌다. 내 병실문에는 ‘호중구 500 이하, 감염관리 주의 요망‘ 문구가 붙었다. 엄마와 나는 병실 내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고, 나는 또 다른 감염이 제발 오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밤새 허리와 골반이 아프고 두통이 왔다. 허리디스크처럼 찌릿하기도 했고, 골반은 쑤셨고, 장염으로 인한 고열은 계속 지속됐다. 이런 통증에 밤중에 눈을 떠보니 엄마가 소파에 앉아 나를 보며 울고 계셨다.
“왜 울어?”
“열이 또 왜 나지?”
아마 엄마에겐 고열이 트라우마가 된 것 같았다. 이전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있는 2주 동안 39.9도를 찍어도 그것이 혈액암 증상인 줄도 모르고 해열제만 먹으며 버텼던 그 시간들 때문일까? 내가 항암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보는 엄마의 눈물이었다.
“장염때문이래잖아. 울지 마. “
그렇게 말을 했지만 나도 훌쩍이며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호중구 수치가 1000 이상으로 올랐다고 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밤새 아프지 않았냐며 호중구가 오를 때 몸살처럼 두통이 있고 허리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어젯밤 아픈 게 낫기 위해 아픈 거였다니! 내 몸이 기특했다.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염증 수치도 많이 낮아져 다음 주부터 항암을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이제 무서워서 얼음이나 아이스크림은 먹을 수 없기에 울렁거릴 때 레몬사탕을 먹어도 되냐 물으니 입 안에 상처가 나서 또 감염이 올 수 있다고 물만 마시라고 하셨다.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았다. 울렁거림을 도와줄 수 있는 게 물 밖에 없다니... 막상 중단된 항암을 다시 한다니 두려웠다. 그 노란 봉지를 떠올리니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왜 내가 받는 항암은 3주나 해야 하는 항암일까... 시작도 전에 지친 기분이었다.
엄마가 컨디션 괜찮으면 미사 드리러 가고 아니면 병실에서 쉬자고 하셨고, 나는 혹시나 모를 감염 때문에 문 밖에서 미사 드릴 테니 엄마는 안에서 미사 드리라고 하고선 암병동 7층으로 향했다.
강론 중에 신부님께서 최민순 신부님의 시를 읽어주셨다.
주님,
오늘 나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내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넓은 길, 편편한 길,
그런 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도록
더욱 깊은 믿음을 주소서.
아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만약 이 시를 암 진단을 받은 초기에 만났다면 ‘그냥 험한 산 옮겨주세요. 돌 좀 치워주세요. 주님께선 뭐든지 하실 수 있는데 왜 굳이 저를 고통 속에 내버려 두십니까?‘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삶에는 피할 수 없는 폭풍우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인 나는 그저 폭풍우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음이 평안해졌다. 몸은 여전히 아팠지만 마음속의
폭풍우가 잔잔해진 기분이었다.
첫 소장출혈부터 지금까지 사망할 수 있다는 얘기 3번이나 듣고도 살아남았던 나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기특하다. 그러니 남은 항암도 한번 해보자.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