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혈모세포 채집
히크만 시술 후에 다음 미션인 이식 전 검사와 조혈모세포 채집을 하는 날이 왔다. 오전에는 채집을 하고, 오후에는 이식 전 검사를 하는 스케줄이었다. 이식 전 검사는 골밀도 검사, 폐기능 검사, 부비동 엑스레이, 치과 진료 등 다양해서 병원 곳곳을 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조혈모세포 채집을 위해 입원한 날부터 촉진제인 ‘그라신’을 하루에 아침 7시, 저녁 7시 두 번 맞았다. 채집 당일 날은 아침 6시에 맞았는데 주사를 맞자마자 눈이 번쩍 떠져서 자동적으로 미라클 모닝이 됐다.
‘그라신’은 피하주사이기 때문에 살이 없으면 더 아프다고 한다. 소장출혈이 나면서 이미 항암 시작 전에 12킬로가 빠졌다. 살이 어느 정도 붙어야 항암을 잘 이길 수 있다 해서 오심이 없을 땐 정말 열심히 먹어서 항암 차수 때마다 1킬로가 늘어서 6차가 끝나니 6킬로가 늘었다. 살면서 살을 빼려고 노력은 많이 했는데 살찌려고 노력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 노력 끝에 처음보다 팔에 살이 붙었지만 여전히 ‘그라신’ 주사는 아팠다.
아침 식사를 하고 ‘성분채집실’로 향했다. 침대에 누우니 간호사 선생님께서 기계에 연결된 선들을 히크만에 연결해 주셨다. 히크만은 관이 두 개인데 한쪽으로 피가 나가서 기계에서 조혈모세포만 거른 다음 다른 한쪽으로 피가 다시 들어온다. 이 모든 과정이 정말 빠르게 이뤄진다. 한 대당 1억이라는 이 기계가 생기기 전에는 조혈모세포를 골수에서 뽑았다니... 이 기계가 발명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피가 몸 밖으로 나가면 피가 굳어지는 성질 때문에 항응고제가 쓰이는데 이 과정에서 손, 발, 입술이 저리고 추위를 느낄 수 있기에 칼슘도 함께 맞았다.
기계는 통돌이 세탁기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그렇게 채집이 시작되었다. 아프거나 어지러운 건 전혀 없었고 시간이 지나니 입술이 조금 저렸다. 입술이 저린 느낌은 처음이라 신기했지만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금세 잠이 들었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시는 분들도 이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나는 나를 위해서 하는 거지만 기증자분들께선 누군지도 모르는 (기증받는 환우의 성별, 나이, 병명만 알 수 있다고 한다) 환우분들을 위해 이 과정을 거친다고 하니 정말 감사했고, 존경스러웠다.
나는 내 조혈모세포로 이식을 하는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을 하지만, 많은 혈액암 환자들이 ’ 동종조혈모세포‘ 이식을 한다. 형제자매가 없거나 형제자매와 일치하지 않으면 타인 조혈모세포 기증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기다림 끝에 기증자를 만나면 환자는 ‘전처치항암’을 하는데, 여태 받은 항암이 10 정도의 강도라면 이식을 앞두고 하는 항암은 100 정도의 강도로 몸에 쏟아부어 면역력을 0으로 만든다. 그렇기에 기증자가 갑자기 이식을 취소하면 면역력이 없는 환자의 생명은 위태롭게 된다. 실제로 이런 케이스가 있어 어린 환우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었다. 그렇기에 이식 코디네이터 선생님들이 기증자 분에게 몇 번이고 기증 의사를 반복해서 여쭤보신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분들이 병원에 와서 기증자를 끌고 나가는 경우도 있기에 가족의 동의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나는 채집 이후에도 치료를 받아야 하기에 히크만을 시술했지만, 기증자분들은 헌혈하듯이 팔에 주삿바늘을 꽂고 채집을 한다고 한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두 번째 생일’이라고 말할 만큼 이식을 받는다는 건 혈액암 환자들에게 기적이자 소중한 선물이다. 혈액암 톡방에도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 조혈모세포 기증은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그 선택으로 누군가가 두 번째 생일을 맞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첫눈도 보고, 벚꽃도 보고, 낙엽도 본다.
아프기 전에 나는 세상에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지 몰랐다. 항암을 하면서 이틀에 한번 엑스레이를 찍으러 2층으로 내려가는데 그때마다 외래 온 분들을 마주친다. 동안인 엄마 덕에 나를 내 나이보다 더 어리게 보는 분들이 많은데 머리 없는 젊은 환자를 빤히 바라보는 분들이 정말 많다. 나도 건강할 때 병원에서 젊은 민머리의 암환자를 보게 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젊은 분이 어쩌다가...’ 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나리라곤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전혀 나와는 상관없을 줄 알았던 암환자의 세계에 들어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호중구’ ‘히크만’ ‘케모포트’ 란 단어들을 배우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조혈모세포 채집을 하고 있다. ‘골수이식’이라고 불렸던 조혈모세포 이식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걸 지금 내가 하고 있다. 이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게 지금도 기가 막히고 믿기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내 삶이니 울면서도 끌어안을 수밖에.
3시간 정도 지나니 채집이 끝이 났다. 3이 모이면 추가 채집이 없다고 했는데, 한 번에 채집이 끝나는 경우는 한 달에 한 명 정도라고 하셨다. 나는 쾌활하게 “제가 그 한 명이 될 수 있잖아요! 내일 보지 말아요 우리!”라고 외치고 병실로 돌아갔다. 오후에 결과가 나왔는데 2.08이 모아져 다음 날 추가 채집 일정이 잡혔다.
다음 날 추가 채집을 하고 쾌활하게 ”이제 우리 진짜 보지 말아요! “ 외쳤는데 또 그다음 날도 채집을 갔다. 나도 웃고 간호사 선생님도 웃으며 그렇게 채집을 마치고 이제 ‘전처치항암’을 앞두고 있다.
사실 항암하면서 각종 부작용들로 힘들었어서 지금 항암의 10배란 말을 듣자마자 너무 무서워서 지금까지 애써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도 전처치항암만 생각하면 입맛이 뚝 떨어지고 오심이 올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미래는 생각 안 하고 ‘오늘 뭐 먹지?’만 생각하고 안 보던 웹툰을 몰아보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한 시간 후면 전처치항암이 시작된다.
불안과 두려움은 실체가 없기에 더 크게 느껴진다. 그때마다 그 생각들을 글로 써 내려가면 실체가 보이기에 생각만 했을 때보다 마음이 안정이 된다. 그래서 전처치 항암 시작 한 시간 전에 이렇게 글을 써본다.
너무 무섭지만 여태 잘해왔듯이 나는 잘 해낼 것이다. 이쯤 됐으면 눈물이 마를 만도 한데 아직까지도 울지만 그렇게 울면서도 또 해낼 것이다. 괴롭고 무서울 때마다 외쳐보려고 한다.
암은 죽고 나는 산다.
암은 죽고 나는 산다.
암은 죽고 나는 산다.
하느님 함께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