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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Apr 16. 2020

나는 질문하기로 선택했다.  

아들아, 우리 질문형 인간이 되자!   

늦깎이로 결혼해 아이를 품에 안았습니다.      

조그만 갓난아이는 가벼웠는데 한 생명을 키운다는 책임감은 무겁더군요. 아이의 뼈와 살이 자라도록 영양분을 공급하는 일이야 그렇다고 해도 아이의 마음밭과 생각의 틀이 성장하도록 거름을 뿌리고 충분한 목재를 제공할 일은, 걱정을 지나 부담스러웠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한창 예쁜 짓 하며 까르르 웃는 큰애를 보시며, 어린아이는 하얀 종이와 같으니 잘 키워야 한다고 당부하시던 시어머니의 말씀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서웠거든요.      

저는 새하얀 스케치북을 마주하면 겁이 나는 사람이랍니다. 그 깨끗한 여백의 운명이 오직 내 선택에 따라 결정되는 겁니다. 어떤 색의 크레파스로 어떤 선을 어디로 힘주어 그리느냐에 따라 책상 앞에 자랑스럽게 붙여질 수도 있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낙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해도 순간 떨리는데, 내 아이의 인생에 엄마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엄마 노릇은 쉽게 하기로 마음먹을 일이 아니었던 거지요.      

하지만 난 이미 엄마였고, 두려움 세 스푼과 떨림 한 스푼 반, 거기에 기대를 크게 한 스푼 섞어 감당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엄청난 특권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니까요. 그러자 생각의 끝이 결국 한 가지 의문에 닿더군요. 

“어떻게 키워야 할까?”

답을 찾기 위해 육아서를 읽고 강연을 들었습니다. 주변 어른들의 말씀에도 귀 기울였습니다. 각각의 전문가가 제시하는 답은 화자가 가장 중시하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랐습니다. 어린아이의 뛰어난 습득력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은 유아교육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창의성에 집중하는 사람은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해답으로 제시합니다. 아이들의 감성과 자존감을 강조하는 전문가는 섬세한 감정을 다루는 문제에 대해 집중합니다.    

  

이솝우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숭이 한 마리가 두 손 가득 콩을 들고 조심조심 가는데 가다 한 알이 또르르 떨어져 줍다가 보니 또 한 알이 떨어집니다. 몇 번 반복하다 열 받은 원숭이가 고이고이 모아들었던 콩을 확 쏟아버리고 말죠.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으면서 전, 이 원숭이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마치 그 원숭이 같았거든요. 다양한 체험도 놓칠 수 없고, 창의성이라는 콩알은 더군다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 빼먹을 수 없고, 읽혀야 할 책도 많고, 알려주어야 할 사실도 넘치는데 내 두 손은 한없이 작았습니다. 성질 같아선 나도 확! 하고 던져 버리고 싶지만, 자식 일이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원숭이. 이 시대 우리 엄마들의 모습은 아닐까요. 그래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본질은 뭘까? 한 인격체인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기 위해 놓칠 수 없는 핵심이 뭘까? 생각도 다르고, 성품과 기질, 소질도 다른 우리 아이들에게 꼭 주어야 할 자녀교육의 필수 영양소는 뭘까? '

     

이 질문에 확신을 얻은 것은 큰애가 4살에서 5살로 넘어가는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문제해결력과 회복탄력성     


제가 붙잡은 육아의 키워드였습니다. 사실 인생의 키워드였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문제를 피할 수는 없으니까요. 문제라고 해서 꼭 부정적인 상황에 한정되는 건 아닙니다. 인생의 도전도 넓은 의미의 문제가 됩니다.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내는 힘, 그게 바로 인생을 살아내는 힘이 아닐까요? 그런데 아이보다 몇 발짝 먼저 살고 보니 신이 주신 내 인생의 문제를 풀다 보면 실수를 하거나 오답을 구해 좌절할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인 건, 우리에게 문제를 주는 출제자는 스핑크스가 아니어서, 수수께끼 답이 틀렸다고 잡아먹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되는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 다시 일어서는 힘을 낼 줄 알아야 하는 거지요. 다시 일어서는 능력인 회복탄력성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려고 합니다. 이 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력, 즉 문제해결력을 다룹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문제해결력은 어떻게 키워지는 걸까요?

부끄럽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이 질문의 답을 30대 초반에야 알았습니다. 너무 순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창시절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지만, 선생님 말씀에 순종적인 학생이었던 저는 열심히 공부하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거라 막연히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공부하는 방법은,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잘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학점 관리하면서 영어 공부 열심히 하면 취업이라는 문제는 해결될 거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전, 문제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질문하지 않았거든요. 책에서 읽은 글을 머릿속에 그대로 입력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느라 미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생각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생각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데서 출발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마음으로는 가능한 많은 일에 대비해 주고 싶습니다. 준비시켜 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아이의 학습을 대비해 학습지를 시키거나 학원을 보냅니다. 아이가 예술이 주는 정서적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어렸을 때부터 음악과 미술에 노출도 시킵니다. 그게 엄마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엄마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해도, 엄마의 준비성이 아무리 철저해도 아이가 마주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결국, 아이는 스스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비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상황에 따라 질문을 던질 힘을 키워주는 것이지요.      


답이 나왔습니다. 아이에게 질문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해결력 있는 아이로 키우려고자 질문을 하려고 하니 정작 제가 질문하는 방법을 모르더군요. 제가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였으니까요. 저는 수업시간에 질문하면 은연중에 선생님과 친구들의 눈치를 받는 시절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하고 싶은 질문은 선생님 수업진행에 방해되지 않게, 친구들의 쉬는 시간을 뺏지 않게 쉬는 시간에 따로 해야 했습니다.    

  

그런 제가 정작 질문을 하자 하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A는 B야. 외워. 별 세 개 짜리야.”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엄마가 질문을 던지려고 하니, 이건 번데기가 나비 되는 완전변태격 변화였습니다. 그래서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러 책을 뒤졌습니다. ‘질문’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찾아보니, 모두 질문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거기에는 동의하는데, ‘그러니까 대체 질문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요?’라는 내 의문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더군요.      

“아무리 찾아도 없네. 그럼 내가 만들어보지뭐.”

이 생각의 결과가 이 책입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저의 질문 워크북인 셈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질문을 제 아이들에게 다 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해보니 좋아요. 여러분도 해보세요.’라는 잘난 척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생활 속에서 질문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가 상황별로 할 수 있는 질문을 미리 고민한 연습장입니다. 엄마가 질문하는 법을 모르니 질문하는 법을 공부한 거지요.   

   

큰애가 7살, 작은애가 5살입니다. 아이들이 크면서 한 가지 분명해지는 게 있습니다. 아이들은 정말 제 뒷모습을 보고 배우더군요. “이렇게 저렇게 해야해” 라는 지시어가 아니라 엄마가 보여준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숙연해질 때가 많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질문하며 생각하는 힘을 가진 아이로 크길 바랍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력으로 이 거친 세상 헤쳐가는 멋진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아이들이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전 오늘도 질문 연습장에 끄적입니다. 연습해서 아이들에게 질문하려고요. 제가 질문해야 아이들이 질문할 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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