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인생은 문제집이 아니더란 말이지!
인생이 문제집 같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꿈꿨던 아나운서 시험에 몇 번의 좌절을 맛보고 나니 현실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할까?”
여러분은 이 질문의 답이 쉽게 찾아지셨나요?
제 경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고등학교 때 잠깐 의학드라마에 푹 빠져서 나도 의사가 될 거라고 헛발질했던 때를 빼면, 항상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진지한 고민의 결과였다기 보다는, 아나운서는 막연히 정말 그냥, 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그랬던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제 선택지에서 사라지자 막막하더군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지라는 생각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이런저런 일을 어느 정도는 다 잘 해내는 사람. 나름 팔방미인과에 속한 제게는 여러 갈래의 길이 가능하더군요.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문제집처럼, 인생도 4지 선다, 5지 선다형이면 살기 훨씬 편하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습니다. 선택 가능한 보기가 여러 개 제시되긴 해도 문제집에는 정답이 있습니다. 설사 답을 찾지 못해도 ‘정답’이 있다는 건, 내 생각을 거기다 맞추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내 인생의 직업을 찾는 질문에는 정해진 정답 같은 건 없었습니다. 답에 의미부여를 하는 사람도, 답의 가치를 알아봐야 하는 이도 바로 저였습니다. 항상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만 풀어왔던 저는 엄청난 압박감에 찌그러졌답니다. 누군가가 정해 놓은 답이 아니라, 문제의 답을 제가 찾는 일은 정말 어렵더군요.
봄이 오면 큰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드디어 학부모가 되네요. 워낙 어른스러운 아이기도 했지만 6살이 되더니 예쁜 티는 벗더군요. 외할머니 말씀을 빌리면, 귀여운 맛이 사라졌습니다. 7살 겨울이 되니 부쩍 소년의 모습이 비칩니다. 등원길 내내 엄마한테 조곤조곤 질문도 잘하는 큰애가 학교에 간다고 생각하니 예전에 읽었던 글귀가 마음에 많이 걸립니다. 호기심 충만해서 ‘왜’를 입에 달고 살던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더이상 질문하지 않게 된다는 글이었습니다. 중학교 아이들을 학원이나 학교 교실에서 만나기에 큰 반대 없이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말해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질문을 몇 번 던져보면 눈치 빠른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이런 눈빛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요? 귀찮으니 답부터 말씀해보세요.’
답을 유도하는 질문에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결국은 답이 정해져 있으니 난 그 결론만 취하겠다는 심산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내 품 안에서는 질문 잘하는 아이지만,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로 찍힐 수도 있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니까요. 아이들이 호기심을 따라 발산하는 질문은 실제로 수업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질문하는 교실로 유명한 이스라엘 학교에서는 질문으로 인해 진도가 늦어지면 과제로 내주기도 한답니다. 수업시간에 질문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도를 숙제로 대체한다면 엄청난 민원이 쏟아질 겁니다. 교육의 형평성 등등 제기되는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사정이 이러니 무작정 선생님께 다 물어보라고 하기도 겁이 납니다. 선생님께 폐를 끼치는 건 부담스러우니까요. 그래서 학교에 입학하면 아이와 질문대화를 더 신경쓰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북돋우고 질문으로 불붙이는 일은, 아직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다뤄져야 하는가 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인생은 질문으로 배워야 합니다.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그리고 무엇보다 왜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일. 다른 이가 정해주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 몸부림치며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다른 이의 삶이 아닌 내 삶을 살아내는 방법입니다. 진로를 찾기 위해 나를 알아가는 일.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 선택하는 일은, 힘들어도 두려워도 다른 이가 답할 수 없기에 각자가 부딪혀야 하지요.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가 산적한 인생이라는 시험. 아이들보다 조금 더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귀찮다고, 바쁘다고 미루면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걸요.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 이상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전 아이들에게 질문합니다. 어떤 것이 더 좋은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각자가 선택하고, 그 선택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이 과정이 쌓여가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을거라구요. 그러면 수능 시험지에 까맣게 적혀있는 질문의 정답은 많이 못 찾더라도, 인생이라는 질문지의 답은 더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