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초대와 적용질문
마법의 주문으로 아이와 질문대화를 시작했다면 정말 잘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다음 단계의 질문으로 대화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동양문화권에 있는 우리에게는 심적으로 불편한 주제여서 의식의 변화가 필요할 겁니다. 바로 토론을 유도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수용하지 못합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은 내가 “틀렸다”고 지적한다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의견의 차이가 생기면 입을 다물어버리는 편을 택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싸우고 싶지 않아서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게 똑같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의견차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요?
토론의 장으로 초대하는 대화는 질문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유익합니다. 이런 기준들이 대화의 장에 등장하게 되죠. 우선, 선과 악의 판단입니다. 선한가? 악한가? 옳고 그름의 기준도 있습니다. 옳은 일인가? 그릇 일인가? 가치평가도 가능합니다. 어떤 의미가 있나? 어떤 유익함이 있나? 어떻게 이용할 수 있나? 폐해는 무엇인가?
공통의 주제로 찬반이 아닌 최선의 해결방안을 목표로 함께 이야기하는 토의와 달리 토론은 찬성과 반대로 입장을 나눕니다. 특정 주제에 대해 처음부터 입장을 정해서 주장을 피력합니다. 아이들과 질문대화에서 토의 보다 토론을 지향하자고 하면 ‘혹시 우리 아이들이 싸움닭이 되는 거 아니야? 말싸움하는 버릇이 생기는 거 아닐까?’라고 걱정하는 부모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서로 자기주장을 펼치는 토론장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니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토론을 지향하는 질문대화를 하자고 주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찬성” 또는 “반대”로 입장을 정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단계가 있습니다. 바로 남의 신발 신기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앞서 이야기했던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한 주제를 토론 질문으로 확장하겠습니다.
“애들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염을 막기 위해서 미국은 중국에서 본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입국을 금지했어. 우리나라도 같은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입국 금지해야 할까? 불필요할까?”
이렇게 물어보면 찬성과 반대가 나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찬반을 선택해야 하는 거죠. 이런 질문은 실제 아이들과 대화해보면 더욱 절실합니다. 어려서부터 무의식중에 토론을 지양하는 문화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인지 우리 아이들은 입장표명에 매우 취약합니다. 아이들에게 질문할 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은 이겁니다.
“잘 모르겠어요.”
자신의 의견을 자각하지 못하는 건, 다시 말해 스스로에 대해 모른다는 뜻도 됩니다. 우리는 결국 자신의 가치관을 통해 스스로를 자각합니다. 내가 내리는 판단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달아 가는 거죠. 가치관은 주변의 일들에 대한 자신의 가치판단 기준의 총체입니다. 토론하면 싸움닭이 되는 게 아닙니다. 토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자각하게 되고, 가치관을 정립합니다. 의견 차이를 통해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토론대화를 나눌 때 자신의 의견을 정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질문으로 대화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토론의 가장 유익한 점이 사실 바로 이 질문에 있습니다. 바로 역지사지 질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신발 신어보기 질문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신라면도, 진라면도 아닌 “만약~이라면”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만약 네가 질병관리본부 총 책임자라면 어떻게 판단하겠니? 전염병의 확산을 효율적으로 막아야 하고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면 말이야?”
“만약”이라는 가정의 형태로 물어보면, 찬반 대립을 꺼린 나머지 의견 표현을 주저했던 아이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상황을 고려할 때 사고과정이 활성화됩니다. 이제는 막연한 일이 아닙니다. 내 문제가 되는 겁니다. 내가 책임자라면,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러려면 이런저런 고려사항을 검토하고 판단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라면 중에서 “만약이라면”을 제일 좋아합니다.
입장을 가정해보는 질문은 역지사지 질문으로 이용해 토론에 깊이를 더 할 수 있습니다. 즉, 찬반의 입장을 바꿔 보는 겁니다. 역지사지 질문으로 상대방의 “만약이라면”을 시도해 보는 겁니다.
“만약 네가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경제활동을 하는 사업가라면 어떻게 말하겠니? 최근에 특별히 발열증상도 없었고, 확진자와 접촉한 경우도 없는데, 입국금지 조치로 한국에 들어올 수 없다면, 사업상 큰 손실을 보게 된다면 말이야.”
질문을 통해 아이들과 이런 대화, 가능합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가보겠습니다. 바로 적용질문 하기입니다. 마법의 주문으로 질문대화를 시작해서 특정 상황에 대한 찬반 의견까지 정했다면 이렇게 물어보세요.
“그래, 책임자로써 국민의 안전을 위해 증상여부와 관계없이 입국금지 결정을 내리겠다는 거구나. 이렇게 예방적인 차원에서 강력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다른 경우는 전염병 말고 또 어떤 일들이 있을까?”
토론에서 나온 결론을 적용할 수 있는 다른 문제까지 생각을 확장하도록 요구하는 질문입니다. 아이가 질문에 답을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어른들도 쉽게 떠올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적용점을 생각해 보는 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대답을 쉬이 얻지는 못해도 아이에게 생각이 뻗어 나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거니까요. 이번에는 생각이 안 날 수 있지만, 다음번에는 생각의 끝이 기막힌 적용점에 닿을 수 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토론할 때 그 적용점을 염두에 두면 토론이 허공에 날아가는 허무한 말잔치로 끝날 위험을 막아줍니다. 토론은 현실적인 문제해결과 연결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질문하며 사고력을 키우는 근본 이유는 탁상공론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해결력을 키우기 위함 일테니까요.
“우리가 이번 토론에서 배운 점을 어디에 적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토론을 갈무리할 때 항상 기억해야 할 질문입니다.
질문대화 ABC 다시 한번 정리해볼까요?
A. 마법의 주문으로 질문의 말머리를 엽니다. 육하원칙 질문으로 시작해 다른 예나 비슷한 예, 예상되는 문제점과 장점도 물어봅니다.
B. 토론의 장으로 초대합니다. “만약이라면” 질문으로 의견을 분명히 표명하도록 돕습니다. 의견이 다른 상대의 “만약이라면”도 가정해서 역지사지를 실천합니다.
C. 토론의 결과를 적용할 수 있는 다른 사안들을 검토합니다.
어떠세요? 좀 설레지 않으신가요? 우리 아이들과 질문으로 이렇게 대화할 날이 고대 되지 않으십니까? 바로 오늘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의식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하면 됩니다. 거기에 약간의 기술을 덧입혀 질문하면 금상첨화입니다. 아이들과 질문대화하는 그날까지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께 무한한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