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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May 12. 2020

“넌 꿈이 뭐니?”의 AI 버전

하나의 꿈을 세우고 이루는 게 성공의 공식으로 통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90년대 후반 들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90년대 초반 학번이 졸업할 즈음부터 대기업의 고용이 줄어들었죠. 그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평생직장 개념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직업적 꿈의 달성이 반드시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유사 이래 가장 빠른 기술 발전 속도를 목도 하고 있습니다.      

“2017년 한국고용정보원에서 `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 발전으로 인해 2025년이 되면 국내 취업자의 61%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61%라면 자그마치 1600만 명 이상이 일자리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슷한 시기 LG경제연구원에서도 옥스퍼드 마틴스쿨의 기법을 이용하여 결과를 발표했는데, 역시 43%가 자동화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매일경제 MBN, <미래 Insight, 10년이 지나도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은?>-     

같은 기사에서 인용한 2013년 옥스퍼드대학교 미래연구기관 옥스퍼드 마틴스쿨의 논문도 역시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로 현존하는 702가지 직업이 향후 20년 안에 미국의 경우 47%, 독일에서는 42%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합니다. 논문이 제시한 시간까지 약 13년 남았고 우리는 이미 충분한 변화를 목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이들이 꾸고 있는 꿈은 정작 그 아이들이 성장하기도 전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도 많은 아이가 꿈꾸고 있는 법률가는 인공지능에 의해 상당 부분 대체될 직업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 나무 개가 아니라 수백만 명이 종사하는 몇백 개의 직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크면서 들어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직업이 비 온 뒤 죽순 올라오듯 등장하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못해 먹먹해질 지경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다양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시대라는 말도 됩니다. 우리는 이제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는 일이 의미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정진해야 할까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인생의 방향과 진로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요?     


변화의 파장이 크고 빠를수록 변하지 않는 바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해 흐름에서 도태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딥러닝 등의 기술이 만개할 시대라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기술이 사용되는 업종에 종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기술의 반대편에 있는,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직종은 안정성을 보장받습니다. 그러나 로봇의 능력 밖에 있는 창의성을 발현하는 직업군은 미래에도 ‘감히’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나의 적성과는 무관하게 예술가의 길을 선택할 수는 없는 겁니다.      


결국,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며 자문해야 하는 질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자신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이 남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어떤 능력이 있고 장점이 있는지, 성격적인 특성이 자신의 능력 발현에 어떤 관계를 끼치는지 등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일은 결코 저절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나는 왜 이렇게 느끼고 판단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자존감이 올라가고 만족하는지, 다시 말해 삶의 의미를 충만히 누리는지’ 끊임없이 관찰하고 자각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면, 그림의 배경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인들은 광장에서 연설했습니다. 넓게 트인 야외에서 사람들의 이성에 호소하는 논리력뿐 아니라 시선과 귀를 사로잡을 만한 장엄한 웅변조의 대중연설 능력은 정치인에게 필수적인 자질이었습니다. 현대의 정치인들에게는 SNS라는 소통의 채널이 추가되었습니다. 물론 선거 기간 동안 유세연설로 대중과 만나지만, 임기 대부분, 유권자와의 의미 있는 소통은 SNS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짧은 글쓰기 능력과 소통 능력이 현대의 정치가들에게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가 아닌 현대에 정치인으로 살려면 변화된 소통의 방법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변화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을 무릅쓰고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꿈이 뭐니?”라고 물었던 시대에는 아이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변호사요.” 변호사라는 직업의 존재가 불확실한, 아니 대부분의 역할이 사라질 것이 확실한 현실이기는 해도 여전히 우리가 사는 사회의 약속인 법과 그 서비스의 실현에 관심을 두는 아이들은 있을 수 있습니다. 변호사가 옛날과 다르게 사양업종이니 그런 포부는 버리라고 충고하는 게 현명할까요?      


아니요. 이유를 물어야 합니다. 왜 변호사라는 직종에 몸담고 싶은지 물어봐야 합니다.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기에” 변호사라는 업종을 꿈꾸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을 받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유를 깨달아야, 설사 “변호사”라는 직업이 미래에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어도, 오랜 시간 꿈꾸어왔던 직업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황당한 순간을 마주해도 자신의 목적과 바람을 좇아 진로를 계속해서 찾아 나갈 수 있습니다.     


‘법률의 적용과 해석을 통해 타인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을 품은 아이들이 있다면 다음 질문은 바깥으로 향해야 합니다. ‘나는 이런저런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그런 사람에게 지금의, 그리고 앞으로의 사회가 요구하는 자질은 무엇일까?’ 이 질문으로 고민하며 사회의 변화를 검토한다면 이런 통찰도 가능할 겁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로봇이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범위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방대한 판례 검토능력을 바탕으로 로봇이 내리는 판결이 인간의 법률서비스를 대체할 거라 예측하는데, 여기에는 로봇의 판단이 윤리적인 문제를 초래할 소지가 있다. 인공지능의 판단에 대한 윤리성을 검토할 필요가 대두될 것이다.’     

꿈을 물어보는 대신 어떤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지를 묻는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답을 찾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해석하기 위해 고민한다면 그 변화의 물살에 올라탈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직업의 50%가 사라지고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직업이 대거 생겨나는 시대에 특정 기술이나 전공, 자격증을 준비해서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태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바와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은 변하지 않는 본질(자신)을 이해하고 변화의 요구(사회의 변화)에 부응하는 탄력성으로 대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답을 제시하는 대신 질문해야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미래를 적극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오늘부터라도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꿈이 뭔지 묻는 대신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를 물어봐야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스펙 준비로 어떤 자격을 준비하는 게 더 유리할지 이야기하는 대신 시대가 변화면서 요구되는 능력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어떤 일을 할 때 만족스럽니?”

“그런 사람으로 살려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

“다른 사람이나 기술로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능력은 무엇일까?”

“이 시대는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할까?”

“00 기술이 더 발전하면 어떤 능력을 갖춘 사람이 인정받을까?”

“앞으로 요구되는 인재상은 지금과 어떤 점이 다를까?”     


이런 질문들이 오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정해진 답을 제시하는 대화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생각을 듣고자 온몸의 세포가 귀가 되는 집중력으로 임한다면 대한민국에서 대화하기 제일 힘들다는 중학교 2학년 자녀와도 감히 말머리를 열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말머리가 들리고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면 단번에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한다 해도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생각이 깊어질 겁니다. 그럼 아이들은 AI 시대 버전으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게 될 겁니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죠.      

‘그러게,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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