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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영 May 29. 2020

질문탑 쌓기

질문을 분류하는 체계는 매우 다양합니다. 대표적으로 블룸(Bloom)의 인지 영역에 따른 질문수준이 있습니다. 블룸은 인지 영역을 지식, 이해, 적용, 분석, 종합, 평가의 여섯 단계로 구분했는데, 각 영역의 내용을 확인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우선, 지식 및 이해 영역의 질문은 정보의 내용을 묻습니다. 육하원칙 질문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책을 읽고 나서, 책의 지식을 잘 이해했는지 묻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거기서 출발해 우리는 질문을 심화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 전달하는 내용을 잘 이해했다면, 그 내용의 적용점을 찾는 물음을 할 수 있습니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볼까?”와 같은 질문이 대표적입니다. 다음으로 해당 내용을 분석, 종합, 평가하는 질문도 가능할 겁니다.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질문은 탑의 층과 같습니다. 질문으로 탑을 쌓는다고 생각하면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탑의 1층을 쌓지 않고 2층을 올릴 수 없는 것처럼, 아래층의 질문은 선행되어야 다음 단계의 질문이 가능합니다.     

3차적 질문: 분석, 종합, 평가     : 3층

이차적 질문: 적용                : 2층

일차적 질문: 지식 /이해          : 1층     


그런데 이 3차적 질문은 좀 새롭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려면 어른들도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평상시에 어른들도 이런 생각, 잘 안 하거든요.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 아닙니다. 여기서부터는 뭔가 머리가 복잡해져 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질문을 이렇게까지 단계별로 하기가 처음에는 좀 복잡하겠지만 어른들이 머리를 쓰면 아이들의 사고력이 발전합니다. 대화도 풍성해집니다. 그리고 100세 시대라는 요즈음 제일 무서운 질환인 치매도 자연스럽게 예방됩니다. 두뇌는 사용할 때 활발해지니까요. 어차피 뇌 건강을 위해 일부러라도 머리를 써야 하는데, 아이들의 사고력 발달에 도움까지 된다니 일거양득 아닙니까?      

자, 그럼 질문탑의 3층에 해당하는 3차적 질문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분석 질문은 차이점과 공통점을 묻는 데서 출발합니다. “차이점은 뭐니?”, “뭐가 달라?”와 같이 물어볼 수 있습니다. 차이점과 공통점을 구분하는 건, 남이 써놓은 말을 외워서 얻는 지식이 아니라 나만의 진짜 지식을 얻는 첫 발걸음입니다. 평가하라는 질문을 받으면 주어진 정보를 종합해서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청전을 읽고 이런 질문을 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심봉사는 공양미 몇 석을 약속했지?”

“심청이가 제물로 바쳐진 곳이 어디지?”

위의 질문은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했는지 묻는 일차적 질문입니다. 묻는 내용의 답은 모두 책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심청전을 읽고 이런 질문도 가능합니다.

“만약 심청이처럼 아버지가 눈을 뜨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이라는 큰돈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나는 재물로 나를 팔 수 있을까?”

“아버지가 앞을 보기 위해 내 목숨을 희생할 수 있을까?”

책의 내용을 개인적으로 적용해 보는 이차적 질문이지요.      

조금 더 나가서 책의 내용을 분석하고 종합해 평가하는 다음과 같은 질문도 가능합니다. 

“심봉사가 아내를 잃고 나서 심봉사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와 뺑덕어멈의 태도는 처음에는 같아 보였는데 후에 달라졌어. 왜 그런 차이가 생겼다고 보니?”

“왕비가 된 심청이가 아버지를 만나려고 맹인 잔치를 연 것을 보면, 과연 심청이는 공양미를 바치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눈을 뜰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 앞 못 보시는 아버지를 두고 자신을 팔아 떠나는 게 진짜 효도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공양미를 바치는 종교심과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는 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공양미를 바치면 정말 눈을 뜰 수 있을까?”

“공양미 약속을 지킨 후 왜 심봉사는 여전히 앞을 보지 못했을까? 이후 심봉사가 심청이와 재회하고 눈을 뜬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공양미를 바친 덕인 걸까?”

이런 질문은 또 어떨까요?

“심청이가 뱃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파는 값으로 정확히 심봉사가 시주하기로 한 돈만 요구하는 걸 보면 심청이는 어떤 성품으로 볼 수 있을까?”     


주어진 정보를 종합해서 평가하는 질문탑의 3층 질문까지 확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하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의지 없이는 책의 내용을 분석, 종합하는 내용까지 대화가 확장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3차적인 질문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질문대화 나눌 때 가장 효과적인 영역이 바로 이 3차적 질문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보는 시각에 따라 질문이 다양해지기 때문이죠.      


심청전을 읽고 우리는 어디까지 이야기 나눌까요? 아름다운 고전 작품이니 아이들에게 읽어주신 부모님은 많습니다. 심청전을 읽은 아이들도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거기까지입니다.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훌륭합니다. 부모님들과 아이들은 거기까지 하면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고 만족합니다. 아직 심청전을 읽지 않은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눈에 받으며 내심 뿌듯해하지요. 하지만 그건 단순히 책을 읽은 겁니다. 내용을 알고 있는 책이 한 권 늘어난 것에 불과합니다. 책에 대한 지식은 늘어났지만, 사고력이 향상됐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사고력과 판단력은 고민할 때 생기고, 우리는 질문 받아야 고민합니다. 그래서 질문하기 연습이 필요합니다. 여기, 대놓고 연습할 공간을 준비했습니다. 직접, 써봐야 생각합니다. 최소한 써놓은 대본이 있어야 이런 질문들을 외울 수 있습니다. 외워면 아이들과 함께 책 읽는 실전현장에서 조금은 수월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써보세요”가 아니라 조금 강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곳의 빈칸을 그냥 남겨두고 넘어가지 마십시오. 꼭 채워봐야 합니다. 그래야 질문을 우리 DNA 속에 새겨 넣을 수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셨을 겁니다. 혹시 기억이 가물가물하시다면 다시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명작입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내주고 초라한 모습이 되어 용광로에서 녹은 왕자 동상과 그런 왕자를 돕다 따듯한 남쪽 나라로 떠나지 못해서 얼어 죽고 만 제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었다는 전제하에 질문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이런 질문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이런 질문 대화를 하는 목표를 갖고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책의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묻는 1층 질문을 적어볼까요? 질문탑의 1층을 쌓아보겠습니다.      

제비가 왕자를 만났을 때 어디를 향해 길을 떠나는 중이었나요?

2. 왕자는 제비에게 무엇을 부탁했나요?

3. 왕자가 제비를 시켜 가난한 작가에게 준 보석은 무엇인가요?

4.

5.      


잘하셨습니다. 시작이 반이니 이제 질문대화 절반의 성공입니다. 질문탑 2층에 적용 질문도 적어보겠습니다. 

제비는 따듯한 곳에서 사는 철새입니다. 겨울의 문턱에서 왕자가 계속 하루만 더 머물려 불쌍한 사람을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나라면 거절하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요?

내가 만약 그 도시의 시장이라면, 초라하게 변한 왕자 동상을 보고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요?

내가 만약 왕자라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내가 만약 제비라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5. 내가 만약 사파이어를 받아든 성냥팔이 소녀라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아이들은 정말 스펀지처럼 어른들의 말과 생각을 빨아들입니다. 적용질문을 하면서 아이들이 “나라면~ 할 텐데.” 이라거나 “나였으면 ~할 거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타인의 입장에 적극적으로 서 보는 사고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분석, 종합, 평가 과정에 수반되는 3차 질문을 연습해보겠습니다. 3층 석탑을 쌓듯 질문탑을 정성스럽게 쌓는 연습입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을 아시나요? 스승이었던 오세창 선생님에게 배운 문화보국(文化保國)의 신념으로 일제 강점기와 격변의 근대사 속에서 많은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분입니다. 지금은 간송 미술관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세운 분이기도 합니다.      

선생은 종로에서 누구나 아는 큰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학창시절 역사 공부에 몰두했고, 일본의 법을 알아야 백성을 도울 수 있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 와세다대학 법대에 진학했습니다. 후에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의 소개로 당시 문화유산을 수집하던 오세창 선생과 만나, 얼지 않는 산골물과 사철 푸른 소나무라는 뜻의 ‘간송(澗松)’이라는 호를 받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받은 그는, 재산을 뜻있게 쓰고자 고민했고, 우리의 문화재를 지켜 언젠가 나라를 되찾았을 때 후손들이 자랑스러운 문화를 알 수 있도록 문화재를 지키는 데 쓰기로 합니다. 전형필 선생의 노력이 없었다면 <훈민정음 해례본>은 혼돈의 연속이었던 우리 근대 역사 속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형필 선생이 사재를 팔아 문화재를 수집하던 일제 강점기에,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무력항쟁하고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에는 열정과 헌신뿐 아니라 돈도 필요했을 겁니다. 이런 질문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전형필 선생은 엄청난 돈을 문화재 보호를 위한 수집에 투자했습니다. 당시 해방을 위해 무장항쟁하며 일본 통치에 거세게 저항했던 독립투사들의 무장독립항쟁 역시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전형필 선생의 문화재 보호와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시급했을까?” 

“국권과 문화유산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면 좋은 점은 뭘까? 나쁜 점은 뭘까?”

“전형필 선생은 어떻게 문화재 보호에 전 재산을 투자할 수 있었을까?”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그렇게 많은 돈을 문화재 보호를 위해 투자하셨다는 점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니?”

“간송 선생님과 윤봉길 선생의 독립운동을 생각해보자. 두 분의 공통점은 뭐야? 차이점은?”     

단계별 질문으로 3층의 질문탑 쌓는 질문대화는 아이들의 사고력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합니다. 자녀<성공대화법>의 저자 김상옥씨는 자녀의 사고를 촉진하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이의 사고를 촉진하는 질문은 자신이 가진 지식, 정보 등을 이용하여 비교, 대조, 구분, 분석, 종합하여 응답하게 하는 질문이다. 따라서 아무렇게나 대답하는 질문이 아니라 아이가 생각을 깊게 해서 응답을 해야 하는 일종의 문제 해결 수준의 질문이다. 즉, 사고 촉진 질문은 아이가 추론하고, 자료를 해석하고, 두 요인 이상 간의 관계를 찾아내고, 학습 자료의 핵심 내용을 설명하도록 하는 높은 수준의 질문이다.” <자녀성공대화법>(김상옥, 164쪽)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바랍니다. 물론 읽지 않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이점이 독서에, 다독에 있습니다. 하지만 서 말이나 되는 구슬도 꿰어야 보배이듯 다독이 곧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정비례하지는 않습니다. 독서의 경험은 생각의 기회를 제공할 때 그 어떤 진주 목걸이보다 영롱하게 빛나는 사고의 아름다움을 빚어냅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기회는 우리가 질문받을 때만 잡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독서 활동 목적을 다독에 두느라 책을 통한 질문 대화를 생략하는 건 그래서 너무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탑의 돌 하나하나를 쌓아 올리듯 질문탑도 쌓습니다. 질문대화의 핵심은 과정에 있습니다. 단계마다 아이의 사고과정을 중시하며 한 층씩 질문탑을 쌓아갑니다. 필요하면 좀 기다려줘야 할 수도 있습니다. 탑은 아래가 튼튼해야 하니 공들여 시간을 투자합니다.      


질문은 프레이밍(Framing)입니다. 안경과도 같습니다. 질문은 생각할 방향을 설정합니다. 질문하는 부모의 성향에 따라 내용을 물어보는 내용확인, 사건의 사실관계나 결과, 선과 악, 옳고 그름 또는 이익과 손해를 판단하는 질문에 집중할 수도 있을 겁니다. 세상 모든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듯 질문도 생각의 틀을 제시합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질문대화 나눌 때 질문이 다양해지고 풍성해지는 건,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Framing이 다양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때 중요한 건 균형입니다. 만일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내용질문만 한다면 아이들은 입을 닫을 겁니다. 질문으로 내용을 확인하는 문제만 내는 셈이니까요. 생각하는 기쁨, 사고의 즐거움을 느끼려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항해할 수 있는 열린 질문이 필요합니다. 확산적 사고를 이끄는 질문, 곧 종합하고 분석해서 평가할 수 있는 깊은 생각으로 이끄는 3차적 질문으로 나가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질문대화 시간이 즐거워집니다. 아이들과 함께 돌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질문탑이 아름다워집니다. 조금만 의식하면 1층은 올릴 만합니다. 탑의 2층은 적용하는 질문이니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절하게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며 쌓습니다. 자,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마지막 3층을 앞두고 깊이 숨을 들이마십니다. 정보 사이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집중합니다.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아이의 느낌도 물어봅니다.      

탑돌이 하는 정성으로 오늘도 질문으로 탑을 쌓습니다.          

 

* <행복한 왕자>를 읽고 이런 질문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행복한 왕자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우러러보는 사람들 말고, 다른 곳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아. 왜 그랬을까?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눠 주는 왕자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니? 우리는 어디까지 나눌 수 있을까?     

자신의 보석을 하나하나 떼어주다 결국은 몸의 금박까지 다 떼어주고 초라하게 변한 왕자 동상을 보며 어떤 마음이 드니?     

제비가 어려워하면서도 왕자의 부탁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한 걸 고려할 때, 제비는 어떤 마음을 가진 것 같니?     

왕자는 제비의 도움으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었어. 하지만 제비는 죽음을 맞았어. 왕자의 선행을 도운 제비가 목숨을 대가로 치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제비와 왕자 모두 자신이 가진 전부를 걸고 선한 일을 행했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00아, 너라면 어땠을 것 같아? 만약 집에 갈 수 있는 차비 1000원 밖에 없는데 구걸하고 있는 사람을 봤다면 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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