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아침 지하철은 괴롭다. 사람 사이 1미리도 남아있지 않는 그 숨막힘. 가끔은 접근금지, 최소 1미타는 그렇게 내 주위에 아무도 없는 반강제적인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만 숨쉬는 공기, 나만 밟는 땅 내 주위를 침범할 수 없게 말이다. 개인의 영역을 무심히 짓밟는 지하철에서는 말도 안되는 말이다. 모두가, 모두를 침범한다.
그래도,
내 앞에 앉아가는 좌석에 간디가 있어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이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고, 주먹만한 물레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까맣게 옻칠을 한 저 물레를 돌리면 마음의 평화가 절로 찾아올 것 같았다. 평-화. 앉아가던 서서 가던 사람이 많던 적던 상관없이 저 평정을 지키는 사내를 보라. 가만 수틀리면 바로 물레를 돌려버리겠다는 잔잔한 근육까지.
내가 물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걸 간디의 옆 좌석에 앉은 이소룡도 눈치를 챈 듯 했다. 이소룡은 생애 단련한 초근접 펀치의 속도로 물레를 가져가려는듯 주먹을 폈다줬다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소룡을 보니, 간디나 이소룡이나 잔근육이 체지방률 제로에 수렴하겠지 이따위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이쿠, 쏘리”
지하철이 급정거를 하자 옆의 섰던 남자가 내 어깨를 쳤다. 마이클잭슨이었다. 문워크든 무중력 린 댄스를 해내건 마이클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다니. 나이가 드는 건 어쩔 수 없구나.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고 스릴러는 최고의 명반이었어요 라고 중얼거렸다.
마이클 뿐만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조지 마이클도 있었고 프린스도 있었다. 그들은 무척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는데 다른 예술가들 사이에 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알아볼 수 있는 건 빈센트 반 고흐 정도였다.
아침 일찍부터 운행하는 저승행 지하철은 지옥과 천국에 번갈아 내려준다. 죽을 때부터 손에 쥐어진 티켓이, 자신이 어디서 내릴지를 알려준다. 내 손에는, 말장난 같은 이상한 역명이 적혀있었다. 그것이 천국인지 지옥인지는 모른다. 내려봐야 아는 것. 지옥철에서 탈출해 진짜 지옥에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겠다.
“내리실 역은 인생꽃 역입니다”
방송으로 정차를 알린디. 인생꽃이라니. 참 이쁜 역명이다. 그때 누가 내 옷을 뒤에서 잡아당겼다. 누구,
무척이나 낯익은 얼굴이면서 낯선 얼굴의 여성이 서 있었다. 누구였더라. 고개를 숙이고 내 뒤에서 쭈뼜뿌뼜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려나 보다 할때 역시나 입을 열었다.
“저 이제 내려요”
그 말을 하더니, 때마침 정차해 도착한 인생꽃 역에 그 많은 인파를 힘차게 뚫고 내리는 것이다. 이건 뭐지, 고백인가. 나도 같이 내리라는 건가. 삼십 평생 여자한테 고백 한번 못 받고 일하다가 과로사로 죽은 내가 죽어서 여자한테 고백을 받은건가. 그것도 저승행 지하철에서.
없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종착역이 아닌 곳에서 내리면 어찌 되는지 나는 모른다. 이것이 지옥인지 천국인지도. 하지만 사랑이 여기 있다면 그곳이 지옥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이거 잠시만 빌려주세요”
간디가 들고 있던 물레를 뺏어 나도 문이 닫히기 전에 인생꽃 역에서 내렸다. 물레는 왜 가지고 왔는지는 모르겠다. 지옥에서 평화라도 찾을 심산인지도.
인생꽃 역은 사람 인생이 인화된 필름으로 만든 꽃이 만연했다. 이 풍경까지는 확실히 천국처럼 보였다. 그 꽃밭 너머 그녀가 있었고, 지하철은 이미 다른 역으로 떠나고 있었다.
“잠깐만요”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돌아본다.
그래, 그녀는 인생꽃 사이 무척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