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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Oct 26. 2017

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오늘도 끈 하나가 끊어졌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범인이겠지. Y군과는 연락을 안한지 5년이나 되었다. 5년 전에 만났고, 호감을 가진 두살 아래 아이었다. 참 괜찮은 친구였는데 Y군과 어쩌다...라고 생각해볼 겨를에 끈이 끊겼다.

툭,


머리부터 발끝, 머리카락보다 얇은, 사실상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끈들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다. 한 가닥 한 가닥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들은 동물과 연결되어 있다. 그 정도는 흔하다. 하늘이나 지구와 끈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TV나 책으로 몇 번 봤을 뿐이다.


한 평생 살면서 평균 1만 개의 끈을 가지고 산다. 평생 가질 수 있는 끈의 수. 이 끈은 수없이 끊어지고 다시 이어짐을 반복한다. 그리고 끈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서 한번 상처가 나면 치유하지만 그 상처가 계속되면 영구적으로 살아나지 못한다. 세상 살면서 절대 보지 못하는 남남이 되는 셈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격언 중에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어”라는 말이 - 실제로 세상 속에 밝혀졌을 때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 웅성거리는 세상 사람을 보고 인디언들은 이렇게 말했다.

“거봐, 내가 그랬잖아”


끈의 역할이 뭐인지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다. 주로 모아지는 이야기로는 ‘공감’이었다. 감각을 공유한다는 말이다. 연결된 끈을 통해 웃으면 같이 웃고 슬프면 같이 슬프고 아프면 같이 슬픈 감각의 공유. 그게 바로 연결된 끈의 증거이기도 했다. 반대로 모든 끈이 끊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사이코패스 성향이 많이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아까 끈을 130개 거느리고 다니는 친구를 보았다. 참 자존감이 높아보였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저절로 얼굴이 빛나보인다. 사랑도 많이 받고 자란 것 같고. 사람을 포용하고 이해심도 많고... 제길. 왜 잘난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되는거지. 내 끈을 되돌아본다. 지금 2개가 남았다. 하나는 2개월 전 떠난 룸메이트, 하나는 멀리 사는 엄마. 둘 다 간당간당하게 가늘다. 끈에는 이미 상처가 많다.


인디안 여러분, 당신들의 이론은 틀렸어요. 그게 맞다면 제 존재는 어떻게 설명되는거죠? 우주 속에 떨어져버린 우주비행사의 고독처럼, 아니 그건 공포에 가깝겠지. 끈이 모두 끊어져버린 공허를 상상하다가 금새 몸서리친다. 그때,


툭,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룸메이트와의 끈이 끊아졌다. 그녀가 날 잊은 것이다. 완전히. 이름도 얼굴도.


그제서야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엄마, 보고 싶어요. 나 지금 혼자에요.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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