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그게 말이 되냐고 했다. 그래도 말되는대로 하라고 했다. 군대 얼차려 이후로 박으라면 박는 하루는 계속됐다. 무슨 역할놀이를 하는 것도 아닌데, 누구는 위에 누구는 아래에. 창 밖에 야근하는 불들이 그 시골길에서 봤던 반딧불이처럼 희미하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인생의 대부분을 일하며 살아가면서 동시에 그 일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외면하기에 최선을 다하며 나머지 시간을 쏟고 있지.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삶인가.
“너는 이 일이 재밌니?”
먹고 사려고 하는거지 뭐, 사명감 따위. 꿈 따위. 그런건 다 환상이라고.
그 때 일이 나에게 왔다. 일은 온몸이 검었는데 얼굴만은 유리처럼 반짝였다. 마치 연기같으면서도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일은 무척 커지기도 했고 손바닥 위에 올라갈 수 있을만큼 작아지기도 했다. 그 일이 다시 말을 걸었다.
“너한텐 악감정이 없어”
알고 있지. 네가 뭘 나한테 감정이 있겠어. 너한테 감정은 없어. 넌 단지 투-두-리스트일 뿐이야.
“날 이렇게 만든 건 결국 너잖아.”
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주말에 자신을 피하고 연락도 받지 않으면서 잠수를 타고. 처음 만났던 설렘의 얼굴은 어느새 사라지고 지루한 표정만이. 헤어질 때가 왔다고 직감은 왔었지.
“네가 그냥 나라고 생각해”
일은 순간 연기처럼 변해 코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왔다.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닌 기분, 혈관 사이사일 누비는 다른 존재가 느껴진다. 우리는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사이.
나의 존재 대신 일의 존재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실 다 그렇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