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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Mar 09. 2020

거절을 대하는 세 가지 태도

이태원 클라스의 조이서가 사랑하는 방법

사랑하는 사람의 거절은 뼈아프다.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를 거부당하는 것과 같다. 그 말은 이 우주에서 마치 내가 없었던 것처럼, 내가 가진 감정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되는 것을 뜻한다. 뼈아플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연결되려고 하고, 인정받으려고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이다. 내가 연결하려고 하는 감정의 끈을 상대방이 싹둑 잘라버린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계속해서 거절당한다. 거절당하고 거절당한다.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영혼이 흔들리고 멘탈이 나간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 거절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캐릭터가 있어서 소개를 해보려고 한다. 이태원 클라스의 조이서.


주인공 박새로이를 좋아하는 조이서. 누가 봐도 좋아하는 티를 내는데 박새로이는 무신경한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답답하다. 조이서는 자신만의 계획을 잡아서 고백 타이밍을 노리지만, 예기치 못한 사태에 급 고백을 하게 된다. 하지만 돌아온 박새로이의 대답은 노. 단호한 노. 조이서는 박새로이를 뒤로 두고 눈물을 흘리며 뛰어간다.


흔한 드라마 클리쉐인데 흔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조이서의 캐릭터 때문이다. 극 중에서는 소시오패스라는 설정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못 읽는 캐릭터다. 그런데 조이서가 유일하게 감정을 느끼고 심장이 뛰고 눈물을 흘리며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하는 대상이 박새로이. 재밌는 건 거절을 당하고 난 뒤의 조이서다. 거절을 당하고 난 다음의 행동 패턴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 분노. 상대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는 유형이다. 분노는 “네가 감히”라던지 “네까짓게”라는 식으로 시작한다. 뉴스만 검색해도 수많이 나온다.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거절을 인정하지 않으며 당연히 허락했어야 하는 제안을 상대의 온전한 잘못으로  돌린다. 자신의 아픔을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몫으로 두지 않고 모든 것으로 밖으로 돌리는 유형이다.


두 번째. 자책. 분노가 밖으로의 감정 분출이라면 자책은 안으로의 감정 분출이다. 상대를 탓하지 않지만 도리어 자신을 탓한다. 자신이 모자라고 부족하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핵까지 들어가고 자신을 끊임없이 파괴한다. 분노보다는 자책이 나아 보이지만 자책도 그리 좋은 선택지는 아니다.


이태원 클라스 조이서는 분노도 자책도 하지 않는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을 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지만, 단호한 거절을 당하고 거리로 달려 나가 꺼이꺼이 울었지만 그게 다였다.


그는 금세 돌아왔고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박새로이가 조이서를 어려워하고, 조이서는 이미 고백한 것 하면서 애정표현을 더 아낌없이 한다. 자신을 거절한 상대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한 분노도, 거절의 이유를 자신에게 찾으며 끊임없이 자책하는 것도 없이 그는 원래의 자기 페이스를 되찾았다. 차이가 왜 생겼을까?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이 있다. 시련과 역경에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회복하고 성장하는 능력을 말한다. 한마디로 넘어졌을 때 다시 벌떡 일어날 수 있는 능력. 조이서는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이고, 무너진 멘탈이 자신의 삶을 침범하기 전에 멘탈을 수습했다. 거절이 만든 감정이 분노나 자책으로 이어지기 전에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나중에 다시 박새로이와 같이 옥상에서 나눈 대화가 조이서가 거절을 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보답 받지 못하는 마음이라도, 괜찮아. 사장님이 저번에 그러셨잖아요. 마음은 기브엔테이크가 아니라고.

그래도 좋아요. 그러니까 나한테 좋아하지 마라 마음 정리해라 이런 이야기하지 마요. 제 마음은 제거에요. 사장님이 그럴 권리 없어.

만약 이 마음이 해고 사유면 잘라요.”


우리는 조이서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보통은 아마 그렇게 못할 것이다. 분노와 자책 사이에서 서성거리게 될 것이다. 높은 자존감을 갖춰야 하고 상대를 미워하지 않을 용기도 필요하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거절당하며 사는 삶, 드라마처럼 되지는 않다라도 그 단단한 삶을 지향하며 살 수는 있겠지. 지금도 사랑에 거절당하는 수많은 조이서를 위해. 끝내는 해피엔딩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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