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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Jan 30. 2021

좋은 남자 찾기 프로젝트

30대가 되면 좋은 남자 찾기 정말 어려울까?

좋은 남자는 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친구가 물었다. 어깨를 으쓱했다. 좋은 남자, 아니 좋은 사람이 누구에게나 미지의 생물체인 건 마찬가지 아닌가. 구남친과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헤어진 친구에게 별다른 조언을 해주지 못했다. 자존감이 무척이나 떨어진 그녀의 눈이 슬퍼 보였다.


몇 명이나 몇 번이나 나에게 ‘좋은 남자’에 대해 물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넘어가면서 더욱더 유니콘 같은 미지의 사람을 찾으려고 한다. 내 주변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그를 향한 조급함, 시행착오를 더 이상 겪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불안함과 함께.



예전에는 스스로 ‘좋은 사람’이 먼저 되는 게 먼저라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었었다. 그런데 필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의 고민은 다른 차원에 있었다. 그를 찾기 힘들고, 이들이 불안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결국 남자를 한 번에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의 복잡함과는 다른 유형의 복잡함을 가지고 있다. 그 복잡함이란 바로 남자 본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잠재된 변화’에 있다.


케바케지만 많은 남자들은 자신의 변화에 둔감한 경우가 많다. “변했어”라는 의아하기만 하다. 반면 여자는 관계의 작은 변화에도 감정적인 요동이 크다. 여자들이 흔히 말하는 관계에 대한 불안은 ‘남자의 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곧 처음 보여준 친절하고, 다정하고, 좋은 말을 하는 얼굴과 사랑스러운 손길이 계속 이어질 것인가 하는 의심이다.


애정 관계는 변하지 않을 거란 ‘믿음’을 토대 삼아 그 위에 올려 세운 성과 같다. 상대가 금방 마음을 바꿔먹을 거란 것을 안다면, 쉽게 마음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를 파악하기 힘든 이유는 당시에는 의심을 할 새 없이 사랑이란 믿음의 성이 완벽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자 입장에서는 사랑의 고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렇게 몇 번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남자의 애정 고백에 있어 복합적인 심경이 같이 딸려오게 된다. 사랑의 행복감과 불안감, 안정과 불안정, 확신과 의심이 동시에 일어난다.


때론 남자의 입바른 말과 모든 표정들, 애정 공세들이 곧 시들해질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그렇기에 여자는 또 의심하고 염려한다. 남자가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가 내면에서 겪은 천만 겁의 과정을 속성으로 한 번에 이해하려 하고 많이들 실패한다. 왜 사랑하는데 의심하느냐고 되려 화를 내기도 한다. 반대로 여자는 이런 남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흔한 악순환에 빠진다.


공식적으로 교제를 시작하고, 마음을 주고, 잠자리를 가지고, 결혼을 결정하는 그 순간순간마다 여자의 마음은 이토록 복잡하다. 믿음을 가져야만, 믿음이 단단해야지만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갔을 때 변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과 염려가 한 톨이라도 있다면, 한 발자국도 내밀 수 없다. 이런 염려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많아진다. 그렇기에 모두가 처음과 같이 변함없이 애정을 쏟고 상냥하며 아낌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을 찾는다.



그럼 이런 유니콘 같은 남자가 어디 있을까.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로맨스 영화나 웹소설에 나올법한 유니콘남은 현실에 없다. 그런 남자를 찾으려고 한다면 실패하고 실망하며 절망할 뿐이다. 변화는 관계에 있어 어쩌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할까? 대안이 있다. 본인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변화에 대응하려는 남자들은 꽤 있기 때문이다. 상대와의 어떤 관계를 목표지향적으로 성취하기 위해,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가장하고 꾸미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아직 ‘좋은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고 그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말이다.


그 사람은 분명히 ‘좋음’의 방향을 알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일 것이다. 관계에는 조금 서툴러도 당신을 위해 기꺼이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의심을 거둘만하다. 인생이란 영화에 당신을 공동 주연으로 내세워 소박한 ‘사랑’과 ‘행복’으로 채워서 과정은 우당탕탕이더라도 결말에는 해피엔딩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 그 해피엔딩의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사람. 눈을 띄게 만드는 그런 빛나는 아우라가 없더라도 말이다.


기억하자. 지금 당신이 떠올리는 ‘좋은 남자’의 기준과 실제 만나야 하는 사람이 확실히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시간이 지나 관계가 시들어졌을 때라도 그는 ‘좋은 관계’의 그림을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해 시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본인이 원하는 단계를 성취하여 더 이상 대응할 생각 자체를 못하고 그저 권태로 받아들일 때 말이다.



‘좋은 남자’의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한다. 좋은 사람이란, 어떤 ‘좋은 그림 같이 그려갈 사람이다. 변화는 필연적이지만 그 그림이 관계를 더 좋게 나오도록 해준다. 그림을 나만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도 같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 반대로 그가 그리는 그림이 나에게도 너무나도 멋진 것. 그것이 서로에게 구속이고 괴로운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만남.


힌트는 그와의 모든 순간에 있다. 이런 소소한 노력들로 인해 ‘더 좋은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점점 완성된다면 말이다. 미래의 그림을 같이 꿈꿀 수 있고 서로 공유한다면. 그 그림이 설사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같이 살아갈 날들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운 뒤 두 사람이 동시에 상상만으로 설렌다면. 그로 인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나아가 되고 있다면, 그만한 천생연분이 없다.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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