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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Feb 16. 2021

박지성은 어떻게 벤츠남이 되었나

쓰리박 박지성-김민지 커플 연구


재밌는 기획이 나왔다. 국민적인 영웅이었던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이들이 펼치는 새로운 도전 이야기. 그런데 나는 첫 에피소드에서 박지성 가족을 보며 왠지 모를 감명을 받았다. 축구선수 이전에 인간 박지성을 알 수 없는 바, 이들의 삶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 이 가족의 생활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졌다.


바로 전에 이어 나왔던 박찬호 에피소드와 너무 비교돼서 그럴까.


원래도 잘 안 도와주는데
이제는 집에 붙어있지도 않겠네


프로골퍼로 도전을 해보겠다는 박찬호의 말에 아내의 반응이 차갑다. 보면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는데 왜 그런가 보니 박찬호도 아내와의 자리가 불편해 보이고 아내 또한 박찬호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아 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화 중에 박찬호가 아내에게 “당신의 목표는 뭐야?”라고 묻는다. 아내가 망설이자 “자기 목표는 아이들 좋은 학교 보내는 거”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내는 “그러게. 내 목표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네”라고 말한다. 이 모습, 낯설지 않다.


박찬호는 우리 아버지 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가부장적이지만 - 집안일과 육아 및 교육에 서툴다는 핑계로 아내에게 전가하는 - 은퇴 후에는 자신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동안 함께 하지 못한 가족에게 속하지 못하고 어색하고 이상한 동거인 취급을 받는다. 그로서는 정말 서러운 일이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당연한 태도일 수 있다.


이제 그 시대는 갔다. 새로운 시대의 상징으로 박지성 가족을 살펴보자. 정말 깜짝 놀랐다. 박지성은 정말 흔치 않은 벤츠남이었다.


박지성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나의 기분 나의 감정 그리고 내가 이 정도로 대단했던 사람이었다는 기억 또 내 의견들. 아내 김민지가 말한다.


남편이 팀 활동을 해와서
그런지 팀 플레이를 잘해요. 업무 분담


결혼은 팀플레이다. 누가 감독이고 선수가 아니라 같이 필드를 뛰는 선수이다. ‘나’가 강한 사람들은 그래서 결혼을 힘들어한다. 이런 면에서 박지성 가족에게 연출된 장면은 정말 팀플의 정석이다. 알다시피 팀플은 희생이 전제되어 있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상대를 우선하는 것이다. 서번트십이라고 할까.


남편을 돈을 벌어오기 위해 혼자 희생하고, 아내가 집안일과 육아에 인생을 바쳐 희생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함께’에 있어 필수인 내려놓는 희생의 모양은 모두 다르다. 가족의 팀플레이에서 중요한 건 그게 어떤 모양이든 서로가 어떤 곳에서 어떤 일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게 얼마나 힘든지 매우 각별하게 민감하게 인지하는 것이다. 박지성은 김민지에게, 김민지는 박지성에게 그 부분이 탁월해 보였다.


게다가 이 가족의 팀플레이 성공에는 배우자인 김민지의 존재가 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김민지를 보고 결혼 너무 잘했다고 하겠지만, 나는 반대로 보였다. 박지성은 김민지를 너무 잘 만났다고 여겼다.


둘은 정말 다른 스타일이다. 박지성이 내성적이고 조용하며 정적이라면 김민지는 외향적이고 자기 이야기를 하며 동적인 사람으로 느껴진다. 정반대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어울릴 수 있을까.


팀플레이에서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성향을 살려서 각각의 분담을 나눴다. 박지성이, 김민지 각각이 홀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희생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 희생만큼 나도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의미로 장면들이 읽혔다.


이런 끊임없는 주고받음이 서로를 더욱 단단하게 하고 애정의 성을 쌓는 초석이 된다. 무엇보다 김민지가 대단하다고 느낀 부분은 내향성의 박지성을 제대로 컨트롤할 줄 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계속해서 내보내면서 그에게 지금 역할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다. 어쩌면 은퇴 후에 우울증에 빠지거나 주변을 맴돌지 않고 가족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데에는 김민지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매일 밤 수유를 할 때 남편이 같이 일어나서 곁을 지켜줬어요. 나중에 혹시 남편이 몸이 힘들어지면 제가 업고 다닐 거예요. 고마워서요.


예전에 축구가 어떤 의미냐고 물었을 때 ‘내가 숨 쉬는 이유’라고 대답했었어요. 그런데 은퇴를 하고도 제가 숨 쉬고 있어요. 가족은 그렇게 좋아하던 축구를 잊고 계속 살아가게 하는 이유입니다


보면서, 너무 마음이 편했고 둘의 대화 속에서 우리 부부의 모습도 비추었다. 서로를 향한 굳건한 믿음, 친구처럼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지켜주는 관계, 가족을 위해 어떤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는 용기와 노력. 사랑이 보답으로 기다리고 있는 희생.


자극적인 가족 예능이 많아서 채널을 돌릴 때가 많았는데. 이 가족의 이야기는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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