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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Jan 17. 2021

내가 비프 브루기뇽을 하다니

B를 위한 남자요리 23탄

스페인에 B와 함께 여행을 갔을 때 론다라는 지역을 간 적이 있다. 우리는 욕심을 부려서 저녁을 두 끼 먹자고 했었는데 빠에야 맛집과 소꼬리찜 맛집을 2시간 간격으로 방문했었다. 하지만 빠에야를 먹고 이미 배가 부른 우리는 그 맛있는-입에서 녹는 소꼬리찜을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심지어 B는 배탈까지 났었다. 나는 그게 두고두고 아쉬웠다.


요게 스페인 소꼬리찜. 살살 녹는다.


스페인 소꼬리찜은 아니지만-프랑스 가정식이라고 알려진 비프 브루기뇽을 알게 된 이후 그때 생각이 나서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재료의 핵심인 와인도 있겠다, B에게 이번 주말은 비프 브루기뇽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고나서 유튜브 레시피를 한 30개는 본 것 같다. B를 위한 남자요리 최대의 도전이자 B를 위한 남자고급요리 라고 할까.



그럼 시작해보자. 시작은 고기 준비다. 고기는 양지와 사태로 준비했다. 정육점에서 사태 450그램 정도를 샀는데 더 넉넉하면 좋을 것 같아서 마트에서 양지 500그램을 추가로 샀다. 왜 고기를 섞어 샀는지 묻지 말아달라. 잘 모른다. 실제 완성된 요리에서는 고기의 육질 차이가 있어서 먹는데 나쁘지 않았다. 고기를 샀다면 먼저 핏물부터 키친타월에 빼둔다. 약간의 소금 후추 간을 해두면 좋다.


그와 동시에 야채도 다듬어준다. 양파 1개 반, 양송이 한팩, 당근 1개. 사실상 야채는 원하는 데로 구성해도 될 듯. 찾아보다 보니 당근은 변하지 않은 핵심이고 양송이가 아니라도 다른 버섯류도 괜찮다고.


이제는 최종적으로 브루기뇽을 만들 냄비를 꺼낸다.  올리브유를 두르고 버터 조금과 간마늘을 넣어 볶다가 베이컨을 넣어준다. 참고로 이 요리는 버터 요리다. 앞으로 버터가 한참 들어가니 넉넉히 준비해둬야.



베이컨이 어느 정도 익으면 꺼내놓고 그 기름 위에 그대로 고기를 투하하자. 위에 쌓으면 맛을 제대로 못 담는다고 한다. 겉만 살짝 익혀서 육즙을 가두는

작업. 두 번에 걸쳐서 했다. 고기도 익었으면 꺼내 두자.


고기를 꺼낸 냄비를 보면 바닥에 기름과 소스가 뒤섞어 불에 굳은 흔적들이 있다. 내가 찾아본 대다수의 유튜브 선생들은 다 이 작업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디글레이징. 바닥에 굳은 농축 소스를 박박 긁어서 요리에 잘 스며들도록 하는 작업이다. 냄비가 타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있는 듯. 아무튼 이 작업을 요리 내내 잘해야 한다.


이제 저 농축 소스를 그대로 양파와 당근 재료를 넣어 볶아준다.


어느 정도 숨이 죽으면 고기를 다시 투하하자. 베이컨도 같이 넣는다.


버터가 다시 들어간다. 두 큰 술 정도 넣었다. 레시피마다 다르던데 그냥 넣었다. 그리고 버터 넣은 만큼 밀가루도 두 스푼. 밀가루는 걸쭉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이라고. 집에는 통밀가루 밖에 없어서 그걸로 했다.


그리고 월계수 잎. 무슨 벌레처럼 생겼지만 잎이다. 엄마가 봉지채로 준 게 있어서 요긴하게 쓰고 있다. 잎 5개 정도 넣었다. (나중에 30분 정도 지나면 월계수는 꺼내는 게 좋다고 한다. 쓴 게 올라온다고)


https://coupa.ng/bPTili


그리고 이번 비프 브루기뇽의 핵심인 와인 두두둥장. 와인 양은 따로 안쟀다. 고기가 잠길 정도 넣었다. 콸콸. 어떤 유튜버는 이 비프 브루기뇽이 프랑스 브루고뉴 지방의 가정식 레시피라 그 지방의 포도주를 써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집에 있는 레드와인을 썼다. 단맛이 첨가된 건 안된다고 하더라.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디글레이징을 해주면서 이제 알코올이 날아갈 때까지 20분 정도 끓여준다.



그러는 사이에 추가로 들어갈 재료를 만들자. 버터 올린 불에 새송이버섯 투하. 약간 볶아준 뒤에 소금 후추 툭툭. 그리고 여기에 토마토 페이스트를 한 스푼 정도 넣고 와인으로 정리했다. 토마토 페이스트는 그냥 마트에 파는 소스로 넣었다. 원래 대부분의 레시피는 버터와 밀가루 넣는 시점에 고기 냄비에 넣는데 나는 토마토의 신맛을 날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따로 양송이버섯 쪽에 넣었다.



이것도 좀 고민이었는데 그냥 저질렀다. 바로 소고기 육수. 알코올이 날아가면 육수를 넣어주는데 정말 대다수의 레시피는 비프스톡 아니면 치킨스톡을 쓰더라. “육수가 좋지만 없으니까 이걸 쓰도록 할게요”라는데 육수를 어찌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마트에서 파는 소고기 육수 국물 천 원짜리 사서 두 컵 정도 넣었다.



그러고 나서 다 볶은 양송이버섯까지 투하. 마지막쯤에 넣으려고 했는데 내가 너무 서둘렀다.


그럼 이런 비주얼이 된다. 뭔가 이국적인, 우리나라에서 잘 못 맡아본 냄새가 난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큰 실수를 하게 되는데 뭔가 와인 국물이 다 졸여질 때까지 한도 끝도 없이 끓인 것이다.  어차피 마지막에 버터를 한 큰 술 넣어주면 완전 걸쭉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1시간 약불로 졸여주면 된다.



아 다시 보니 더 아쉽구나. 비프 브루기뇽이 아니라 장조림 브루기뇽이 되었다. 자아앙조오오림...


그 사이에 매시드 포테이토도 같이 했다. 삶은 감자에 버터와 소금 후추 우유를 넣고 쉐킷. 부드러운 매시드 포테이토와 같이 고기 한점 같이 먹으면 좋다.



사실 요 비프 브루기뇽도 뇽뇽인데 그것보다 맛있었던 건 남은 비프 브루기뇽에다 육수 조금 넣고 버터 추가해서 밥을 빠에야처럼 볶은 요리가 맛있었다. 추천추천.


나중에는 좀 더 재료를 간단하게 해서 다시 도전해보기로. B의 남자요리 도전은 망해도 계속된다.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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