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는 세상을 하나 만들었다

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by ASTR

H는 이번에 세상 하나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세상에는 몇 가지 큰 특징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1. 남녀 구분이 없다. 심지어 나이도 없다.

2. 랜덤으로 직업이 정해진다.

3. 누구와도 가족을 맺을 수 있었는데 가족이 많아질수록 세금 혜택이 주어진다.

4.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유흥거리는 숲 만들기다.

5. 강력범죄를 저지르면 아바타 리셋과 강력범죄를 역으로 당하는 시뮬레이션의 벌을 받는다.


2032년은 시뮬레이션의 해였다. H의 세상처럼 수많은 세상이 쏟아졌다. VR과 증강현실이 현실과 다르지 않게 발전했고 여러 확장팩이 출시되며 누구나 쉽게 메타버스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한동안 시뮬레이션의 메타버스를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로 보던 시장의 반응은 메테오 사의 CEO 마크 머스크의 등장으로 확연히 달라졌다. 그는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사람이었다. 비트코인 시스템을 제안한 사토시가 그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온 지구인은 그를 일종의 구루로 추종하기 시작했다.


그 해에 그는 메타버스 백서를 사토시의 이름으로 올린다. 메타버스 백서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메타버스의 시뮬레이션은 기술적으로 현실과 연계된다.

-메타버스의 생성 및 운용 기록은 블록체인에 기록되며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누구나 메타버스를 만들 수 있다.

-한번 만들어진 메타버스는 공공으로 환원되며 제작자일지라도 의도적으로 수정할 수 없다.

-메타버스 내의 화폐는 비트코인으로 한다.

-메타버스 내의 개인 미션의 활동이 공공의 이익과 연결 짓도록 설계하며 이는 생산활동과 연계된다.


곧, 메타버스를 누구나 만들 수 있고 그 안에서 살 수 있도록 했으며 그 안의 생산활동으로 현실에서도 살 수 있도록 제안한 것이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했으나 문제는 정치였다. 메타버스를 하나의 세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이 많았고 저소득 국가들부터 멀티버스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치권이 붐을 막기 힘들었다. 멀티버스는 대세가 되기 시작했고 어느새 일부 나라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메타버스에 소속된 블록체인 세금 시스템에 세금을 내기 시작했고 그 세상에 속한 법칙을 세상의 법칙으로 누리기 시작했다. 정치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누가 정치를 하려고 하겠는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구호가 무색해졌으니, 그저 세상을 만들 수 있었는데 말이다.


자연스레 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타버스가 있었고 사람들을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나건 다양한 메타버스가 등장했다. 시뮬레이션의 초기 조건을 한정 짓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불법적이거나 부도덕한 메타버스도 나타났다. 하지만 진짜 세상의 법칙처럼 일반 사람들은 이를 슬럼으로 치부하며 접근하지 않으려고 했다.


부모는 아이가 성인이 되면 자연스레 자신의 메타버스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했다. 부모와 같은 세상에 사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 나이 때 상상할 수 있는 파격적인 조건의 세상으로 향했다. 그중 일부는 자기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에서 살았다.


그렇게 첫 메타버스가 만들어지고 1년 뒤 371,021개의 세상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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