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자식의 연을 끊는 일상
"흠, 어디 보자. 그러니까 김향순 씨 아들이..."
"네, 이진성인데요."
"그래요. 이진성. 이진성이라고 적혀있네 여기."
얼굴에 맞지 않을 정도로 큰 안경을 쓴 사내는 서류 한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손에 침을 묻혀 뭉뚱 한 서류더미를 한 장 한 장 살펴본다. 가끔 안경이 흘러내려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올려 세운다. 머리에 버터라도 바른 듯 반듯반듯한 8:2 가르마가 신경 쓰이지만 향순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아주머니. 와, 아들 많이 갈아치우셨네요."
"네? 아.. 뭐 그렇죠.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네요."
"세 번째 아들이... 그러니까..."
"이진성이요. 이진성."
향순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한다. 공무원들이란.
"아들이랑 합의 보셨죠?"
"거기 밑에서 두 번째 서류요. 거기 있어요."
"아, 두 번째... 이여차! 여기 있네."
향순은 그런 공무원을 아니꼽게 바라본다. 아무리 행정의 절차라고는 하지만 충분히 귀찮은 일이다.
그 합의라는 이름의 내용이 담겨있는 서류를 곰곰이 살펴보고 있는 공무원을 바라보면서 향순은,
자신의 인생이 어느 정도는 실패했다고 느꼈다. 2030년 대한민국은 서로가 마음에 맞지 않거나 문제가 있을 경우 서로의 합의를 통해 부모와 자식의 연을 끊는 '절연'이 가능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모의 잘못된 자식 교육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정책으로 시작했다. 그 당시에 있었던 여성가족부에서 추진하던 정책이었다. 부모와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아이들이 존재하기에 결국에는 제대로 된 가족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많은 부모가 자신의 자식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두가.
많은 자식이 자신의 부모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두가.
그동안 숨겨왔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분출했고 전국 각지에 말 못 할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무조건 사랑에 대해 '과대평가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를 풀 수 있는 하나의 창구를 만들기로 결의한다. 그게 바로 '절연'이다.
"내, 너 족보에서 파버린다!"
라고 했던 말이 현실이 된 셈이다. 사랑을 속삭이던 부부가 법적으로 남남이 되는 '이혼'이 어느새 "그거, 할 수도 있지" 정도로 익숙해졌듯이 부모와 자식 간의 절연제도도 점점 위화감없이 받아들여졌다. 명시되어있는 명목 따위가 있었으니까.
향순은 그래서 부모가 둘이다. 처음 자신을 낳았던 부모가 하나, 다음이 두 번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어이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향순을 낳았던 부모는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젊은 은행원이었고 어머니는 대학원을 나온 커리어우먼이었다. 두 사람은, 사실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향순의 어머니는 "아이를 갖는 건 현실에 지옥문을 여는 것과 같아"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존중했고, 어느 정도 동감하는 바였다. 어쨌든 아이를 갖는다는 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니까.
술김에 관계한 다음 날, 향순의 어머니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임신했다는 걸.
"낳고 싶어?" 어머니가 물었다.
"물론."
향순을 그렇게 태어났다. 썩 유쾌하지 않은 탄생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핏덩이 같은 향순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향순은 본능적으로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알아챘다. 어머니는 "널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향순이 중학교에 진학했다. 나름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몸과 정신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깟 호르몬으로 인한 변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느 날과 같은 저녁식사. 대화는 없다. 적막한 분위기에 반찬은 어제와 같은 반찬. 밥그릇과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가득하다. 분위기를 깬 건 아버지였다.
"어머니와 이야기해봤다. 향순아."
"네."
"절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너를 자식으로 더 인정해 줄 수 있는 부모에게 널 보내는 게 도리에 맞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그 말을 하더니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향순의 눈에는 죄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이었는지, 흰 밥이었는지 입 안에 가득 들은 그것을 곱씹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정부는 향순에게 최적화된 가정 데이터를 제공했다. 그의 부모가 원한대로다. 향순을 더 잘 키울 수 있는 가정. 합의서류에 도장을 찍고 마침내 '절연'하게 된 날, 향순은 법적으로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어제와 다르게 새로운 동생이 생겼으며 새로운 집과 새로운 학교, 그리고 새로운 부모. 향순은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무래도 주변에 '절연'의 사례가 많았던 것도 큰 영향을 주었다. 향순에게 그런 고민을 늘어놓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사회가 그런 분위기였다.
가정에는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했고 또 '편입'되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버려지는 수모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자, 여기여기 도장 찍으시면 돼요."
8:2 가르마를 탄 공무원의 말대로 가르마 타듯 수월하게. 향순은 공무원이 시키는 대로 도장을 찍는다. 자신의 이름에 하나. 진성이 이름에 하나. 진성의 이름에 빨간 도장밥이 덧칠해진다. 문득 진성과 만났던 첫날이 기억난다. 아니, 그 기억이 진성을 만났던 기억인지 자신이 두 번째 부모를 만났던 기억인지 잘 모르겠다. 분간할 수 없겠지. 그게 그거겠지.
진성의 얼굴을 떠올리며, 넌 나보다 더 좋은 부모를 만나야 돼 라고 중얼거린다.
"네? 뭐라고요?"
역겨운 얼굴의 공무원이 묻는다. 너에게 말한 거 아니니까 신경 꺼. 향순은 이 동사무소를 나간 뒤에 자신의 계획을 생각해본다. 진성과의 마지막 식사.
그리고 말하겠지.
"진성아. 너를 자식으로 더 인정해 줄 수 있는 부모에게 널 보내는 게 도리에 맞다고 생각한다"
진성의 표정은 예상이 된다. 하지만 알겠지. 너도 부모가 되면 내 마음 알 거다.
다음은 이제 어느 가족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을 장바구니에 넣고 고를 차례이다. 네 번째 아이. 이번에는 딸이 좋겠다. 향순은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