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청사 침투계획서
- 정부청사가 뚫렸습니다. 북한의 위협 속에 속수무책으로 뚫린 보안이라 시민들의 충격이 더 큰데요. 범인은 7급 공무원 지망생 이모씨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이씨가 어떻게 정부청사 인사처로 침입할 수 있었는지 경위를 파악하는 한편, 국가 중요시설에 대한 보안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고소영 기자였습니다.
"좆까네 씨발"
평소 형님으로 모시던 E 형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욕을 내뱉는다. 막창 굽는 냄새가 그득하다. 테레비는 보안이 뚫렸다는 정부청사의 조감도를 띄어준다. 삐까뻔쩍하네 아주. 밑으로 붉은 바탕 쓱쓱 쓴 글자들이 아프도록 자극적이다.
"형. 저거 해외토픽에 나올만하지 않아요? 한편으로는 진짜 대단한거 같아.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저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나보지. 저런 좆같이 천재적인 생각... 아니지. 그걸 실행할 수 있다는게 더 좆같다."
E형은 주당이였다. 20대 때는 다섯병이 거뜬했다. 물론 지금은 2병이 한계지만. 술을 마실 땐 항상 날 불렀다. 그때마다 잔을 남기는 걸 본 적이 없다. 따르면 마셨다. E형의 술 철학은 '잊는 것'이었다. 잊어버리는 것. 그런게 많은 날은, 어느새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또르르.
"야, 너 공무원 생각해본 적 있냐?"
소주 한잔 원샷.
"공무원이요? 생각해본 적 있죠. 공무원... 원래 대학 가기 전에는 안정적인게 좋아서 공무원으로 진로를 잡고 과도 그렇게 갔어요. 형, 알잖아요 그때 제가 상담한거. 그런거도 있었고... 암튼 고민이 많아서 지금 하는 일을 하게 됐는데..."
"됐는데?"
"그냥 공무원 할걸 그랬나 후회할 때도 가끔 있어요."
멋쩍게 웃었다. 정말 멋없는 웃음.
"그러냐."
E형은 막창 다섯개를 한꺼번에 집어다 밥을 올리고 반찬을 올린다. 쌈을 싼다.
입 안에 가득 부여넣고, 씹는다. 그 입 안에 든 많은 것들, 한번에 넘어가지 않는 것들을 잘게 부시고 씹는다. 그래도 목청의 힘이 있으니 넘어갈 수 있겠지. 운이 나쁘다면 질식하겠지만.
E형은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입 안의 것들을 씹어댔다. 누가 이기나 겨루듯이.
"해외토픽 감이지만..."
E형이 간신히 쌈을 넘긴 후에 숨을 고르며 말한다.
"네?"
"아까 그 뉴스 말이야. 그 정부청사 침입했다는 새끼. 내 친구야."
"진짜요?"
"그래. 명진고 42회"
E형이 술잔을 내려놓고, 그 불판 위에 타고 있는 막창을 바라보는 -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래, 오늘은 끝까지 가는 날이다.
"넌 해외토픽 걔가 어떤 얘로 보이냐. 테레비 나와서 포승줄 묶여서... 진짜 이름도 아니고 이모씨고, 7급 공무원 지망생으로 불리고 있는 저 녀석말이야."
"저야 뭐... 형님 친구분이라니까 갑자기 좀 궁금해지네요."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테두리 안에 있는 자와 벗어나는 자. 살면서 어느 시기이든지 자의든 타의이든 어떤 테두리 안에 갇혀 살아간다. 프레임 말이야.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테두리를 느끼지도 못하지. 그중의 아주 일부, 아주 극소수만 그걸 격파해. 격파. 깨버리는거야. 테두리 밖의 세상을 한번 경험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그 사람을 다신 어떤 테두리도 가두지 못해."
"그럼 그 형님 친구 분은..."
"이야기 끝까지 들어봐.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 새끼 쉴드하려고 그러는게 아냐. 아마 지금은 경찰 쪽도 가지고 있겠지만... 그 녀석이 체포된 날, 나한테 준파일 하나가 있어."
"파일이요? 무슨 파일?"
"아침에 출근해서 메일을 봤는데 그 녀석한테 메일이 온거야. 진짜 오랜만에. 메일 보고 엄청 반가웠지. 근데 메일 제목이 좀 이상했어. 처음에는 스팸인줄 알았으니까."
E형은 잠시 말을 멈추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메일을 열어봤지. 근데 아무 내용이 없더라고. 첨부파일 달랑 하나 있는거야. 메일 제목이랑 동일한 이름의 파일."
"좀 오싹한데요? 파일 이름이 뭔데요?"
"정부청사 침투계획서."
E형은 농담을 싫어한다. 워낙 쓸데없이 진지하기도 했고. 아주 가끔 재미없는 농담을 던질때는 그의 표정을 보면 안다. 농담인지 아닌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농담이 아니다. 정부청사 침투 계획서라니. 그건 범죄잖아.
"그 녀석... 원래 장난을 잘 쳤었어. 왜 반에 꼭 그런 얘들 있잖아.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장난 치는 얘들. 자기 성적표 위조하는건 기본이고, 선생님 속여먹어서 땡땡이치고... 그런 녀석으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지하게 생각안했어. 이것도 장난이고... 이 녀석 하나도 안변했구나 그랬지. 핸드폰에 이름 쳐보니까 전화번호 나오더라. 왜 연락이 끊겼지 뭐 그런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었어. 전화를... 걸었는데 얘가 안받아. 바빠서 그런가보다 했지. 그런데 조금 있다가 전화 한통이 왔어. 다른 고등학교 동창 얘한테. 첫마디가 뭐였는줄 알아? 지금 테레비 보라고."
E형이 말한 그 테레비는 내가 아까 본 그 테레비였다. 예전에는 친했지만 소원해진지 오래된 그 친구가 '이모씨'로 등장하고 정부청시 침입 범죄의 장본인이 됐으며 범행 동기는 7급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라고 말하는 바로 그 테레비 말이다.
"테레비를 보는데...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뭔지 알아? 진짜 웃긴게 뭐냐면, 이 새끼 걱정이 아니였어. 얘가 범죄를 저질러서 감방 가게 생겼는데 그게 걱정되는게 아니라 나한테 준 파일이 먼저 떠오르더라. 좆됐다 싶은거야. 이 새끼가 나 좆되라고 나 공범으로 만드려고 이 파일을 보냈구나 싶은거지."
"저라도 그런 생각 들것 같은데요."
"그래. 누구나 그러겠지. 아마 누구라도 그럴거야. 아무리 친했어도 말이야. 내가 먼저 살고 봐야 하는 세상 아니겠어? 그런... 세상이니까."
소주 한잔을 더 들이킨다.
"아무튼 그날 하루종일 손에 안잡히고 그러더라. 너는 그런 적 있냐. 없을걸. 살면서 그런 경험 하는 사람 많지 않을거다. 갑자기 일상이 바뀌는 경험. 방금 전까지 평범했는데. 순식간에 스릴러가 된거야. 나는 억울하게 음모에 휘말리고. 뭔가 되돌릴 수 없는 무언가를, 건드리고 난 뒤 드러운 기분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뭘 어쩌냐. 나한텐 선택지가 없어. 그 녀석이 던져준 상황 밖에 없는거야. 그게 정말 좆같은거지."
E형 앞에서 술을 같이 기울이고 있는데, 그 사이에 어떤 벽이 있는 듯 느껴졌다. E형은 이미 감옥에 갇혀있었다. 내가 면회를 가서 그 벽을 사이로 그에게 말을 하는 듯,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난 E형의 상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지 못하는 걸 안도하고 있었는지도.
"형님은 잘못한게 없잖아요. 아마 경찰 쪽이 알아도..."
"나도 그 생각 안한게 아니야. 난 이야기를 끄는 스타일이 아니니까 결론만 이야기할게. 경찰서를 갔다왔어. 그 녀석이 있는 곳 말이야. 안그래도 내가 소환 대상이더라고. 내가 알아서 출두하니까 신기해하더라. 가서 물어보는것들 대답해주고 그러고 몇시간 만에 돌아왔어."
"다행이네요! 그럼 끝난거죠?"
"아니, 그게 아니야. 괜찮지가 않아. 그 녀석 얼굴을 봤거든."
얼굴을 봤거든, 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떨군다. 어금니를 꽉 문 목소리로 말한다.
"사실 올해 3월 쯤에 그 녀석한테 한번 연락을 받았었어. 지가 공무원에 합격했대. 7급. 아니 요즘 7급 되기가 쉽나? 건너건너서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굉장히 오랜만에... 연락을 받은거지. 축하한다고 호들갑을 떨었지. 반가웠어. 진심으로 말이야. 밥이나 같이 먹자, 고 그랬고 그 녀석도 그러자고 했어. 그런데... 그게 끝이였어 그 뒤로 연락한 적이 없었어."
"그럼 그때부터 뭔가를 꾸미고 있었나봐요?"
"꾸민건지 어쩐지 내가 알 수는 없지. 알고보니까 나한테만 전화를 한게 아니더라고. 7급 공무원 됐다고 여기저기에 전화를 했어. 아마 우리 동창 중에 그 녀석 전화를 안 받은 사람이 없을거야."
"아니, 거짓으로... 그러니까 몰래 정부청사 인사처 들어가서 자기 이름 합격 명단에 올리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가 합격했다고 알린 거에요? 왜 그랬대요?"
"낸들 아냐. 그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경찰도 몰라. 그 녀석이... 그렇게 부모와 친구들, 선생님들 다 속이고나서 몇달뒤에 그렇게 일을 친거야. 나한테 줬던 계획 그거 만들고, 디데이 짜서 치밀하게 말이야..."
E형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아까 먹었던 막창이 다시 막히는 듯이.
"경찰서에서 그 녀석 얼굴을 봤는데... 야, 난 그 녀석이 공무원 합격해서 잘 살고 있을 줄 알았거든? 7급이 어디 쉽냐고! 난 자랑스러웠어. 그런데 그 녀석 얼굴을 보니까... 또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냐. 왜 나한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냐. 미친짓 해서 좆된건 자기인데... 그런 녀석을 보니까... 왜 그랬냐고, 왜 그런 미친짓을 했나고 차마 물어보질 못하겠더라고..."
E형이 우는 건 처음 봤다. 이건 약간 악에 받친 것이었다.
"그 녀석 8년만이였어. 공무원 준비한다고 한지가. 매번 떨어졌고... 떨어질때마다 할 수 있는게 없다는게 외로웠겠지. 그러다 올해 합격자 발표날, 걔네 어머니가 물어봤어. 결과가 어떻게 나왔냐고. 친구는 말했지. 엄마, 올해는 됐어요. 합격했어요 라고. 그게 시작이야. 그 녀석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사건의 좆같이 사소한 시작. 생각해보면... 그 녀석은 그냥 실패의 테두리를 깨버리고 싶었던 뿐이었던 것 같아. 자신을 옭죄고 숨막히게 하는 것들. 그것들 대신 보고 싶었겠지. 절실히. 어머니가 기뻐하는 것들, 친구들에게 받는 축하, 그동안 혼자 견뎌내야 했던 외로운 싸움을 자기가 먼저 끝장을 낸거야. 그 녀석은...그랬던거야."
그날은 취하는 날이였다. E형은 잔뜩 취해 계속 그 친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고. 그런 E형의 이야기를 들어두는 나로서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지어낸 이야기인디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정말 지어낸 이야기 같은 정부청사 침투가 현실로 나타난 마당에 E형이 겪은 이야기는 훨씬 현실성이 있었다.
아, 6년의 공무원 준비 끝에 저지른 범죄가 공무원 합격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리는 것이라니. E형이 술을 따르며 나에게 건배사를 권했다.
"야, 이 좆같은 세상!"
해외토픽에 잘 어울리는 건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