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EE YOU

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by ASTR

“대박. 이번에 새로 나온 필터 봤어?”

시야 한쪽에 팝업이 뜬다. D가 말을 걸었다.

“뭔데.”

“팔을 여섯 개로 만들어준대. 아수라처럼 말이야”

“그런 걸 사는 사람이 있어?”

“그게 나야. 당장 사야지 이런 건”

“야, 그런 필터에 쓴 돈 다 모았으면...”

“그런 가정은 필요가 없어요. 지금은 비주얼이 중요한 시대라고. 너도 좀 꾸미고 살아라”

“난 생각 없네요. 너나 철 좀 들어라”


팝업이 꺼진다. 그대로 침대에 풀썩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필터. 그게 언제부터 이렇게 인기였지. 직접 사람을 만나고 직접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손을 잡고 눈빛을 나누던 그런 때가 몇 년 전인데. 마치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고 모두가 아이폰을 들게 된 풍경을 창조한 것처럼 이것도 그랬다.


가상 몰입 증강현실.

이제 사람들은 머리에 다 무언가를 쓰고 다닌다. 지하철에서도 모두 꼿꼿이 앉아서 무언가를 보고 있다. 이 디바이스는 안구의 운동으로 조작되는데, 예전에 발명된 안구 마우스가 발전한 형태다. 근위축증으로 고통받았던 위대한 선구자 스티븐 호킹이 써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저 눈 앞에 뜬 여러 팝업들-프로그램들을 눈으로 보고 이동시키고 눈을 깜박거리면서 조작한다. 내가 길을 걸어가면 그 길에 대한 정보가 자동으로 팝업 된다. 물론 광고도 뜨고 - 광고 차단기 프로그램도 인기다. 그중에서도 사람에 대한 것이 압권인데...


“너 H 맞지?”

그런 여러 상념 가운데 한 팝업이 나를 깨웠다. 누구지? 낯선 여자다.


그녀는 고양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인간과 교묘하게 섞인 고양이. 2018년에 개봉해 혹평을 받고 막을 내린 뮤지컬 영화 ‘캣츠’에 나오는 고양이 같이.


“누구세요?”

“나야. J. 대학 게임 동아리”


J.

생각났다. 지금은 추억이 된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대학 동아리도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름 일으켜 세워보려고 했지만 대면 수업이 모두 종친 그때 - 아무도 동아리 활동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무언가를 상실한 인간이 어떤 가면을 쓰기 시작한 게 그때가 본격적인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J는 동아리에 남은 유일한 구성원이었다. 동아리장으로서 J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동아리 왜 계속 해?”

“뭐 그런 걸 물어보냐”

“아니, 다들 도망갔는데. 너는 남아있으니까.”

“별 이유 없어. 그러는 너는?”

“나는... 뭐... 별 이유 없네”

“나랑 똑같네”

라고 하면서 깔깔 웃던 그녀가 떠올랐다. 별로 웃긴 대화도 아니었는데 자지러지게 웃어서 더욱 기억이 난다. 이유 없이 다니던 동아리, 그렇게 생긴 기억.


“잘 지내?”

그런 J가 연락을 했다. 10년이 지났는데. 잘 지내긴, 시대에 뒤처져 살고 있다, 고 대답했다.

“그러게. 필터도 기본 필터네.”

“그러는 너는 어디 무료 필터라도 받은 거야?”

“정곡을 찌르네. 필터 값이 비싸잖아. 어디 아줌마가 돈이 있다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수다 꽃을 피웠다. 추억에 잔뜩 빠져가지고 그때가 좋았다-로 귀결되곤 했다. 지금은 사람 얼굴 보며 만나기가 그렇게 낯선 일이 되었다. 모두 필터를 뒤집어쓰고 있다. 이제 화장도, 패션도, 성형도 필요 없는 시대가 됐다. 필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디바이스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필터만 설정해두면 나의 본모습 대신 필터가 적용된 나만 보이게 된다. 그게 제임스 본드든, 존 스노우든, 관우든, 손오공이든, 해리포터든, 배트맨이든 상관없다. 커스텀을 통해 이 세상 속에 존재하지 않는 미녀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사실상 길가에 보이는 모든 여자들이 이런 미녀인 시대다. 본인이 락(Lock)을 풀지 않는 이상 타인들에게는 자신의 본모습이 절대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또 하나의 얼굴, 디지털 페이스가 생긴 셈이다.


“우리 한번 만나볼래?”

“그럴까? 만나서 이야기해도 좋지”

“아니. 그냥 말이야. 맨 얼굴로”

J가 툭 던졌다. 맨 얼굴로? 필터 없이?

내 필터는 보잘것없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보정 - 피부톤과 눈 크기, 원형 탈모를 가려주고 키를 좀 더 크게 해주는 - 정도였다. 그럼에도,


필터 락을 해제하는 건 - 곧 내 그대로를 보여주는 건 두려웠다.


“해제해 본 지 얼마나 됐어?”

“글쎄. 세보진 않았는데. 5년쯤 됐나”

5년. 그 정도 된 것 같다. 오래됐네.

“까짓꺼 한번 꺼보는 거지. 나 너 어떻게 늙었는지 보고 싶단 말이야”

“늙은 걸 뭘 보고 싶다고. 아름다울 건 없어”

“야, 사람은 다 아름다운 거야. 젊음도, 늙음도, 주름도, 또 그렇게 시간 가면서 생기는 사람들 간의 추억도”

J는 그렇게 말하고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알았어. 약속 잡아”

“이번 주! 우리 자주 가던 거기서 봐”

우리 자주 가던 거기란, 게임장이다. 막 가상현실이 나오던 때, 게임장에서 우리는 게임 동아리라는 명분을 삼아 그곳에서 살았었다. 그 안에 있으면 현실에서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반대로 갇힌 느낌이지만. 그런 추억을 되살리기엔 좋은 장소다. 알았어. 갈게.라고 말한 뒤, 조용히 디바이스를 벗어본다. 얼마나 오래 썼으면 얼굴이 디바이스 모양에 맞게 변형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게 미래인인가.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나조차 낯설다.


“안녕”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J에게도 이 몰골로 말을 걸 연습을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