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 소개팅

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by ASTR

소개팅 시간은 60분이었다. 평택에서 서울까지. 비가 오거나 차가 막히면 보너스 시간이 10분 가량 주어졌다. 시간이 주어져도 소용없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지만.


M은 사실 소개팅에 관심이 없었다. 원래 노선버스의 정거장이 늘어나면서 집에 도착 시작이 늦어졌다. 시간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M이다. 웃돈을 좀 더 주더라도 이 ‘프리미엄 소개팅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앱을 깔고 한 달 이용권을 할인권을 이용해 싸게 구매했다. 한 주에 몇 번은 집에 가니까 계산해보면 괜찮은 구매였다. M은 타자마자 상대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잠이나 잘 요량이었다.


저녁 7시에 고속버스 터미널 한쪽에 마련된 소개팅 전용 버스 승강장으로 갔다. 버스 외관은 보통과 다를 바 없었다. 크게 소개팅 버스 써놓을 줄 알았는데 그러면 될 손님도 떨어져 나갈걸 알았던 거겠지. M은 씁쓸하게 웃는다. 좌석은 16번. 창가석이다.


좌석에 앉고 한참이 지나도 동석자가 오지 않는다. 아무도 안 오는 건가. M은 기분이 좋아졌다. 옆자리까지 편하게 자세를 옮겨야지. 차가 출발하기 1분 전, 헐레벌떡 한 사람이 올라탄다. 운전기사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하면서 표와 자리 번호를 번갈아서 본다. M은 속으로 제발 15번은 아니여라 아니여라 주문을 외운다.


“15번!”

그녀는 M의 동승자였다. 살짝 웃고, 눈으로 인사. 작은 클러치백을 무릎에 올려놓고 M의 옆에 앉는다.


그녀가 옆에 앉자 샴푸 냄새가 확 난다. M은 그래도 그녀를 쳐다보지 못했다. 아마 곱슬에 긴 머리를 바로 감고 온 듯 했다. 이 늦은 시간에 단장을 하고 어디를 가는 걸까.


“안녕하세요.”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평택 사시나 봐요.”

“아니요. 서울 사는데 평택이 직장이에요. 지금 집에 가는 중이거든요.”

“아, 저도 같아요!”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는 적극적이었다. 더 미안해지기 전에 M은 마음을 빨리 이야기하기로 했다.


“저기, 죄송한데”

“와 진짜 신기하다”

그녀가 갑자기 말을 끊고 신기하다고 고개를 돌려 M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M은 그녀의 눈빛에 당황한다.

“네? 뭐가요?”

“아니, 이거 소개팅이요. 앱에 이상형 적은 거 있는데 진짜 비슷하세요. 짧은 머리, 짙은 눈썹, 안경은 안 썼으면 좋겠고 대신 속눈썹이 길었으면 좋겠다고 적었죠. 어떻게 이렇게 매칭이 되네요.”


앱에 적은 내용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최적의 파트너를 매칭 해준다고 듣긴 했다.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들으니 M은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건 겉모습, 첫인상에 대한 것일 뿐. 그러고 보니 M은 자신이 앱에 뭐라고 입력했는지를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랜덤을 선택했던 것 같다. 누가 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정말 신기하네요. 저도 그렇거든요”

저는 랜덤으로 했다고 말할 타이밍은 아니다. 칭찬받은 입장에서 그녀도 어느 정도 보답을 받아야 하니까.


그녀를 살짝 살펴보니 - 고속버스의 특성상 마주 보고 하는 소개팅과 다르게 서로의 옆모습 정도 돌려볼 수 있다 - 긴 곱슬머리에 태닝한 것 같은 피부톤, 안경을 썼고 그 안경 안에 눈이 반짝반짝하다. M은 그런 그녀를 잠시 신기하게 보다 곧 흥미가 떨어졌다. 이제 잘 시간이다.


개념 없는 소개팅 남이 되더라도, 목적이 없으니 할 이유도 없다. M은 눈을 감는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그녀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번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다시 한번 본인은 소개팅에 관심 없다고 박아두자. 눈을 뜨고 옆을 살짝 보았다. M은 눈을 껌벅이고 다시 그녀를 보게 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안대를 쓰고 아예 잠에 들어버린 것이다.


건너편 자리를 슬쩍 훔쳐보니 벌써 번호를 교환하고 있다. 대단들 하다. 다들 속삭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참도 잘 이야기하네, M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연애를 안 한지도 8년째다. 어느새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됐고,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모른다. 여자는,


“제가 너무 잠만 잤나요?”

15번 여자가 안대를 올리고 말한다. 순간 머리띠처럼 되어있는 안대가 귀엽다고 느꼈다.


“아니요. 많이 피곤하시죠.”

“원래 저 버스만 타면 자동으로 잠들거든요. 머리만 기대면 잠이 쏟아져서... 내릴 데 놓친 적도 많아요.”

“저도 그래요. 타고 가는 건, 다른 말로 자면서 가는 거죠.”

“저랑 비슷하시네요. 좋아하시는 건 뭐예요? 취미 같은 거.”

“취미요? 흠. 특별한 건 없는데.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저도 영화관 가는 거 좋아해요. 이번에 라이온킹 보셨어요?”

“당연히 봤죠. 개봉날에. 제가 라이온킹 세대거든요. 근데 좀 실망했어요. 너무...”

“완전 자연 다큐멘터리 같죠!”

“제 말이 그거예요.”


15번 여자는 엉뚱했다. M은 어느새 웃으며 그녀와 대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속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말하면 할수록 통하는 게 있다고 느껴졌다. 통하는 것이란 척하면 척하는 것이다. 다른 부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미 그들의 삶 속에 경험되어 있어서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M은 자세를 고쳐 앉고 그녀 쪽으로 향했다. 잠은, 이제 오지 않는다.


“한 시간 안에 번호를 주고받아야 하는 거죠 이거?”

여자가 말했다.

“네, 도착하기 전까지.”

“기획한 사람이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그렇죠.”

“네, 그러게요.”

M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서비스 따위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번호가 필요했다.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15번이 아니라 그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


“번호... 혹시”

M은 용기를 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8년 전에 잠깐 사귄 친구도 용기가 없어서 헤어졌다. 그리고 쭉 용기가 없어서 여자친구가 없었다. 단지, 필요가 없다고 이해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그런 그에게 무언가를 꺼내 준다.

“그전에 이거 먼저 해주세요.”

“이게 뭐죠?”


그녀가 가방 속에서 꺼낸 건 태블릿 PC였다. 올해 나온 최신 모델이다. 호화스럽게 펜도 달려있다. M이 들고 보니 화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서비스 이용자 만족도 설문 조사


“서비스 이용자 분 중에 랜덤으로 한분 선정해서 이렇게 설문 조사를 하고 있어요. 저는 파견 나온 본사 직원이고요. 당황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해요. 최대한 진정성 있는 반응이 필요하거든요. 이번 피드백의 사례로 서비스 이용권 1년권을 드릴 예정이에요. 어때요, 좋으시죠?”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한 5초 정도. 그리고 M은 웃음이 마구 나왔다. 다른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그를 쳐다볼 정도로.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M도 이유를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