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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May 12. 2016

범죄 심리에 관한 연구 : A군 토막살인사건

이토록 평범한 악이라니

-딸깍


2016년 5월 1일 13시 녹취

토막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A군의 면담 정식 요청. 언론 인터뷰에 꼭 면담해보고 싶은 케이스라고 언급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범인은 경찰 쪽의 인도를 받아 오늘 중으로 현장 검증을 할 것이다. 그 이후 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쪽에서 기소에 앞서 심리 면담을 정식 검토하고 주선하기로 했다.


2016년 5월 1일 15시

A군에 대한 살인 현장 검증이 시작되었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다. 알려져있던 살인수법을 재확인했다. A군은 양손이 묶인채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동네 주민들이 굳이 그런 A군을 보러왔다. 몇몇은 소리를 지른다. 실제로 A군이 살던 원룸촌은 땅값이 크게 내려갔다.


2016년 5월 1일 18시

A군의 현장 검증이 끝났다. A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모두 인정했다. 경찰은 수법이 잔혹하다는 점과 범인이 확실하다는 점, 청소년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체포 1시간 만에 A군의 얼굴을 공개했다. 현장 검증을 마치고 차에 올라타는 그의 얼굴이 보인다. 땅으로 떨군 눈. 굳게 다문 입.


2016년 5월 1일 20시 35분

A군과의 면담을 기다렸으나 오늘은 힘들다는 검찰의 통보를 받았다. A군의 심리가 불안해 올바른 수치를 얻을 수 없을 거라는게 경찰의 설명. 과연 그럴까. 정식 면담 날짜는 내일 모레, 3일날 진행하기로 했다.


2016년 5월 2일 18시

A군 기사를 뒤적이던 중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옛 직장동료가 그의 호송 장면을 본 뒤 "웃고 있는 것"이라고 증언. 그리고 그 직장이란 성인영화 제작업체. A군은 잠깐 이 업체의 배우 캐스팅 일을 맡았다고 한다. 웃고 있었다라. 절대 웃고 있는 얼굴이 아닌데. 지인만 알 수 있는 그만의 감정 표현이 있는 것일까.


2016년 5월 2일 25시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는다.


2016년 5월 3일 10시

비공개로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난다긴다하는 프로파일러와 범죄심리전문가가 5명 모였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이후 처음이다. 검찰은 사건이 잔혹하고 빼도박도 못하게 범인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처리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마침 오늘 아침 'A군 검거의 일등공신, 한국의 과학수사'라는 기사가 떴다.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유능함을 확실히 입증하려는 듯 보인다. A군의 범행 동기 따위는 관심 없겠지. 하지만 키는 나에게 있다. A군의 신상이 뿌려지고 가장 많이 받은 리액션은 '퀘스천 마크'이다. 이토록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잔혹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냐는 것이다. 언론은 여기에 대답해 줄 수 없다. 고작해야 A군이 애견샵에서 일했다는 것, 페이스북에 올린 평범한 일상, 꿈이나 목표 따위들, 전 여자친구에게 사기를 쳐서 그게 유일한 전과가 된 것, 심지어 영화 채널을 즐겨본다는 걸 알려줄 뿐. 뒤지고 뒤져서 탈탈 털어내지만, 그의 평범함이 더 드러나고 의문은 그대로다. 사람을 반토막 내서 유기한 그 행동이 대체 어떻게 이런 평범한 일상에서 뛰쳐나온다는 것인가. 느닷없이 말이다. 이 의문을 해결해야 한다. 그를 만나기만 하면 된다.


2016년 5월 3일 15시

A군 면담을 시작한다. 대학원 선배였던 C교수가 먼저 시작한다. 우리는 밖에서 면담을 지켜본다. 물론 안에서는 우릴 볼 수 없다. C교수가 A군에게 간단한 신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긴장을 풀고 있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킨다.


2016년 5월 3일 17시

두 시간에 걸친 C선배의 면담이 끝났다. 문을 열고 나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지하 밀폐된 공간인데도 어디선가 빗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2016년 5월 3일 17시 10분

C교수의 설명을 들었다. 범행 동기에 대해, 언론에 드러난 그의 자백 말고 진짜 '왜 그가 살인을 저지르게 됐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아직 답을 하기 이르다고 한다. 이런 유형을 아직 본 적이 없다고.


진 것이다. A군과의 싸움에서. 동기 없는, 이유 없는 범행은 없다. 방아쇠를 당겨야 총알이 날아간다. 우리는 그 손가락을 찾아야 한다. 왜 그랬는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최소한 지금 웃고 있는건지 아닌지를 아는게 범죄심리학자 아닌가. 최소한 말이다.


2016년 5월 3일 17시 30분

내가 들어갈 차례다. 갑자기 현장에서 찍어온 토막난 시체 사진이 떠올랐다.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2016년 5월 3일 17시 45분

A군은 나를 기다렸다는듯이 지긋히 바라본다. 지금은 웃고 있는 얼굴일까, 아닐까.


2016년 5월 3일 21시

모든 전문가 면담이 끝났다. 내일 아침까지 검찰에게 전달할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나를 제외한 4명의 전문가들의 의견은 같았다. 사이코패스도 아니며 소시오패스도 아니다. 이제까지 나온 어떤 살인자 유형에도 맞지 않는 존재, 라고 말이다.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도망치지 않은

점. 그 뒤 태연하게 일상으로 돌아간 것. 절대 자신이 잡히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건 그가 공감 능력이 결여됐거나 경계성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보통의 사람에게 있을 수 없는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였다.


그는 평범했다. 소름끼치도록.


2016년 5월 3일 24시

4명의 전문가 외에 나는 다른 결론의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지금 막 초고를 완성했다. 가제는 이렇다.


"인간 본연의 살인 본능 발현과 그 동기에 관한 연구 : A군 살인 케이스를 중심으로"


2016년 5월 6일 14시

검찰은 전문가 집단이 작성한 보고서를 채택해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골자는 동기는 전형적이지 않지만 살인은 전형적이란 것. 검찰이 좋아하는 모호한 결론이다.


A군이 같이 살던 이웃을 '부모님을 욕했다는 이유'로 살해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떤 암묵적인 안전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A군 내부의 안전장치. 그걸 골자로 심리 보고서를 썼고, 과격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제출한 심리보고서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 그건 단지 하나의 성향을 설명하는 카테고리일뿐. 특정 동기가 살인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특정 유전자도, 특정 환경도. 말하자면 누구나 잠재적인 살인자다.


단지 우리에게 그 격발장치가 발사되지 않은 것뿐. A군의 경우, 적절한 때 적절한 격발장치 - 어머니에 대한 모욕 - 가 총알을 발사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격발장치는 개개인마다 다르고 또 그 자신도 어떤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게 만들지 알 수 없다. 누구나 이 방아쇠를 당기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안전장치이고, 안전장치가 바로 사회적인 구조의 역할이다.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 이 결론을 검찰이 받아들일리가 없다. 당연하다. 검찰의 개인의 악을 증명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A군을 만나고 나니, 이토록 평범한 악을 만나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총이다.

그리고 안전장치가 없는 총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확실한 사실이다.


2016년 5월 31일

A군의 첫 재판이 열렸다. 수인복을 입고 앞에 앉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판사가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당부 사항을 이야기하던 중에 A군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는데, 그대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그가 웃고 있었는지 아닌지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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