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진으로부터
"그건 피아노 치면서 생긴 버릇이야?"
친구가 물었다. 아니. 무릎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건 다른 사람들이 가진 버릇이랑 똑같아. 불안해서지. 무대 위, 피아노 앞, 청중들이 보는 그 순간을 매번 떠올려. 음을 조율하는 것만큼 그 음을 남들에게 원하는대로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니까.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을 두번 튕겼다. 손가락 근육과 뼈가 소리를 만든다. 보이지 않는 공기 사이 피아노 건반이 내려치고, 지레의 원리에 따라 면양의 털로 만든 망치가 현을 두드린다. 눈과 귀, 그러니까 머리 한 가운데에 정확한 피아노음이 들린다. 넌 들리지 않아?
"난 피아노 못 치니까. 실제로 들어도 음도 구분 못하는걸"
마치 하나의 생명처럼 움직이는 손가락을 보며 친구는 무척이나 신기한 표정을 짓는다. 그 손가락이 내 무릎 피아노 위에서 무음의 소리를 만들어내고, 또 듣는다는 것도. 이것저것 물어보는 그 앞에서 청중 앞에 선 '피날레 피아니스트'를 떠올린다. 역시 사람의 목소리보다 건반의 선율이 아름답다. 친구의 목소리를 덮는다. 피아노 소리만 들린다.
콩쿨 무대에 오르기 전, 이미지 트레이닝을 수도 없이 했다. 불안이라니까, 긴장 같은 건 아니야. 그게 같은 거 아니냐고 묻는 친구에게 대꾸 대신 그냥 어깨를 툭 두드려줬다. 나 이제 올라가야 해. 친구가 화이팅, 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미 피아노가 연주되고 있었기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박수 소리가 들리고, 무대 한 가운데 스팟라이트 그리고 피아노. 아프리카 초원 위에 물소를 노리는 사자처럼 그 까만 덩치를 탐색한다. 하얗게 드러낸 이빨들, 정복해야 할 살덩이. 첫 손가락은 중지다. 사냥 연주를 시작한다.
달린다. 눈을 감고. 숨을 내리쉰다. 빠르다. 때론 놓친다. 상상과 다를 때도 있다. 손가락 근육이 폭발한다. 열 손가락, 팔, 어깨, 가슴부터 배. 까만 덩치를 잡으려면 음을 쏟아내야 한다. 집중. 하나 둘 아니 다시 하나, 둘. 숨을 내리쉬고 다시. 몇번이나.
그렇게도 귓가에 울리던 피아노 소리가, 연주를 시작한 뒤로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연주하고 있는 건 피아노 건반이 아니라 일종의 집념이었다. 잡고 말겠다는, 늘 쫓기는 입장이었던 손가락의 승부였다.
어느 순간, 손가락이 미친 듯 춤추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오십개 백개가 되었다. 피아노는 손과 팔 몸을 집어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그 앞에서 손가락 춤을 춘다. 육체의 한계와 영감의 도전이 부딪히며 피아노 이빨 사이로 들어갔다. 누가 이길까. 나는 모른다.
마지막 건반도 중지였다. 사냥이 끝났다. 스팟라이트가 뜨겁다. 아니, 이미 몸은 땀으로 밤벅이 됐다. 헝클어진 머리와 흐트러진 옷. 그제서야 앞이 보이고 소리가 들린다. 청중들의 박수 소리도 들린다. 그들을 향해 몸을 일으킨다. 청중들을 향해 선다. 그때 누군가가 피아노를 가리켰다. "저길 봐!"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을 닦으며 반쯤 감긴 눈으로, 피아노를 바라본다. 피아노.
피아노의 하얀 건반은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사냥의 흔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