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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Aug 17. 2022

마지막 벨루가의 죽음

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너무 더워. 너무 더운 거야. 근데 알지. 더워서 에어컨 틀어서 더 악순환인 거. 안은 시원한데 밖으로는 열기를 뿜잖아. 앞으로 더 더울 거고, 에어컨 없으면 못살고, 또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응? 어제 뉴스에서 봤었지. 벨루가 죽었잖아. 거기까지 어떻게 오게 됐을까. 서식지에서 몇천 킬로나 떨어져 있었대. 거기까지 오느라 굶주렸던 걸까. 아니면 무리에서 그냥 떨어진 개체인 걸까.


아무래도 지구가 이 모양인 거랑 관계가 있는 거 같아. 벨루가 엄청 머리 좋은 거 알지. 어떤 사람들은 벨루가가 외계에서 온 종족이래. 외계 종족인데 지구의 바다에서 그냥 사는 거야. 우리랑 말만 안 통해서 그렇지 인간을 좋아하고, 그래서 머물렀던 거고. 자기네들만의 문화가 있고 언어가 있고.


그 벨루가 무리가 다 떠난 거야. 지구에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말이야. 영화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첫 장면이 그래. 밤하늘에 돌고래들이 다 파도를 타고 유영하다가 모두 한 순간에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거야. 슝 하고 말이야. 달밤에 우주로 날아오른 돌고래들 사이에 벨루가도 있었을 거야. 그렇게 돌고래 종족들은 우주로 갔어.


아마 그랬을 거야. 그동안 돌고래 벨루가 종족들이 인간에게 계속해서 경고한 거야. 계속해서 지구 위험하다고, 이대로 가면 다 같이 죽는다고 말해온 거야. 그걸 무시한 건 우리 인간이고, 그저 돌고래 묘기라고 여겨온 거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그 시한이 왔기 때문에 벨루가들이 가장 좋아했던 터전을 버리고 자기네 돌고래 행성으로 다시 먼 여행을 떠나게 된 거지.


그런데 그 와중에 지구에 남겠다고 한 거야. 그 뉴스에 나온 벨루가 말이야. 그 벨루가는 인간을 너무 좋아했어. 사랑했어. 너무 사랑해서 만류를 뿌리쳤어. 서식지에서 인간이 머물고 있는 대도시까지는 정말 오래 걸리잖아. 그러다 떠나지 못한다고, 그러다 죽는다고 소리를 들었어. 하지만 그 벨루가는 괜찮다고 했어. 불쌍한 인간들이 이렇게 그냥 죽는 걸 볼 수 없다고 했어. 자기라도 마지막으로 전해줘야 한다고.

 

뉴스에 나왔었잖아. 하역에 벨루가가 출현해서 해외토픽으로 다뤄졌지. 우리가 그 뉴스를 보고 다음날 아침 새로운 뉴스가 나왔어. 여의고 힘없는 벨루가를 위해 사람들이 모여 벨루가를 옮기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고. 죽고 말았어, 인간을 너무 사랑해서 경고하러 먼 길을 헤엄쳐 온 벨루가는.


인간들은 알아들었을까?

우리는 이제 깨달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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