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오랜 옛날, 1980년에 을지로에 한 호프집이 생겨요. 이름하야 을지OB베어. 이 집은 특이한 게 있었어요. 당시에는 거들떠보지 않았던 노가리를 처음으로 구워서 팔았죠. 단돈 100원에요. 거기에 특제소스, 시원한 맥주를 함께 하니 퇴근길 그만한 게 없었어요.
을지OB베어를 사람들은 좋아했어요. 사람 냄새 났어요. 을지OB베어를 처음 만든 사장님은 오전 10에 문을 항상 열었고, 을지로 3가에서 교대해 퇴근하는 기관사들이 들려 맥주 한잔 하는 곳이 되었어요.
을지OB베어는 밤 10시에 딱 문을 닫는 걸로도 유명했어요. 호프집 치고는 참 일찍 닫잖아요. 좀 더 있다 가겠다 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어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세요”
을지OB베어는 묵묵히, 자신네 가게를 찾아주는 단골을 맞이하기 위해 일했어요. 욕심 내지도, 노가리 골목 문화를 만든 최초의 영예도 뽐내지 않았어요. 그저 그 자리에서 묵묵히. 묵묵히.
을지OB베어가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몰리자 주변에도 을지OB베어가 파는 것을 따라 팔기 시작했어요. 비슷한 가게가 20개나 늘어났고, 그 유명한 노가리 골목이 시작됐어요.
그 자리에서 그대로 40년 동안 운영한 을지OB베어와 달리 골목길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어요. 을지OB베어 바로 옆 호프집인 만선호프가 어느새 2호점, 3호점… 어느새 10호점이나 열었어요. 만선호프는 장사가 잘 안 되는 고깃집이나 철물점을 인수해서 노가리집으로 바꾸는 방식을 썼어요. 어느새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만선호프가 점령하기 시작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최초의 노맥집을 만선호프라고 이야기했어요. 만선호프도 오래 되긴 했지만, 을지OB베어만큼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 와중에도 욕심도 내지 않고, 억울해하지도 않으며 그저 오늘의 일과 오늘의 손님에 감사하며 살아가던 을지OB베어 사장 내외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어요.
건물주가 임대차 계약 연장을 거부했다고요.
을지OB베어는 딴 눈 팔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같은 손님을 맞이하며 가게만 운영했는데 쫓겨나게 생겼어요. 법정도 오고 갔어요. 하지만 법은 을지OB베어 편이 아니었어요. 서울시에서 지정한 서울미래유산 자격도 아무 쓸모없었죠.
결국 만선호프가 그 건물의 공동 소유주가 됐어요. 그리고 5월 40년 된 을지OB베어는 쫓겨났어요. 그 자리에는 새로운 호프집 간판이 달렸어요.
법은 권리를 핑계 삼아 탐욕을 편들고, 탐욕이 많으면 자본주의에서 유리해요. 그게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이거든요. 어느 동화처럼 욕심을 부린 사람이 욕심 없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망신을 당한다는 이야기는 없어요. 이 이야기는 욕심 없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며 끝이 납니다.
소박한 삶을 꿈꾸는 소박한 사람은 돈 욕심도 없어요. 반대로 욕심이 있으면 돈도 따라옵니다. 다들 그런 욕심을 꿈꾸는 시대잖아요. 만선호프의 성공 스토리처럼요.
을지OB베어와 을지로 노가리 골목 이야기는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답니다. 이 동화에는 이런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기승전결 완벽하죠.
“을지OB베어가 먼저 건물을 인수했어야지. 잘못했네.”